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스웨덴

[송년특집]스웨덴의 빌헬름 왕자 : 구스타프 5세의 아들

엘아라 2014. 12. 2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사실 요며칠 우울함이 절정에 달해서 한동한 메롱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제 정신이 드는데 정신이 들면 뭐하겠습니까..ㅠ.ㅠ

지금 새해 특집 자료도 안 찾아놨습니다.--;;;


내일 도서관에 가서 관련 서적을 좀 빌려야겠습니다만...

하지만 제가 원하는 책이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인도 정치사가 필요한데 솔직히 시중에 나와있는 책은 좀 제가 원하는 자료가 아니더라구요. 이를테면 메와르 이야기 쓸때 어찌나 좌절스럽던지--;;; 제가 원한것은 무굴제국과 라자스탄지방의 군주들과의 관계를 원했는데 그게 아니라 무굴제국 중심으로 글을 썼더라구요.ㅠ.ㅠ 지금은 벵갈지방이나 마라타 제국내에 대한 이야기와 영국의 식민통치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각지역에 따른 정치사적인 접근을 원하는데 과연 책이 있을지는..ㅠ.ㅠ)


어쨌든 그건 그거고 송년특집을 해야겠습니다.

이번에 송년특집은 스웨덴의 구스타프 5세의 두 아들들인 에릭 왕자와 빌헬름 왕자를 해볼까합니다.

그리고 마지막날에는 현 스웨덴 왕가의 계보를 정리해보구요.

(사실 구스타프 6세 아돌프 하고 싶은데....그분은 이야기할것이 너무 많아서 내년으로 넘어갈듯해서 그냥 이걸하기로 했습니다. 내년 송년특집으로 스웨덴의 국왕들 이야기를 해보던가요..ㅎㅎㅎㅎ 구스타프 바사부터 쭈욱 하는것도 재미있을듯합니다.그리고 계보도들에 링크를 거는것을 하는거죠....사실  제가 쓴글들의 계보도를 만들어서 글들을 하나하나 링크하는것이 꿈이긴합니다.ㅎㅎㅎ)


[송년특집]스웨덴의 빌헬름 왕자 : 구스타프 5세의 아들




스웨덴의 빌헬름 왕자

쇠데르만란드 공작

Prince Wilhelm of Sweden and Norway

Carl Wilhelm Ludvig 

(17 June 1884 – 5 June 1965)

노르웨이가 붙는것은 이전 스타일로 그가 태어났을땐 스웨덴 국왕이 노르웨이 국왕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노르웨이가 독립한뒤에는 그냥 prince of Sweden이지만요.



스웨덴의 칼 빌헬름 루드빅은 1884년 6월 왕실 여름 궁전이었던 툴가른 궁전에서 당시 스웨덴의 왕태자였던 구스타프와 그의 아내인 바덴의 빅토리아의 둘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둘의 부모는 툴가른 궁전을 여름 거처로 주로 이용했었고 이때문에 빌헬름 역시 여기서 태어났습니다.

바덴의 빅토리아는 외할아버지였던 독일의 황제 빌헬름 1세에 대해서 매우 자랑스러워했으며 첫아들이 태어났을때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부모는 "스웨덴식"이름을 원했고 결국 둘째아들에게 "빌헬름"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게 되었다고 합니다.



빌헬름의 부모

스웨덴의 구스타프 5세와 바덴의 빅토리아


빌헬름 왕자는 당시 많은 왕족들처럼 군인으로써의 삶을 살게 됩니다. 당시 왕족들은 군복무가 거의 의무였으며 빌헬름 역시 군인으로써 교육받습니다. 그는 열다섯살에 사관학교에 입학했으며,1904년에 해군으로 임관합니다. 이후 그는 1차대전때 전함의 사령관으로 복무하기도 했었죠.


1907년 23살의 빌헬름 왕자는 혼담이 들어오게 됩니다. 러시아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이 그 상대였죠. 마리야 여대공은 알렉산드르 2세의 손녀로 그녀의 아버지는 파벨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이었으며 어머니는 그리스의 알렉산드라 공주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동생인 드미트리를 조산하고 사망했으며 아버지인 파벨대공은 이혼녀와 귀천상혼하므로써 러시아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파벨의 형이었던 세르게이 대공은 조카들의 상속권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입양했었습니다. 하지만 세르게이 대공도 곧 암살당하고 결국 마리야는 동생 드미트리와 함께 백모이자 양어머니였던 엘라 대공비의 손에 키워집니다. 이런 불우한 환경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던 마리야를 엘라가 대처할수 없게 만들었을듯합니다. 엘라는 이 혼담을 좋게 봤는데 빌헬름은 매우 온화한 성격이었기에 마리야를 잘 추슬러 줄것이라 여겼었다고 합니다.(하지만 그것이 에러..ㅠ.ㅠ)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

러시아 궁정 예복을 입은 모습


1908년 5월 3일 황실 거주지중 하나였던 짜르스코예 셀로에서 빌헬름과 마리야는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이 결혼은 매우 불행한 결혼이 됩니다. 온화한 빌헬름은 마리야를 감당할수 없었습니다. 또 어려서 부모와 떨어지고 사랑하는 백부를 잃었던 마리야는 외로움을 탔는데 빌헬름은 해군이었기에 자주 집을 비웠고 남편이 늘 곁에 있길 바랬던 마리야에게는 힘든일이었을것입니다. 또 서로의 문화적 차이도 문제가 있었는데 스웨덴은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앙숙관계였기에 스웨덴 궁정에서 마리야는 적응하기 힘들어했습니다. 게다가 마리야는 늘 자신의 여대공 신분을 자랑스러워했고 남편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을 HIH로 부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가부장적인 당시 시대에 남편인 빌헬름에게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상황이기도 했었습니다.

결국 마리야는 불행한 결혼생활을 끝내기로 결심하고 1911년 시암(태국)을 방문한 직후에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합니다. 당시 스웨덴 궁정은 매우 보수적으로 이런 이혼을 허락할리 없었지만, 불행한 결혼생활을 가엾게 여겼던 구스타프 5세가 둘의 이혼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마리야와 빌헬름 그리고 둘의 아들인 렌나르트

마리야가 사실 약혼때나 결혼직후 표정은 매우 밝거든요.

하지만 저렇게 아들이 태어날때쯤에는 거의 어두운 표정이더라구요.



마리야는 아들인 렌나르트가 있었지만 아들을 두고 러시아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빌헬름 왕자는 렌나르트와 함께 법적으로 평생 독신으로 지냈었습니다. 마리야 여대공은 훗날 자신의 남편이 동성연애자였기에 이혼할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죠. (마리야가 뭐랄까 좀 무책임합니다.--;;; 자기 연민도 강했구요.)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빌헬름 왕자는 사랑하는 여성이 있었습니다. 단지 그녀와의 결혼을 허락받지 못했을 뿐이었죠.아내와 이혼하던 1914년 빌헬름 왕자는 잔느 드 트람코트이라는 이혼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되죠. 하지만 엄격했던 스웨덴 왕실에서는 둘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빌헬름 왕자는 잔느 드 코트람과 결혼하지 않고 함께 살았습니다. 둘의 관계는 가까운 사람들은 다알고 있었으며 빌헬름의 아들인 렌나르트도 둘사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잔느는 빌헬름의 집에서 안주인 역할을 했고 모두는 이것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1차대전이후 빌헬름은 해군에서 퇴역했으며 세계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많은 사진을 찍고 책을 쓰게 됩니다. 아마도 사진에 대한 재능은 어머니 빅토리아 왕비에게서 물려받았을듯합니다. 



1920년대 빌헬름 왕자


스웨덴에서 국왕의 아들이자 후에는 국왕의 동생으로 평범한 삶을 살았던 빌헬름은 1952년 매우 큰 불행을 경험합니다. 그가 사랑하고 만난뒤 평생을 함께해왔던 잔느가 교통사고로 사망한것이었죠. 둘은 빌헬름의 아들인 렌나르트를 보고 돌아오던길이었고 빌헬름이 운전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차가 눈길에 미끄려지면서 사고가 났는데 빌헬름은 살았지만 잔느는 그렇지 못했죠. 이 사고 이후 빌헬름은 늘 이 사건을 회복할수 없었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안그래도 1952년 연말에 열린 노벨상 시상식에 빌헬름이 안나오고 국왕의 숙모인 잉에보리 왕자비가 나오시더군요.-0-;;;참고로 빌헬름 나오는 노벨상 시상식에 같이 나오는 한 여성이 있는데 그 사람이 아마 잔느일거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빌헬름 왕자는 잔느가 죽은 13년후인 1965년 80살의 나이로 사망합니다.(..이집안이 장수하는 집안이라니까요.)



빌헬름 왕자

1960년


자료출처

1.위키 피디어(스웨덴어 포함)

2. 다음카페 로얄하우스(http://cafe.daum.net/yulia0818)의 제글--;;;;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