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47)마리아 아말리아 :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첫번째)

엘아라 2013. 8. 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들중 대충 성인으로 성장한 자녀들먼저 한뒤에 어려서 죽은 자녀들에 대해서 적어볼까합니다.


개인적으로 살짝 관심이 많은 마리아 아말리아군요.

마리아 아말리아는 젊은 시절 언니 마리아 크리스티나처럼 가난하고 정치적으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남자를 사랑했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는 편애했던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달리 마리아 아말리아에게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죠.

재미난 사실은 마리아 아말리아의 별볼일 없었던 연인은 훗날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그가 비텔스바흐 가문의 중요 상속자가 될줄 알았다면, 마리아 테레지아가 그렇게 매정하게 딸의 청을 거부하지는 않았을듯합니다. (뭐 그래도 부르봉가문과의 유대를 더 중요시해서 파르마로 시집보냈을거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더라구요. 개인적으로도 그 생각에 살짝 공감을 하구요.)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46)마리아 아말리아 :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아말리아

파르마 공작부인

Maria Amalia of Austria 

(26 February 1746 – 18 June 1804) 


마리아 아말리아는 프란츠 슈테판과 마리아 테레지아의 여덟번째 자녀로 빈에 있는 호프부르크 궁전에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 아말리아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다른 자녀들과 함께 어머니에 의해 여러 교육을 받습니다. 아이들은 춤,음악,연극,그림, 역사등과 약간의 수학 그리고 여러가지 언어를 배웠습니다. 

마리아 아말리아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기록에 의하면 약간은 오만하지만 활기차고 명랑한 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아말리아는 언니들인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마리아 엘리자베트와 동생들인 요한나 가브리엘라와 마리아 요제파 사이에 끼여있는 존재였습니다. 연년생 언니들과 연년생 동생들은 서로 친한 자매였으며 이 중간에 끼인 마리아 아말리아는 함께 교육받기 약간 어중간한 상태였었다고 합니다. 아마 이런 상황은 마리아 아말리아를 다른 딸보다 좀더 독립적인 성격으로 만들었을듯합니다. 


마리아 아말리아의 부모

프란스 슈테판과 마리아 테레지아


마리아 테레지아와 그녀가 신임했던 신하였던 카우니츠는 프로이센에 대항해서 부르봉가문과의 동맹을 추진했으며, 이에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들은 이미 어린시절부터 부르봉 가문과의 혼담이 오가기 시작합니다.마리아 아말리아 역시 정략결혼이 정해지게 되죠.

 마리아 아말리아가 22살 무렵 마리아 아말리아는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가난한 공작이었던 팔츠-츠바이브뤽켄-비르켄펠트의 카를이었죠. 비텔스바흐가문 출신이긴 했지만 팔츠의 작은 분가 출신에 상속받을 재산도 그다지 많지 않았기에 "합스부르크의 여대공"과는 어울리지 않는 남자였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 아말리아는 언니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무일푼이나 다름없는 작센의 알베르트와 결혼한것을 보고 그녀 역시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는 마리아 아말리아에게는 매우 단호하게 대했습니다. 모후는 부르봉가문과의 동맹을 원했으며 마리아 아말리아를 파르마 공작에게 시집보내길 원하게 되죠. 오빠인 요제프 2세는 이 계획에 찬성했는데, 그의 사랑하는 전처인 파르마의 이사벨라의 남동생에게 자신의 여동생을 시집보내는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죠. 결국 마리아 아말리아는 자신의 사랑을 이룰수 없었으며 자신보다 다섯살 어린 파르마 공작과 결혼하게 되죠.

(재미난것은 훗날 팔츠-츠바이브뤽켄-비르켄펠트의 카를은 팔츠 선제후의 후계자가 됩니다. 이때 팔츠 선제후는 팔츠 선제후령 뿐만 아니라 바이에른 선제후령까지 상속받았었는데, 이때 카를은 비텔스바흐 가문의 또다른 영지인 츠바이브뤽켄을 상속받았었죠.결국 카를은 비텔스바흐 가문의 영지 모두를 상속할 위치에 있게 되는데, 그는 바이에른 선제후령을 원했던 요제프 2세와 마찰을 빚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마리아 아말리아를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하게 했다면 "바이에른 계승전쟁"은 안일어났을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죠.--;; 마리아 크리스티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시키는것이 아니라 마리아 아말리아를 결혼시켰어야...--;;;)



팔츠-츠바이브뤽켄의 카를

그는 비텔스바흐 전체 영지를 상속받는 후계자가 됩니다만 영지를 다 상속받기전 후계자없이 사망했고 그의 상속권은 동생인 막시밀리안 요제프에게 물려지게 되죠. 그리고 막시밀리안 요제프는 바이에른의 초대국왕이 됩니다.



파르마 공작령은 이탈리아의 작은 공작령으로 파르마 공작령이 부르봉가문의 소유가 된것은 파르마 공작령의 상속녀였던 엘리자베트 파르네세가 부르봉 가문 출신인 에스파냐의 국왕 펠리페 5세의 두번째 부인이 되면서였습니다. 둘의 아들이었던 인판테 페르디난도가 파르마를 물려받았고 이후 부르봉-파르마 가문이 되죠. 합스부르크가문은 대대로 이탈리아와의 관계를 중요시했고 영향력을 확대하려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탈리아의 상당부분이 숙적이었던 부르봉가문의 영향력아래 들었었죠. 결국 마리아 테레지아는 부르봉가문과의 동맹은 물론, 이탈리아에서의 영향력을 지속하기 위해 딸들을 이탈리아로 시집보냈었고 마리아 아말리아도 파르마 공작과 결혼해야했었습니다.


마리아 아말리아의 남편이 되는 파르마 공작 페르디난도는 인판테 펠리페(파르마의 필리포1세)와 그의 부인인 프랑스의 루이즈 엘리자베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페르디난도의 할아버지는 에스파냐의 펠리페 5세였으며 외할아버지는 프랑스의 루이 15세였죠. 그의 누나인 이사벨라는 마리아 아말리아의 오빠인 요제프 2세와 결혼했었고,여동생인 마리아 루이사는 사촌이었던 에스파냐의 국왕 카를로스 4세와 결혼했었습니다.

페르디난도가 14살에 아버지 필리포 1세가 사망했기에 성인이 되기전 파르마 공작이 됩니다. 하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죽기 6년전에 사망했었죠. 페르디난도가 공작이 되었을때 파르마 공작령의 통치는 프랑스 출신의 수상이었던 기욤 뒤 틸롯이 계속 이어받았습니다. 이때문에 당시 파르마는 프랑스의 강한 영향을 받고 있었죠. 



파르마 공작 페르디난도

  왠지 외할아버지인 루이 15세랑 좀 닮은 느낌이 드는듯합니다.--;;


1769년 7월 23살의 마리아 아말리아는 오빠인 요제프 2세와 함께 파르마 공작과 결혼하기 위해 빈을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같은달 18살의 파르마 공작 페르디난도와 결혼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