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영국의 왕비들...번외편 (11)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두번째)

엘아라 2014. 2. 2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영국의 왕비들...번외편 (11)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두번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Francis Albert Augustus Charles Emmanuel)

 later The Prince Consort

(26 August 1819 – 14 December 1861)

1840년


앨버트의 장래는 사실 오래전부터 가족들의 계획에 포함되어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앨버트의 숙부였던 벨기에의 국왕 레오폴 1세가 있었죠. 그는 자신의 가문이 대가문과 연결되길 바랬는데 특히 조카인 빅토리아가 영국의 추정왕위계승자가 되면서 그의 소망은 더욱더 커져갔습니다. 그는 빅토리아와 나이가 비슷한 에른스트와 앨버트를 빅토리아의 짝으로 고려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대해서 빅토리아의 어머니였던 켄트 공작부인 역시 호의적으로 생각합니다.



어린 딸 빅토리아와 함께 있는 켄트 공작부인



1836년 레오폴은 코부르크 조카들을 영국으로 초대해서 빅토리아와 만나게 해줍니다. 사실상 맞선이나 다름없었죠. 하지만 빅토리아의 백부였던 윌리엄 4세는 이에 대해서 못마땅해했다고 합니다. 그는 조카이자 장래 영국여왕의 남편으로 작센 공작보다는 오라녜공의 아들이었던 네덜란드의 알렉산더를 더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사자였던 켄트의 빅토리아 공주는 잘생긴 사촌에게 반해버리게 됩니다.

빅토리아는 이때 만난뒤 앨버트에 대해서 매우 호의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지만 그것이 앨버트와 그녀가 결혼하겠다고 마음을 먹게 만든것 아니었을듯합니다. 비록 외삼촌을 매우 좋아했지만, 어머니 켄트 공작부인과의 관계가 극한으로 달리고 있었기에, 어머니가 호의적으로 보는 남자에 대해서 빅토리아는 반발심이 어느정도는 있었을것이기 때문입니다.



켄트의 빅토리아 공주

1833년경


빅토리아는 1837년 18살이 된 직후 여왕으로 즉위합니다. 이제 그녀는 섭정이 필요없는 여왕으로 영국의 군주가 되었죠. 이때 앨버트는 후에 평생 조언자가 될 스톡마르 남작과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앨버트는 결혼문제로 형 에른스트와 함께 다시 영국으로 갑니다. 그리고 앨버트와 빅토리아 여왕은  서로에 대해서 더 많은것을 알았고 결혼하기로 결정합니다. 사실 이당시 빅토리아 여왕은 정치적으로 결혼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왜냐면 즉위초 여왕은 맬버른 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여왕은 그를 매우 따랐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궁정에서는 맬버른경이 여왕과 결혼하려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여왕과 맬버른 경의 사이는 빅토리아 여왕에게는 아버지 없이 자란 소녀가 아버지 대신 동경한 인물이었을것이며 맬버른 경 역시 미숙한 빅토리아를 딸처럼 지도했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어쨌든 여왕은 앨버트와 결혼하기로 결정했으며 1839년 10월 15일 앨버트에게 청혼합니다. 그리고 11월 23일 의회에 결혼의사를 밝히죠. 


앨버트와 빅토리아는 1840년 2월 10일 세인트 제임스 궁의 채플 로열에서 결혼했습니다. (여왕의 결혼식에 대해서는 저의 앞쪽글을 참조해주세요.)  앨버트는 결혼전 의회에서 HRH 칭호를 부여받게 됩니다. 



결혼식때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결혼초 앨버트는 영국에서 매우 고립되어있었습니다. 영국의 귀족들은 독일 출신의 앨버트 공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었죠. 그는 결혼후 첫번째 생일때 익숙한 얼굴이라고는 독일서부터 자신을 모셔온 시종과 에오스(앨버트공의 개)밖에 없다고 아버지에게 써보낼정도였습니다. 게다가 맬버른 경은 앨버트가 여왕에게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것을 두려워했었다고 합니다. 여왕은 남편에게 영국 지위를 부여하길 바랬지만 의회는 이를 거절했는데 앨버트공 스스로 역시 자신이 영국 귀족 지위를 받는것에 대해 원치 않는다고 의사를 밝혔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작센의 (통치)공작 가문 출신이며 이것은 영국의 귀족 지위보다 낫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의회는 앨버트 공의 정치적 입지를 약화시키기 위해 연금도 매우 짜게 줘었다고 합니다. 



딸인 빅키와 애견인 에오스와 함께 있는 앨버트 공


결혼초 앨버트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을뿐만 아니라 가정생활에서도 역시 고립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아내의 가정교사였던 레첸 여남작이 있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