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48) 마리아 아말리아 :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두번째)

엘아라 2013. 8. 13.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하다보니 마리아 아말리아를 두개로 나누네요.

아마도 다른 딸들인 마리아 카롤리나와 마리아 안토니아도 이렇게 나눌듯합니다.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48) 마리아 아말리아 :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두번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아말리아

파르마 공작부인

Maria Amalia of Austria 

(26 February 1746 – 18 June 1804)


마리아 아말리아는 파르마 공작과 결혼했지만 처음에는 그를 매우 탐탁치 않아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남편은 철없는 어린 아이같았기에 그녀는 한동안 남편과의 동침을 거부할정도였다고 합니다.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작의 외할아버지였던 프랑스의 루이 15세가 조언하는 편지를 보낼정도였다고 합니다.


마리아 아말리아와 그녀의 남편인 페르디난도는 매우 다른 성격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마리아 아말리아는 합스부르크가문 출신으로 거만하고 지배적이며 외향적인 성격이이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반면 그녀의 남편인 페르디난도는 어린시절 어머니를 잃었고 14살에 아버지를 잃었으며 그는 프랑스 출신의 신하에게 의지했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페르디난도는 내성적이며 경건햇고 정치에 대해서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아마도 마리아 아말리아가 "거만하고 지배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것은 그녀가 합스부르크가문 출신으로 부모에게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으며 남편보다 다섯살이나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합니다. 그녀의 남편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고 신하들에게 휘둘렸기에 마리아 아말리아보다 훨씬 소극적이었을듯합니다. 이런 성향은 결국 마리아 아말리아가 남편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정치적으로도 강하게 개입하는 계기가 됩니다.



페르디난도와 마리아 아말리아


마리아 아말리아는 이전까지 총리를 맡고 있던 프랑스 출신의 뒤 틸롯을 싫어했었습니다. 마리아 아말리아의 남편인 페르디난도 역시 뒤 틸롯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며 이에 아내가 영향력을 행사하는것을 말리지 않았던듯합니다. 어쨌든 마리아 아말리아는 뒤 틸롯을 해임하고 에스파냐 출신이자 카를로스 3세가 강력하게 추천했던 호세 델 라노를 총리로 삼았습니다. 이런 영향력은 프랑스측이 불쾌하게 여기게 됐는데 특히나 루이 15세는 뒤 틸롯을 해임한것에 대해 외손자에게 "부모가 신뢰한 신하"를 해임해서는 안 된다고 편지를 보낼정도였죠. 이것은 마리아 테레지아에게도 못마땅한 일이었는데 그녀는 딸을 시집보낸것이 부르봉가문들과의 우호를 위한 것이었는데 이런식으로 분란을 만드는 것은 동맹에 바람직한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아말리아


마리아 아말리아는 어머니의 영향력에서 벗어났으며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고분고분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후계자가 될 아들을 낳은 뒤에는 더욱더 그랬다고 합니다. 마리아 아말리아는 다른 자매들과 편지를 주고 받는등 연락을 하고 지냈는데 특히 부르봉가문으로 시집간 두 여동생들인 마리아 카롤리나와 마리아 안토니아와 매우 친하게 지냈으며 이들은 편지는 물론 의복이나 보석등 선물도 서로 주고 받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지막 편지중 하나는 마리아 아말리아에게 보내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카롤리나와 페르디난도

그리고 둘의 아이들


1796년 프랑스군이 이탈리아를 침공했을때 파르마 공작은 중립을 유지하려 했었죠. 하지만 나폴레옹은 파르마 공작령을 프랑스 영토로 귀속시키게 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보상으로 마리아 아말리아의 아들인 루도비코를 에트루리아 왕국의 국왕이 되게 해주죠.1802년 남편인 페르디난도가 사망하자 그녀는 프랑스군에 의해서 파르마에서 추방당하게 됩니다. 마리아 아말리아는 프라하로 갔으며 그곳에서 남은 생을 보냈습니다.



마리아 아말리아


마리아 아말리아는 페르디난도와의 사이에서 모두 아홉아이를 낳습니다. 이중 세명의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했는데 큰딸인 카롤리나는 작센 선제후의 아들과 결혼했으며,작센 국왕의 어머니가 됩니다. 아들인 루도비코는 나폴레옹에 의해 에트루리아 국왕이 되죠. 막내딸인 마리아 안토니아는 결혼하지 않았으며 수녀원으로 들어가서 "루이자 마리아 수녀"라는 이름으로 살았습니다. 



마리아 아말리아의아이들

맨 오른쪽의 아이인 카를로타만 성인으로 성장하지 못했으며 나머지 세 아이들은 성인으로 자랐습니다

왼쪽부터 카롤리나,마리아 안토니아,루도비코,카를로타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