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69)마리아 레오폴디네 : 프란츠 2세의 딸 (네번째)

엘아라 2014. 2. 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69)마리아 레오폴디네 : 프란츠 2세의 딸 (네번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레오폴디네

브라질의 황후

Maria Leopoldina of Austria

(Maria Leopoldina de Áustria;:Maria Leopoldine von Österreich

(Maria Leopoldina Josefa Carolina)

( 22 January 1797 – 11 December 1826)



마리아 레오폴지나 황후가 되기전, 1822년 8월 페드루는 브라질의 여러곳을 돌아다니면서 브라질의 독립과 왕가에 대한 지지를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상파울로에 간 페드로는 한 하급 장교의 아내를 만나게 됩니다. 도미틸라 데 카스트로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페드로의 마음을 사로 잡았고 그는 리우데자네이로로 돌아오면서 도미틸라를 데려와 공식 정부로 삼습니다. 페드루는 이미 여러 여성과 관계가 있었지만 특히 도미틸라를 엄청나게 총애하게 되죠.


황제는 도미틸라를 황후의 시녀로 임명했으며 마리아 레오폴지나는 그녀가 남편의 정부이며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도미틸라는 산토스 후작부인 칭호를 받았으며 도미틸라의 아이는 궁정에서 황녀들과 함께 교육받게 되죠

 


도미틸라 데 카스트로

그녀는 궁정에 있으면서 전횡을 휘둘렀는데 특히 황후를 핍박했다고 합니다.

마리아 레오폴지나는 오스트리아 여대공이라는 긍지 때문에 이런 모욕을 간신히 참았는데 그녀의 가족들은 이런 상황에도 마리아 레오폴지나에게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단지 언니인 마리 루이즈만이 동생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마리아 레오폴지나와 페드루 사이의 불화를 초래합니다. 게다가 산토스 후작부인은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데 전념했으며 그녀에게 빠져든 페드로는 대놓고 아내를 핍박하게 됩니다. 페드루는 아내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며 궁정사람들이 아는 것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궁정에서는 황후를 매우 동정했었습니다. 



페드루 1세

23살때


마리아 레오폴디나는 1826년 12월 11일 아이를 유산한뒤 사망합니다. 이때 그녀의 남편은 우루과이와의 전쟁때문에 멀리 있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 레오폴디나의 죽음은 페드로의 책임이었습니다. 우루과이와의 전쟁전 의회는 마리아 레오폴디나를 섭정으로 임명합니다. 그런데 페드로는 자신과 산토스 후작부인과의 관계와 마리아 레오폴디나의 불화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을 종식시키기 위해 산토스 후작부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리아 레오폴디나가 자신의 손에 키스하도록  요구합니다. 오스트리아 여대공인 마리아 레오폴디나는 이에 대해서 매우 굴욕감을 느끼고 거부하게 되죠. 그러자 페드로는 격렬하게 화를 냈으며 아내를 마구 때렸으며 심지어 발로 차기까지 했었습니다. 남편에게 심하게 맞은 마리아 레오폴디나는 아이를 유산했고 사망하게 된것입니다.



브라질의 황후

마리아 레오폴지나


그녀의 죽음에 많은 브라질 국민들이 애도를 표했으며 황제를 비난했었습니다.


자료출처

1.다음 카페 "로얄 하우스"(http://cafe.daum.net/yulia0818)의 율리아님의 글 "브라질의 황후 마리아 레오폴디나"

2.위키 피디어 (포르투갈어 + 영어 포함)

그림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