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영국의 왕비들...번외편 (10)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첫번째)

엘아라 2014. 2. 1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영국 다해가는군요.

앨버트공하고 나면 남는 사람들은 알렉산드라 왕비,메리 왕비,엘리자베스 왕비 밖에 없네요.

엘리자베스 왕비는 할까말까 고민중입니다.--;;;;


저 개인적으로 늘 생각하지만 앨버트 공은 뭐랄까 불우한 어린시절을 딛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아이들은 절대 자기처럼 불행하지 않게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던것듯합니다. 하여튼 여왕님 남편 잘 만났다니까요.--;;;;



영국의 왕비들...번외편 (10)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첫번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베르트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Prince Albert of Saxe-Coburg and Gotha 

(Francis Albert Augustus Charles Emmanuel)

 later The Prince Consort

(26 August 1819 – 14 December 1861)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으로 보통 앨버트 공(Prince Albert) 되는 작센-코부르크-고타의 프란츠 알브레히트 아우구스투스 카를 엠마누엘은  1819년 코부르크에 있는 로제나우 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작이었던 에른스트였으며 그의 어머니는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루이제였습니다. 그는 1819년 9월 19일 세례를 받았는데 이때 대부모들은 친할머니인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작부인 아우구스타(로이스-에르베스도르프의 아우구스타),외할아버지인 작센-고타-알텐부르크의 아우구스투스.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란츠 2세, 테센 공작이자 마리아 테레지아의 사위였던 작센의 알베르트. 그리고 고모부인 멘스도르프-포우일리의 엠마누엘이 었습니다. 아마 그의 이름인 알베르트(알브레히트)는 테센공작의 이름에서 딴것일듯합니다.



테센 공작 알베르트

마리아 테레지아의 사위

앨버트공의 대부중 한명


앨버트 공의 가문은 작센의 많은 분가들중 하나로 그리 크지 않은 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앨버트 공의 아버지대에서 혼인 관계를 통해서 유럽의 여러 유력가문과 통혼을 하게 됩니다. 앨버트공의 고모인 율리아네는 러시아의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의 아내였으며,숙부인 페르디난트는 헝가리의 상속녀였던 코하리 가문 사람과 결혼했는데 그의 아들인 페르디난트는 후에 포르투갈 여왕의 남편이 됩니다. 고모인 빅토리아는 바로 빅토리아여왕의 어머니였으며 숙부인 레오폴트는 영국의 왕위계승자였던 웨일즈의 샬럿 공주의 남편이었으며 후에는 벨기에 국왕으로 선출되기도 했었죠.



벨기에의 레오폴 1세

앨버트의 숙부


앨버트의 부모는 매우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었습니다. 루이제와 에른스트 1세의 결혼은 정략결혼으로 작센가문의 복잡한 영지 상속때문에 결혼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에른스트는 바람둥이로 수많은 정부들이 있었으며 루이제는 이런 상황을 못견뎌했었다고 합니다. 결국 남편의 바람기에 견딜수 없었던 그녀는 남편과 별거하기에 이르르는데 더우기 그녀 역시 다른 남자와 연애사건을 일으키면서 결국 루이제와 에른스트는 이혼하게 되죠. 이당시 남성인 에른스트가 정부를 둔것보다 루이제가 연애사건을 일으킨것에 대해 더 혹독하게 취급받았으며 결국 루이제는 자신의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했으며 아이들을 더이상 만날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앨버트의 아버지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에른스트 1세


앨버트의 어머니 루이제는 1824년에 아이들을 떠나야했으며 1830년에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부모이 이런 불화는 앨버트와 그의 형인 에른스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에른스트는 아버지처럼 "될대로 되라"는 식의 삶을 살았던 반면 불행에 대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앨버트는 자신의 부모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결국 형제의 삶은 매우 대조적이었습니다만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고 합니다. (앨버트공은 후에 큰딸인 빅키에게 자신의 어린시절에 대해 아주 불행했었다고 언급했다고 합니다.)



두 아이들과 함께 있는 루이제


앨버트의 아버지인 에른스트 1세는 1831년 재혼합니다. 재혼 상대는 조카인 뷔르템베르크의 마리였었죠. 에른스트는 아내가 죽은뒤 재혼하려 했는데 바람둥이였으며 아이들이 딸린 홀아비였던 그와 결혼할만한 왕녀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리고 찾은 상대가 32살의 노처녀였던 조카인 마리였었습니다. 앨버트는 새어머니이자 사촌인 마리와 늘 잘 지내려했었다고 합니다. 그는 늘 새어머니와 서신교환을 했으며 거기에 늘 "Dear mama"라고 썼다고 합니다.



뷔르템베르크의 마리

앨버트의 새어머니이자 고종사촌


앨버트는 형 에른스트와 함께 가정교사에게서 교육을 받았으며, 후에는 벨기에의 브뤼셀에서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의 숙부인 벨기에의 레오폴 국왕은 이미 앨버트나 에른스트를 조카이자 영국의 왕위계승자인 빅토리아 공주와 짝지워주려고 생각했었기에 조카의 교육에 관심을 가졌었던듯합니다. 이후 앨버트는 다른 많은 독일 왕족들처럼 본대학 입학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여기서 앨버트는 법과 정치경제,철학과 예술사등을 공부했었죠. 뿐만아니라 앨버트는 악기등을 연주했었고 펜싱과 승마에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후에 앨버트 공이 결혼초 영국에서 소외당했을때 그는 거친 승마를 하면서 자신을 위로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