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68)마리아 레오폴디네 : 프란츠 2세의 딸 (세번째)

엘아라 2014. 1. 2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68)마리아 레오폴디네 : 프란츠 2세의 딸 (세번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레오폴디네

브라질의 황후

Maria Leopoldina of Austria

(Maria Leopoldina de Áustria;:Maria Leopoldine von Österreich

(Maria Leopoldina Josefa Carolina)

( 22 January 1797 – 11 December 1826)



1800년대 초반기는 바로 프랑스 혁명전쟁과 나폴레옹 전쟁기였습니다. 포르투갈 왕가 역시 나폴레옹의 군대를 피해 브라질로 망명한 것이었죠. 하지만 나폴레옹이 몰락하면서 이제 포르투갈은 다시 왕가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문제는 페드로의 아버지인 주앙 6세는 절대군주제를 지지하던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이미 유럽은 나폴레옹 전쟁이후 자유주의에 물들어 있었으며 대부분 국민들이 절대 군주제 보다는 입헌군주를 지지하고 있었죠.  1820년 포르투갈에서는 입헌군주로써 국왕이 다시 돌아오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주앙 6세


페드루는 아버지와 달리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마리아 레오폴디나는 이런 남편에 대해서 매우 자랑스러워했었죠. 조앙 6세는 이런 아들에게 "섭정"으로 포르투갈로 가길 바랍니다. 하지만 페드로는 자유주의를 지지했었기에 브라질에서 절대 군주로써 군림하려는 아버지의 의도를 파악했을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거의 배제당했었기에 아버지의 제안은 난감한 것이기도 했었습니다. 페드로는 아버지의 제안을 거절했으며 결국 조앙 6세는 아들 페드로는 브라질에 섭정으로 두고 나머지 가족들과 함께 포르투갈로 갔습니다.


이후 페드로와 포르투갈 본국은 마찰을 빚게 되는데, 페드로는 자유주의를 도입해서 포르투갈 본국의 정책과는 다른 정책을 펴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포르투갈 군이 반란을 일으키는 계기가 됩니다.페드로는 브라질을 떠나라는 압박을 받게 되는데 브라질 사람들은 페드로가 떠나지 않길 바라죠. 결국 이 문제는 반란을 일으켰던 장군이 항복하고 페드로는 브라질에 남게 되는것으로 마무리 됩니다. 

하지만 포르투갈 본국은 브라질과의 연합왕국 상태가 아닌 브라질을 식민지 상태로 두려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브라질은 포르투갈 본국에 대해서 독립을 주장하게 되죠.


브라질 독립운동은 국왕에 대한 반란이 아니라 포르투갈 본국의 의회인 코르테스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브라질 사람들은 페드로에게 브라질의 황위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게 됩니다. 페드로는 브라질의 여러곳을 돌면서 자신이나 국왕에 대한 브라질 사람들의 충성을 확인했었습니다. 이때 마리아 레오폴디나는 리우데자네이로에서 남편을 대신해서 섭정직을 수행했습니다. 이때 브라질은 막 독립국가가 되려하고 있었고 마리아 레오폴디나는 여기에 매우 큰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특히 브라질이 입헌군주국가가 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섭정으로써 멕시코 내각 회의에 참석중인 마리아 레오폴지나


1822년 9월 브라질은 포르투갈에 독립을 선언하게 됩니다. 그리고 브라질 사람들은 페드로에게 브라질의 황제가 되라고 요구하죠. 페드로는 아버지의 권리를 인정하면서 아버지가 돌아온다면 황위를 관두겠다는 조건으로 1822년 12월 황제가 됩니다. 그리고 마리아 레오폴디나는 브라질의 황후가 되죠.


마리아 레오폴디나는 이제 황후로 높은 지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은 비극으로 치닿고 있었습니다.



브라질 황제의 즉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다음 카페 "로얄 하우스"(http://cafe.daum.net/yulia0818)의 율리아님의 글 "브라질의 황후 마리아 레오폴디나"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