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86)아델하이트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손녀(두번째)

엘아라 2014. 6. 1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오래 쉬었더니 더 머리가 안돌아가요..ㅠ.ㅠ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86)아델하이트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손녀(두번째)




오스트리아의 아델하이트 여대공

사르데냐의 마리아 아델라이드 왕비

Adelaide of Austria 

(Adelheid Franziska Marie Rainera Elisabeth Clotilde)

( 3 June 1822 – 20 January 1855) 


아델라이드와 비토리오 엠마누엘레의 결혼은 합스부르크가문이 이탈리아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전통적인 방법과 비슷했습니다. 이때문에 둘의 결혼은 사보이아 가문과 합스부르크 가문의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긴 했지만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이탈리아에서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고 느꼈었다고 합니다.아델라이드의 남편은 사르데냐 국왕의 후계자로 이미 사보이아 공작이었기 때문에 결혼후 아델라이드도 사보이아 공작부인으로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결혼 7년후인 1849년 그녀의 시아버지였던 카를로 알베르토가 퇴위하고 마리아 아델라이드의 남편인 비토리오 엠마누엘레가 사르데냐의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마리아 아델라이드도 사르데냐의 왕비가 되죠.  하지만 그녀의 남편이 이탈리아를 통일해서 이탈리아의 국왕이 되기 전 에 마리아 아델라이드는 사망했기에 그녀는 이탈리아의 왕비가 될수는 없었습니다. 첫 이탈리아 왕비는 마리아 아델라이드의 며느리인 마르게리타 디 사보이아가 되죠.( 첫번째 왕비인 마르게리타 왕비에게 이탈리아 국기 색을 연상하는 피자가 헌정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유명한 마르게리타 피자입니다.)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1851년


마리아 아델라이드는 궁정에서 그리 쉬운 지위가 아니었을듯합니다. 먼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어머니가 있었으며, 이탈리아 측에서는 그녀가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이기에 경계를 하고 있었을것입니다. 또 그녀의 남편은 언제나 다른 여성과 연애관게에 있었죠. 하지만 마리아 아델라이드는 당대 많은 다른 왕족 여성들처럼 인내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녀는 주로 자선사업과 종교에 매우 헌신적이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아델라이드와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1855년 1월 마리아 아델라이드의 시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사가 사망했고 겨울철에 장례식을 치뤘습니다. 시어머니의 장례를 치룬뒤 마리아 아델라이드는 아프게 됩니다. 그녀는 감기에 걸렸었는데 이후 극렬한 고통을 동반한 장염으로 장례식 4일뒤에 33살의 나이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신음소리가 근처 광장에 까지 들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질정도로 고통스러워했었다고 합니다.이런 상황때문인지 마리아 아델라이드의 옷에 불이 붙어서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던듯도합니다.

하지만 최근 연구에서는 마리아 아델라이드의 건강이 이미 나빠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죽기 전해에 이미 머리카락과 이빨이 빠졌으며 지속적으로 열이 났으며 제대로 걸을수 조차 없었고 목소리도 변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마리아 아델라이드는 병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결국 이 병때문에 사망했을리라 추측한다고 합니다.

 


마리아 아델라이드


마리아 아델라이드와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사이에서는 모두 여덟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중 성인으로 성장한 자녀는 모두 다섯이었으며 그중 결혼한 자녀는 넷이었습니다.

이들중 첫째인 마리아 클로틸드는 나폴레옹 3세의 사촌이었던 "플롱플롱"이라는 애칭의 나폴레옹 조제프 보나파르트와 결혼했었죠. 그리고 그녀의 후손들이 현 보나파르트 가문의 수장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의 국왕이 되는 움베르토 1세입니다. 

셋째는 아오스타 공작인 아메데오로 그는 1870년에서 1873년 사이 에스파냐 국왕으로 선출되어 "아마데오 1세"라고 불렸었습니다.

넷째는 오도네(Oddone)로 그는 건강이 매우 나빴었지만 매우 똑똑한 인물이었으며 여러 학자들과 교류했으며 예술작품등을 수집해서 콜렉션을 만들었었다고 합니다. 그는 20살이 되기전 사망했습니다.

다섯째는 마리아 피아로 그녀는 포르투갈의 루이스1세와 결혼했습니다. 루이스1세는 마리아 2세와 그녀의 남편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페르디난트의 아들로 형인 페드루 5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한뒤 그의 뒤를이어 국왕이 되었던 인물이었습니다.



마리아 아델라이드의 다섯아이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