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뭐 의외로 가브리엘 데스트레스 자료가 없네요.
대신 아들이 읽을것이 많은..ㅠ.ㅠ
정부들과 그 후손들...(30) 가브리엘 데스테레스 : 앙리 4세의 정부(두번째)
가브리엘 데스테레스
보포르와 베르뇌유 공작부인
몽소 후작부인
Gabrielle d'Estrées,
Duchess of Beaufort and Verneuil,
Marchioness of Monceaux
(1573 – 10 April 1599)
유부남에다 바람둥이기까지 했었던 앙리 4세는 가브리엘 데스트레스를 만남으로써 그녀와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둘은 서로에게 대놓고 헌신적이었는데 가브리엘은 만삭의 몸으로 전장을 따라가기도 했으며, 전장에서는 힘든 전투를 치르고 온 앙리를 위해 언제나 깨끗한 옷에 자신이 준비할수 있는 최고의 음식을 차려 대접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앙리가 재정적으로 곤란해졌을때는 자신의 재산을 기꺼이 앙리를 위해 쓰기도 했었죠. 또 지적이었으며 정치에 대해서도 잘 이해했었던 가브리엘은 여러사람들과의 친분관계를 앙리를 위해서 사용합니다. 그녀는 많은 귀족 여성들과도 잘 지냈으며 가톨릭교도도 많았습니다.이런 상황은 앙리가 즉위할때 종교적 문제로 갈들을 빚게 되었을때 큰 힘이 됩니다. 가브리엘은 자신의 지인들을 설득해서 평화를 얻는데 기여했었죠.
또한 가브리엘은 늘 후계자를 원했었던 앙리에게 아들을 낳아주기까지 합니다. 1594년 가브리엘 데스트레스는 앙리 4세의 아들인 세자르를 낳습니다. 늘 후계자를 얻길 바랬었던 앙리에게 가브리엘은 아들을 낳아준것이었죠. 1595년 앙리는 의회에서 세자르를 자신의 적자로 인정했으며 가브리엘 데스트레스를 자신의 정부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1596년에는 몽소 후작부인,1597년에는 보포르 공작부인의 칭호를 부여합니다. 가브리엘은 이후 앙리에게 카트린이라는 딸과 알렉상드르라는 아들 그리고 사산한 아들 한명 더를 낳아줍니다.
자매인 빌라르 공작부인과 함께 있는 가브리엘 데스트레스
오른쪽이 가브리엘이고 왼쪽이 빌라르 공작부인입니다.
빌라르 공작부인 특이한 재스쳐는 가브리엘 데스트레스가 임신중이며 그것도 아들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것이라고 합니다. (이때 세자르 임신중)
가브리엘이 반지를 들고 있는것은 그녀가 아들을 낳으면 결혼하겠다는 앙리 4세의 약속을 의미하는 것일거라고 합니다.
앙리는 늘 자신의 아들을 낳아주는 여성과 결혼하겠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었으며 이제 사랑하는 가브리엘이 아들을 낳자 아내인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와 이혼하고 가브리엘과 결혼하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결국 1599년 앙리 4세는 교황 클레멘스 8세로부터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와의 결혼 무효를 승인받게 됩니다. 이로써 앙리는 가브리엘과 결혼할수 있게 되죠. 그는 가브리엘을 위한 반지까지 준비했고, 부활절이 지난뒤 결혼하기로 계획하기까지 합니다. 가브리엘은 이런 상황에 대해 "신이나 국왕의 죽음만이 이 계획을 막을수 있다"라고 언급할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브리엘의 운명은 앙리 4세와의 결혼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절에 가브리엘은 파리에 있었고 앙리는 퐁텐블로에 있었는데 가브리엘은 아이를 조산하게 되는데 1599년 4월 9일 아들을 사산합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1599년 4월 10일 가브리엘 데스트레스도 사망하죠.
아이들과 함께 있는 가브리엘 데스테레스
1598년 또는 1599년경
...이거 디안 드 푸아티에 그림이랑 정말 똑같아서 당황스러운데 -0-;;
디안 드 푸아티에 그림에서 얼굴이 좀 다르긴 하더라구요.
그림 설명에는 비슷한 구도지만 이건 가브리엘 데스테레스 그림이다. 애들도 가브리엘의 아이들인 세자르와 알렉상드르다..라고 되어있습니다.-0-;;;
가브리엘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앙리는 곧바로 쉬지않고 파리를 향해 달려갑니다만, 앙리는 가브리엘이 살아있을때 파리에 도착하지는 못합니다. 가브리엘이 죽은 닷새후 앙리는 여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 내사랑의 꽃은 죽었지. 그리고 절대 다시는 피지 않을거란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과연--;;;)
앙리 4세
가브리엘 데스트레스는 앙리 4세에게 모두 네명의 아이를 낳아줬습니다. 그중 막내는 사산했지만 세명의 아이들은 무사히 성인으로 성장합니다. 장남인 세자르는 아버지에 의해서 방돔공작의 칭호를 받게 됩니다. 앙리 4세는 그를 매우 사랑했는데 왕실 마차가 물에 빠졌을때 앙리 4세는 아내인 마리 드 메디시스나 다른 자녀들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세자르만 구해서 나올정도였다고 합니다. 둘째는 카트린느로 엘뵈프 공작과 결혼합니다. 막내는 알렉상드르로 후에 형과 함께 음모에 연루되었었습니다.
자료출처
앞쪽과 동일
그림출처
앞쪽과 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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