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본가 끝입니다라고 할려니 프란츠 요제프 조카들이 있군요...--;
카를 황제의 고모들이 있는걸 까먹었군요. ㅎㅎㅎㅎ
카를 황제의 고모들만 하고 나면 이제 본가는 끝입니다.
카를 황제의 딸들은 뭐랄까 제가 아직 손대기에는 너무 최근분들이십니다.-0-;;;;;
"에르치"라는 애칭이나 "붉은 여대공"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엘리자베트 여대공의 삶은 어린시절부터 드라마틱하죠.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79)엘리자베트 마리 : 프란츠 요제프의 손녀(첫번째)
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 마리 여대공
빈디시-그라츠 공비
페츠넥 부인
Archduchess Elisabeth Maria Henriette Stephanie Gisela of Austria
(2 September 1883, Laxenburg – 16 March 1963, Vienna)
엘리자베트 마리 헨리에테 스테파니 기젤라 여대공은 1883년 빈에 있는 락센부르크 궁전에서 황태자였던 루돌프와 그의 아내인 벨기에의 스테파니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엘리자베트라는 이름은 할머니인 시씨황후의 이름을 딴것일듯합니다. 하지만 가족들 사이에서는 "에르치"라는 헝가리식 애칭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에르치가 태어난뒤 동생이 태어나지 않았는데 아마도 이것은 루돌프가 스테파니에게 성병을 옮겨서 스테파니가 불임이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에르치는 루돌프와 스테파니의 유일한 아이였으며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유일한 친손녀였죠. 황제는 이런 에르치를 엄청나게 예뻐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에르치의 할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황제
에르치의 삶에서 첫번째 드라마틱한 사건은 바로 1889년 일어납니다. 1889년 1월 30일 에르치의 아버지인 루돌프가 정부였던 마리 베체라와 함께 자살한 사건이었죠. 일명 "마이어링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이 사건은 에르치의 삶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황실 가족들의 삶을 뒤흔든 사건이었죠.
에르치의 아버지
황태자 루돌프
에르치의 어머니인 스테파니는 이제 황태자비였었지만 더이상 황위계승자의 부인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그녀에게는 황위계승과는 무관한 딸인 에르치밖에 없었죠. 이런 상황은 스테파니가 빈의 궁정을 견디기 힘들게 했었습니다. 하지만 황제는 사랑하는 손녀가 빈을 떠나는것을 허락하지 않았죠. 결국 에르치는 자주 궁정을 비우는 어머니와 떨어져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황제는 늘 에르치를 사랑했으며 어머니와 떨어져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에르치는 점차 고집센 아이로 자라났으며 궁정에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도 합니다. 시씨황후는 며느리를 처음부터 탐탁치 않아했으며 아들이 죽은후 아들의 죽음에 대한 일정한 책임을 며느리한테 돌렸다고 합니다. 어머니 없이 지낸 에르치는 비록 가깝지는 않았지만 이런 할머니의 영향을 어느정도 받았고 그 결과 어머니와의 사이도 점차 멀어지게 되죠.
어머니 스테파니와 함께 있는 에르치
시씨황후는 자신이 할머니가 되는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미모에 집착했기 대문에 자신이 나이들어간다는 사실을 못견뎌했으며 할머니가 되는 것도 반가워하지 않았을듯합니다. 그렇기에 에르치는 할머니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황후는 자신의 유일한 친손녀에게 자신의 재산 대부분을 물려줬었습니다. 이때문에 1898년 황후가 죽은뒤 에르치는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하게 되었으며 이런 경제적 상황은 독립적이었던 에르치의 성품을 더욱더 독립적으로 만들었을듯합니다.
에르치의 할머니
시씨황후
에르치는 어머니와의 사이가 점점 더 멀어져갔는데 에르치의 어머니인 스테파니는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남자와 결혼하길 원했었죠. 황제는 며느리를 이해해주고 결혼을 허락해줬습니다만, 에르치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어머니의 재혼에 매우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에르치는 어머니가 재혼한것이 죽은 아버지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결국 스테파니는 딸과의 관계를 호전시키지 못했으며 죽을때 상속에서 딸을 배제시킬정도였다고 합니다.
스테파니와 그녀의 두번째 남편
사실 스테파니의 재혼은 에르치가 평탄한 삶을 살아갈수 있게 해줄 계기를 놓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당시 벨기에 왕실에서는 에르치와 추정왕위계승자였던 알베르 사이의 혼담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에르치의 어머니인 스테파니가 자신보다 신분이 낮은 남자와 재혼하면서 스테파니의 아버지인 레오폴 2세는 딸에게 격노한 상황이었습니다. 레오폴 2세는 에르치와의 혼담을 언급하는 알베르에게 결혼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알베르의 누나인 앙리에트는 동생이 에르치와 결혼하려는 생각이 있었다는 것 자체에 경악하기도 했는데 에르치의 가정상황이 에르치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에르치의 외할아버지
벨기에의 레오폴 2세
그는 아내와 사이가 극악이었으며 딸들이 자신의 체면에 맞지 않게 행동하는 것에 격노한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잘 알려진것은 콩고 착취문제였죠. 당시 콩고는 레오폴 2세의 개인 식민지라는 이상한 지위였습니다. 덕분에 레오폴 2세는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콩고를 착취해서 막대한 재산을 모았습니다. 이것이 국제문제가 되자, 벨기에 정부의 압박으로 마지못해 콩고를 벨기에에 귀속시켰습니다만, 파장은 엄청났었습니다. 그렇게 모은 재산을 정부였다가 귀천상혼한 어린 부인과 아들들에게 몽땅 물려주는 바람에 딸들이 유산 상속으로 소송을 하기도 했었죠.--;;;;;;
어쨌든 에르치는 자신만의 사랑을 찾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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