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스웨덴

태어나면서 왕위계승자였던 스웨덴의 공주들

엘아라 2013. 9. 30.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스웨덴 국왕님 즉위 40주년 기념식이 추석연휴동안 있었댑니다.--;;;

뒷북이지만 그에 대해서 글을 잠깐 쓰던가 말던가 해야겠습니다.

어쨌든 그건 그거고, 월요일날 해야할것들을 안 읽어서 또 땜빵들어갑니다.


자료를 찾다가 에스텔 공주 이야기까지 갔는데 에스텔 공주가 태어나면서 스웨덴 왕위계승자였던 세번째 공주라고 하네요. 베르나도트 가문은 현국왕 이전까지 귀천상혼과 살리카법을 동시에 적용했었거든요. 살리카법 문제는 좀 복잡한데 이걸 적용한 예는 로비사 공주때문이었는데 스웨덴은 살리카법을 안따랐지만 노르웨이가 살리카법을 따르는 바람에 노르웨이를 잃지 않으려고 그랬던것같더라구요.


뭐 현 스웨덴 국왕부터 첫번째 자녀의 계승으로 바꾸면서, 빅토리아 공주의 첫딸인 에스텔 공주가 왕위계승자가 되었는데 하여튼 태어나면서 왕위계승자였던 공주 세명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합니다.

사실 스웨덴에 공주가 별로 없어요 --;;;


태어나면서 왕위계승자였던 스웨덴의 공주들


스웨덴의 제1왕위계승자는 빅토리아 공주입니다. 하지만 공주가 태어났을때는 일반적으로 공주에게 계승권이 없다고 여겨졌었습니다. 왜냐면 이전에 칼 15세의 딸인 로비사 공주 역시 스웨덴 왕위계승을 하지 못햇었던 전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빅토리아 공주의 남동생인 칼 필립 왕자가 태어난뒤 스웨덴에서는 왕자에게만 왕위계승권을 주던것을 폐지하고 첫번째 자녀에게 왕위계승을 하도록 법률이 바뀝니다. 이로써 빅토리아 공주가 스웨덴의 왕위계승자가 된것이었죠. 그리고 빅토리아 공주의 장녀인 에스텔 공주는 어머니와 달리 제2왕위계승자로 바로 승인받게 됩니다.



에스텔 공주

2013년 이모 결혼식때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Estelle_of_Sweden.jpg


스웨덴 역사상 에스텔 공주처럼 태어나면서 왕위계승자로 인정받은 공주는 두명이 더 있다고 합니다. 한명은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딸이었던 크리스티나 공주이며 또다른 한명은 칼 11세의 딸인 헤드비그 소피아 공주라고 합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딸이었던 크리스티나 공주는 태어나면서 왕위계승자로 대접받았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였던 구스타프 2세 아돌프와 궁정사람들은 처음에 딸이 아닌 아들이 태어난것으로 알았으며 이때문에 후계자를 얻은 축하연을 베풀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국왕의 누나이자 국왕이 신뢰한 인물중 하나였던 누나 카타리나가 아이를 데리고 가서 국왕에게 딸이 태어났다는것을 알려야했을 정도였습니다.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아마도 더이상 적자를 얻지 못할것이라고 여겼었는지 크리스티나를 왕위계승자로 받아들였으며 특히 그가 독일로 떠나기 직전 공식적으로 크리스티나를 왕위계승자로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티나가 여왕이 된것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때문이었습니다. 크리스티나가 여섯살때 그녀의 아버지인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전사했고 스웨덴 왕위는 비게 되죠.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사촌이자 폴란드 국왕이었던 브와디스와프 4세는 아버지 지그문트 3세가  뺏겼던 스웨덴 왕위를 되찾고 싶어했으며, 고작 여섯살짜리 여자아이였던 크리스티나 보다는 자신이 훨씬더 적합한 왕위계승자라고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신하들은 가톨릭 교도였던 브와디스와프를 국왕으로 받아들이기 거부했고 "구스타프 바사(구스타프 1세)의 후손중 루터파 만이 스웨덴 왕위를 계승할수 있다"라는 법률을 정하므로써 브와디스와프의 왕위계승을 거부했으며 "남성"으로 한계를 짓지 않아서 여성이었던 크리스티나의 왕위계승을 가능케했었습니다.  결국 크리스티나는 여섯살의 나이로 스웨덴의 국왕이 됩니다.(하지만 정치가 뜻대로 되지 않자 현실도피로 가톨릭으로 개종하므로써 왕위를 버리게 되죠.)



크리스티나 여왕

개인적으로 가톨릭에 대한 호의...는 왕위를 버리고 도망갈 핑계였을뿐이라고 여깁니다.



헤드비그 소피아는 칼 11세의 딸이었습니다. 칼 11세의 할머니가 바로 구스타프2세 아돌프의 누나였던 카타리나였었죠. 칼 11세의 아버지인 칼 10세 구스타프는 구스타프 2세 아돌프의 조카이자 크리스티나 여왕의 사촌으로 크리스티나의 지지를 통해 스웨덴의 국왕이 됩니다. 그는 외동아들인 칼 11세를 뒀었죠. 칼 11세는 덴마크 공주인 울리카 엘레오노라와 결혼했는데 첫아이가 바로 헤드비그 소피아였습니다. 당시 스웨덴 상황에서 왕위계승자는 거의 없는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칼 11세는 외동아들이었으며, 칼 10세의 동생에게는 두아들이 있었지만,둘에게서는 그때까지 후손이 없었습니다. 이때문에 칼 11세의 첫째아이인 헤드비그 소피아가 태어나자 그녀는 왕위계승자로 인정받았었죠. 하지만 다음해에 동생인 칼 12세가 태어나면서 왕위계승권이 밀리게 되죠. 헤드비그 소피아는 동생인 칼 12세가 미혼으로 후계자가 없을때 그의 뒤를 이를 후계자로 여겨졌었습니다만, 그녀는 동생인 칼 12세보다 먼저 사망했습니다. 헤드비그 소피아의 아들이었던 홀슈타인-고토로프 공작인 칼 프리드리히는 표트르 대제의 딸인 안나 페트로브나와 결혼했으며 둘의 외아들인 페테르는 이모인 옐리자베타 여제에 의해서 러시아의 황위계승자가 됩니다. 그가 바로 예카테리나 2세의 남편이자 파벨1세의 아버지인 표트르 3세입니다.



헤드비그 소피아

칼 11세의 딸

홀슈타인-고토로프 공작부인

러시아의 표트르 3세의 할머니



더하기

칼 15세의 딸인 로비사 공주 역시 한때 스웨덴 왕위계승권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스웨덴은 여왕을 인정하는 나라였기에 로비사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스웨덴의 국왕이 되는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스웨덴은 노르웨이와 연합 왕국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노르웨이는 살리카법을 따르는 나라였었습니다. 이때문에 로비사가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면 노르웨이는 당연 스웨덴으로부터 분리 독립할것이기에 노르웨이를 잃을수 없었던 스웨덴은 로비사가 아닌 칼 15세의 동생인 오스카르 왕자를 왕위계승자로 지정하죠. 후에 오스카르 2세가 되는 오스카르 왕자는 아들만 넷이 있었습니다.



로비사 공주와 남편인 덴마크의 프레드릭 8세

재미난것은 노르웨이 때문에 로비사가 스웨덴의 여왕이 되지 못했었는데 결국 노르웨이는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했고 첫번째 국왕으로 로비사의 둘째아들인 칼왕자(호콘7세)를 국왕으로 선출하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