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85)아델하이트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손녀(첫번째)

엘아라 2014. 6. 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나름 안빼먹을려고 노력했는데 안한사람들이 나오는군요..ㅠ.ㅠ

그런데 아델하이트 언니가 있는데 자료가 없네요..ㅠ.ㅠ 미혼으로 죽었다고만 나오는..ㅠ.ㅠ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85)아델하이트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손녀(첫번째)



오스트리아의 아델하이트 여대공

사르데냐의 마리아 아델라이드 왕비

Adelaide of Austria 

(Adelheid Franziska Marie Rainera Elisabeth Clotilde)

( 3 June 1822 – 20 January 1855) 

1841년


아델하이트 프란치스카 마리 라이네라 엘리자베트 클로틸데는 오스트리아의 대공인 라이네르 요제프와 그의 부인인 사보이아-카리냐노의 엘리자베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아델라이드 또는 아델레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아델하이트의 아버지인 라이네르 대공은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아들로 결국 마리아 테레지아의 손자이자 마리 앙투아네트의 조카이기도 했습니다. 라이네르 대공은 롬바르디-베네치아의 총독으로 밀라노에서 30년간 살았으며 이때문에 아델하이트 역시 밀라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델하이트의 아버지

라이네르 대공


아델하이트의 어머니인 사보이아-카리냐노의 엘리자베트는 사보이 가문 출신입니다. 사보이아-카리냐노 가문은 사보이아 가문의 분가중 하나로 조상은 사보이 공작인 카를로 엠마누엘레 1세와 그의 부인인 에스파냐의 카타리나 미카엘라(펠리페 2세의 딸)의 다섯째아들인 토마소 프란체스코입니다. 엘리자베트의 오빠인 카를로 알베르토는  본가인 사르데냐 왕국의 남성 직계후손이 단절되면서 그 뒤를 이어 사르데냐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엘리자베트는 작센 출신인 어머니를 통해 폴란드의 국왕인 아우구스투스 3세의 후손이기도 합니다.



아델하이트의 어머니

마리아 엘리자베타 디 사보이아-카리냐노



아델하이트는 합스부르크 립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매력적인 여성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그녀는 평균보다 큰 키에 흰 피부와 마른 체형이었다고 합니다. 또 교육을 매우 잘 받았는데 다른 많은 합스부르크가문의 여대공들처럼 여러개의 언어를 했으며 어느 왕가로 시집가도 손색이 없을 만큼의 교육을 받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아델하이트는 1840년 남편이 될 사르데냐 왕국의 후계자이자 사보이 공작이었던 비토리오 엠마누엘레를 만나게 됩니다. 아델하이트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와 모계로 사촌관계였을뿐만 아니라 부계로는 오촌관계이기도 했습니다. 비토리오 엠마누엘레의 아버지가 아델하이트의 외삼촌이었을뿐만 아리나 비토리아 엠마누엘레의 어머니는 토스카나 대공의 딸이자 레오폴트 2세의 손녀로 아델하이트와는 사촌관계였었죠. 

비토리오 엠마누엘레는 사실 이 선자리에서 아델하이트 보다는 그녀의 언니인 마리아 카롤리나를 더 마음에 들어했다고 합니다. 비토리오 엠마누엘레의 아버지 역시 아들의 결정을 지지했습니다만, 그의 어머니이자 늘 아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어머니 마리아 테레사가 아들의 결정을 반대했으며 아델하이트를 아내로 맞으라고 했다고 합니다. 



두 아들과 함께 있는 토스카나의 마리아 테레사

사르데냐의 왕비

아델하이트의 시어머니


아델하이트는 남편이 될 비토리오 엠마누엘레를 보고 반했고 그와 편지를 주고 받기 시작했습니다만 바로 결혼할수는 없었습니다. 둘의 결혼은 합스부르크가문과 사보이아 가문의 중요한 연결이었으며 결국 정치적 협상이 필수 조건이었죠. 2년간의 결혼협상끝에 드디어 아델하이트는 1842년 비토리오 엠마누엘레와 결혼합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마리아 아델라이드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 아델하이트의 이탈리아에서 삶은 쉽지는 않았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