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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29) 가브리엘 데스테레스 : 앙리 4세의 정부(첫번째)

엘아라 2014. 12. 15.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가브리엘 데스테레스입니다.

음냐..-0-;;;;


그나저나 새해 특집해야하는데 글도 안 읽어서..ㅠ.ㅠ

잘 될까 모르겠습니다.-0-;;;


정부들과 그 후손들...(29) 가브리엘 데스테레스 : 앙리 4세의 정부(첫번째)




가브리엘 데스테레스

보포르와 베르뇌유 공작부인

몽소 후작부인

Gabrielle d'Estrées, 

Duchess of Beaufort and Verneuil, 

Marchioness of Monceaux

(1573 – 10 April 1599) 

1594년경



가브리엘 데스트레스는 Cœuvres후작인 앙투안 데스테레스와 그의 부인인 프랑수아즈 바부 드 라 부아데지에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가브리엘에게는 일곱자매들이 있었는데 그녀들은 모두 궁정으로 가서 권력자들과관계를 맺었기에 "일곱개의 대죄악"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어머니인 프랑수아즈에게는 "매음굴의 안주인"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대에 가브리엘 데스트레스가 궁정에 나간것 역시 그녀의 어머니인 프랑수아즈에 의한 것인데 사실 프랑수아즈는 돈을 받고 딸들을 궁정에 넘겼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프랑수아즈는 앙리 3세에게금전적으로 후원을 받고 딸인 가브리엘을 넘겼으며 그 뒤에는 기즈 공작등에게도 똑같은 일을 했다라고 사람들이 쑥덕댔다고 합니다.



가브리엘의 아버지

앙투안 데스트레스


어쨌든 앙리 3세의 궁정에 소개된 그녀는 궁정에서 매우 아름다운 여성으로 알려지게됩니다. 궁정에 있던 한 사람은 그녀에 대해서 금발머리에 푸른눈을 가졌으며 아름다운 코에 진주같은 이빨에 예쁜 입술과 완벽한 가슴, 우아한 손을 가지고 있어 마치 여신과 같다고 언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아름다움때문에 가브리엘 데스트레스는 많은 이들의 이목을 사로잡았을듯합니다.


가브리엘 데스트레스가 앙리 4세를 만난것은 1590년 여름이었습니다. 국왕의 친구였었던 벨가르드 공작이 앙리에게 가브리엘을 소개시켜준것이었다. 가브리엘 데스테레스보다 20살이나 연상이었던 앙리 4세는 곧 가브리엘 데스테레스의 아름다움에 빠져버립니다. 아름다운 가브리엘이 벨가르드 공작과 결혼할까봐 두려웠던 앙리 4세는 1592년 가브리엘을 랑쿠르의 영주였던 니콜라 당메르발과 결혼시켰습니다. 아마도 가브리엘이 하급귀족과 결혼하므로써 궁정을 드나들수 있게 했고, 또 하급귀족이었기에 가브리엘이 그와 이혼할때 큰 말썽이 없길 바랬었기 때문일듯합니다. 그리고 앙리 4세가 프랑스의 국왕이 된 1594년 그와의 결혼을 무효화 시켰습니다.



벨가르드 공작 

로게르 드 생-라리 드 테르멩

그는 앙리 3세,앙리4세 루이 13세때의 총신이었다고 합니다.



앙리 4세는 가브리엘 데스테레스에게 빠져들었으며 비록 아내인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나 다른 많은 정부가 있었지만 가브리엘을 만난뒤로는 그녀에게만 집중하게 됩니다. 대놓고 가브리엘을 데리고 여러곳을 다녔으며 심지어는 전장에까지도 가브리엘을 데리고 갔었죠. 가브리엘 역시 앙리 4세와 함께라면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았고 힘든 전투를 치룬 국왕을 위해 늘 자신이 할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이런 가브리엘의 행동은 그녀의 가족들에게도 매우 도움이 되었는데 앙리 3세시절 지위가 위태로웠던 가문의 사람들은 앙리 4세가 즉위하면서 가브리엘의 덕에 궁정에서도 잘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1590년대

앙리 4세


자료출처

1.위키 피디어

2.Kings and Courtesans: A Study of the Pictorial Representation of French Royal Mistresses(Shandy April Lemperlé,2007 석사학위논문)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