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22) 마리아 크리스티나 : 테센 공작 카를의 손녀 (세번째)

엘아라 2015. 3. 2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결국 세편을 씁니다..ㅠ.ㅠ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122) 마리아 크리스티나 : 테센 공작 카를의 손녀 (세번째)



오스트리아-테센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에스파냐의 왕비

알폰소 13세의 섭정

Maria Christina Henriette Desideria Felicitas Raineria of Austria  

(21 July 1858 – 6 February 1929)



아들인 알폰소 13세가 성인으로 친정을 시작하자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오래도록 아들의 섭정이었으며 국왕으로 태어나서 평생 누구의 아래에서 있어보지 않았던 알폰소 13세에게 어느정도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었던 인물이 되었죠.

알폰소 13세는 중요한 문제가 있을때면 자주 어머니의 조언을 구하고는 했었다고 합니다.



알폰소 13세와 마리아 크리스티나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이제 아들의 결혼문제에 신경을 쓰게 되는데 그녀는 아들이 적당한 짝을 만나길 바랬을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친정이었던 오스트리아쪽 여대공중 한명이 며느리가 되길 바랬다고 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여대공들은 가톨릭이었으며 왕족으로 언제나 교육을 잘 받았기에 이미 난봉꾼 기질이 강하던 알폰소를 잘 참을수 있을것이라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알폰소 13세가 택한 여성은 "에나"라는 애칭의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녀였던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제니였습니다. 아름다운 금발머리의 이 여성에게 마음을 뺏긴 알폰소 13세는 신교도였는데다가 바텐베르크가문의 낮은 신분이나 빅토리아 여왕가계의 유전병인 혈우병의 우려따위는 신경쓰지 않았었습니다. 모후의 반대에도 알폰소 13세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결혼을 허락할수 밖에 없었죠.



에나와 알폰소



1906년 에나와 알폰소 13세는 마드리드에서 결혼했습니다. 이때 결혼식때 폭탄테러가 일어나기도 했었죠.

이제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모후로써 궁정에서 제일 높은 지위의 여성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은 며느리인 에나 왕비였죠. 하지만 오래도록 섭정의 지위에 있었으며 유복자 아들을 낳았던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궁정내 지위는 매우 강력한 것이었으며 국왕 역시 아내보다는 어머니를 우선했기에 궁정에서는 에나보다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지위가 더 우월한것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며느리에게 적대적으로 보였던 시기는 바로 1차대전때였습니다. 1차대전때 에스파냐는 중립국으로 남았었습니다. 알폰소 13세는 외가쪽인 독일쪽이나 처가쪽인 영국쪽 어느곳에도 가담하지 않았고 사태를 관망했었죠 이런 상황은 에스파냐내 친 독일파와 친 영국파간의 불화로 이어졌는데 친 독일파쪽 중심은 바로 모후였던 마리아 크리스티나 였으며 친 영국파쪽 중심은 왕비였던 에나였었습니다. 이런 관계는 왕비와 모후간의 고부간 갈등으로 비춰지기까지 했었으며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며느리에게 독설을 퍼붓기도 했었죠. 하지만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인간적으로 에나를 미워했었던것은 아니었던듯합니다. 그녀는 이전에 영국측 중요인물이 사망했을때 대놓고 기뻐했었던것과는 달리, 며느리의 동생이 전사했다는 소식에 진심으로 에나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했었죠.




손자 손녀들과 함께 있는 마리아 크리스티나


1차대전이 끝난뒤 오스트리아가 공화국이 되었을때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치타 황후와 그 자녀들이 머물곳을 제공하기도 했었습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오래도록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가족들은 모두 모후가 건강하다고 여겼었습니다. 1929년 2월 5일 저녁마리아 크리스티나는 며느리와 함께 극장에 갔으며 함께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매우 상태가 좋아보였고 행복해보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침실로 갔던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갑작스럽게 가슴쪽에 통증을 느꼈으며, 결국 2월 6일 새벽에 사망했었죠.



마리아 크리스티나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알폰소 12세 사이에서는 모두 세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첫째는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로 알폰소 12세의 첫번째 부인의 이름은 딴듯합니다. 그녀는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에스파냐의 왕위계승자를 뜻하는 아스투리아스 여공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의 장녀로써 태어날때 이 칭호를 부여받았으며 후에는 동생인 알폰소 13세가 미성년일때도 여전히 이 칭호를 가지고 있었죠.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는 부르봉-양시칠리의 카를로와 결혼합니다. 그는 양시칠리 마지막 국왕의 조카였죠. 둘은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는알폰소 13세가 결혼하기 전인 1904년 셋째아이를 조산한뒤 사망했다고 합니다.


남편과 함께 있는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둘째는 마리아 테레사로 언니가 죽은뒤 그녀는 동생의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아스투리아스 여공의 지위를 가지게 됩니다. 마리아 테레사는 고종사촌이었던 바이에른의 페르디난트와 결혼했었습니다. 페르디난트의 어머니는 이사벨 2세의 딸로 알폰소 12세의 여동생이었었습니다. 마리아 테레사는 에스파냐 궁정에서 힘들어하던 에나에게 잘 대해줬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1912년 뇌졸증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했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있는 마리아 테레사

그런데 남편이 확실히 바이에른 가문 사람같이 생겼네요.-0-;;;


그리고 막내이자 유복자가 바로 에스파냐의 국왕이었던 알폰소 13세였죠. 현 에스파냐 국왕은 알폰소 13세의증손자입니다.


알폰소 13세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다음 카페 로얄하우스(http://cafe.daum.net/yulia0818)중 율리아님의 글 "에나-스페인의 라스트 빅토리안 퀸"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