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

[새해특집] 공주,왕비 그리고 국회의원: 가야트리 데비...(5) 어린시절

엘아라 2015. 1. 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흑..사진을 구해야하는데 참 현대인물이라 뭐랄까 사진 저작권이 애매합니다.
저처럼 비상업적,교육적으로 쓰면 대체로 허용되긴 한데....ㅠ.ㅠ 그래도 좀 애매하다죠.
앞으로는 그냥 초상화만 있는 인물들이나 파야겠어요=-=

[새해특집] 공주,왕비 그리고 국회의원: 가야트리 데비...(5) 어린시절


쿠츠 베하르의 마하라자의 딸이었던 가야트리 데비는 1919년 5월 23일 오전 8시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위로는 두 오빠와 언니가 있었는데 부모님은 아이들을 데리고 1차대전후 영국에서 머물렀었습니다. 


가야트리 데비의 이름은 당시 전통대로 지어졌는데 그녀의 출생일시에 따라 점성술사들이 점을 봐서 이름을 결정했었습니다. 가야트리 데비는 자신의 별점에 대해서 들은 바가 없다고 이야기하면서 단지 이름을 G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라는 충고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그녀의 이름은 최고의 진리를 상징하는 여신 가야트리의 이름을 따서 가야트리 데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들에게서 "아예사"라는 애칭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가야트리의 어머니인 인드라 데비는 가야트리를 임신했을때 한 소설을 읽고 있었으며 딸이 태어난다면 그 소설의 여주인공의 이름인 "아예사Ayesha"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재미난것은 가야트리 데비의 가족들은 나중에서야 아예사가 이슬람에서 자주 쓰는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익숙해져서 가족들과 친한 친구들은 그녀를 아예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가야트리 여신



가야트리 데비는 아버지가 돌아가실때까지 영국에 머물렀으며 그 뒤에 인도로 돌아와서 살아갑니다. 비록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었고 친척들도 있었죠. 가야트리의 큰오빠가 쿠츠 베하르의 마하라자가 되었으며 어머니는 섭정이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가야트리 데비가 매우 자유로운 어린시절을 보내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앞서 말한것처럼 1920년대 인도의 여성들은 매우 엄격한 제약을 받고 살았습니다. 왕족들이라 할지라도 결혼후에는 남편외의 남자들과는 거의 만나지 않고 살고 있었죠. 가야트리 데비의 할머니인 수니티 데비 역시 여성의 권리를 위해 여러가지 일을 했었지만 쿠츠 베하르에서는 내궁에서 잘 나오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쿠츠 베하르의 섭정은 가야트리 데비의 어머니였으며 그녀는 통치를 위해 많은 신하나 친척 영국 행정관등을 만나야했었기에 결국 가야트리 데비와 그 자매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자유로운 생활을 할 수있었을것입니다



수니티 데비

가야트리 데비의 할머니


어린시절 가야트리 데비는 스스로 매우 선머슴같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동생은 매우 얌전하고 여자다웠다고 이야기하면서 말입니다. 그녀는 주변 여러 사람들에게 호기심이 많았는데 코끼리를 매우 좋아했었던듯합니다. 코끼리 사육사들과 자주 어울렸고 그들과 이야기도 많이 했었다고 합니다. 

물론 왕족으로써 여러가지 의무를 수행하기도 햇다고 합니다. 물론 그녀는 어린아이였을뿐이기에 여러 행사에 참여하는 정도였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휴가지로 가거나 외가인 바로다로 여행을 가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가야트리 데비는 다섯살 무렵의 한 기억을 떠올립니다. 열세살의 한 어린 마하라자가 어머니에게 점심 초대를 해달라고 하면서 인도식 식사를 부탁한 일이었죠. 그는 다이어트 중이라 가벼운 식사밖에 하지 못해서 부탁했었는데 그의 보좌관이 이 사실을 알고 다시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식사자리에서 음식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그가 바로 훗날 가야트리 데비의 남편이 되는 자이푸르의 마하라자였다고 합니다.



두 아들들과 함께 있는 인드라 데비

http://coochbehar.nic.in/htmfiles/royal_image_gallery.html#


하지만 가야트리 데비는 아홉살때 다시 영국으로 돌아갑니다. 가야트리 데비의 큰오빠는 마하라자였기에 과도한 "아부"를 받고 있었고 어머니인 인드라 데비는 아들을 망칠것을 우려해서 영국으로 아들을 보냅니다. 그리고 나머지 그녀 역시 나머지 아이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갑니다. 그리고 가야트리 데비는  어머니를 따라 유럽의 여러곳을 돌아다니면서 지내거나 기숙학교에 머물기도 했었죠.

그러나 가야트리 데비는 11살때 다시 인도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들을 데리고 인도로 돌아가기로 했었죠.


인도로 돌아온 가야트리 데비는 가족들의 별장이었던 캘커타에 있던 우드랜드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은 캘커타에서 화려한 곳으로 가야트리 데비의 할아버지가 구입해서 가족 별장으로 만든곳이었죠. 이때문에 캘커타 사교계의 중심지였으며 가야트리 데비는 많은 사람들은 여기서 만납니다. 그중 가장 관심을 가졌던 사람은 1931년 크리스마스 휴가를 함께 보낸 사람이었죠. 바로 자이푸르의 마하라자였습니다.



어린시절의 가야트리 데비


자료출처

1.내사랑 인도(가야트리데비/한국번역연구원,파라북스.2006)

2.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1.위키 미디어 커먼스

2.http://coochbehar.nic.in/htmfiles/royal_image_gallery.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