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마리아 테레지아입니다.
음냐 한편으로 어떻게 줄일지 고민해봐야겠습니다.
앞에서 많이 적었는데 말입니다.-0-;;;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41) 마리아 테레지아 : 황제 카를 6세의 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대공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헝가리,보헤미아의 여왕
Maria Theresa Walburga Amalia Christina
(Maria Theresia)
(13 May 1717 – 29 November 1780)
너무나도 유명한 마리아 테레지아는 황제 카를 6세와 그의 부인인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카를 6세는 아버지 레오폴트 1세가 정한 계승 순서를 무시하고 자신의 후손이 자신의 조카들보다 우선으로 계승권을 갖는 국서 조칙을 1713년 통과했었습니다. 황제는 아들이 태어날것을 예상하고 이런 조칙을 취했지만, 결국 카를 6세에게도 살아남은 남성후계자는 없었고 결국 장녀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추정황위계승자가 되죠.
어린시절 마리아 테레지아는 황위계승자로 교육받지 못했었습니다. 카를 6세는 어쩔수 없이 장녀를 후계자로 선택했었지만 딸에게 제대로된 정치 교육시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카를 6세는 딸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단지 딸이 후계자를 낳아줘서 그 후계자를 통해 황위를 이어가길 바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부모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6세와 그의 부인인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의 엘리자베트 크리스티네
마리아 테레지아는 어린시절부터 로렌의 프란츠 슈테판에게 마음을 뺏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늘 남편을 사랑했지만, 그녀의 남편은 늘 아내에게만 충실한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는 아내 덕분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긴 했지만 실질적 정치는 모두 아내에게 맡겼었다고 합니다. 프란츠 슈테판은 군사적 재능이 부족했으며, 정치적 재능도 아내보다는 떨어졌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재정문제에서만은 매우 뛰어났는데 덕분에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으로 피폐해진 합스부르크가의 금고를 가득 채운 사람도 바로 프란츠 슈테판이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
로렌의 프란츠 슈테판
신성로마제국의 프란츠 1세
마리아 테레지아는 아버지 생전에 아들을 낳지는 못했었습니다. 아마도 황제는 딸도 계속 딸만 낳은것에 실망스러워했을듯합니다. 카를 6세가 사망한뒤,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이전의 약속을 깨고 마리아 테레지아의 상속을 반대했고 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이었죠. 이 전쟁초기 마리아 테레지아는 매우 힘들어했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죽었을때 임신중이었으며, 합스부르크가의 재정은 매우 빈곤한 상태로 전쟁을 치루기 힘든 상황이었죠. 하지만 이때 마리아 테레지아는 헝가리에 의지하게 됩니다. 상복을 입고 후계자인 어린 아들을 데리고 헝가리 의회에 호소한 것은 매우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복잡한 오스트리아 계승전쟁이후 마리아 테레지아는 여러면에서 오스트리아를 개혁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그녀는 프로이센을 주적으로 여겼으며, 프로이센을 견제하기 위해 여러가지 노력을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숙적이었던 부르봉가문과 연합한것이었죠. 딸들은 부르봉가문으로 시집보냈는데 특히 막내딸은 프랑스의 왕위계승자와 결혼시키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프랑스와 연합해서 프로이센에 복수하기 위해 7년 전쟁을 벌였지만, 별 소득은 없었습니다.
신하들과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
마리아 테레지아는 열여섯명의 아이를 낳았고 이중 열세명의 아이가 유아기를 넘겨서 성장햇었죠. 장남인 요제프와 삼남인 레오폴트는 모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습니다. 사남인 페르디난트는 모데나 공작의 상속녀였던 베아트리체 데스테와 결혼해서 오스트리아-데스테 분가를 형성합니다.
딸들중 둘째인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여제가 제일 사랑한 딸로, 가난하고 보잘것 없는 지위의 남자를 사랑했지만 마리아 테레지아는 다른 딸들과 달리 그 결혼을 허락했으며 지위와 재산을 보장해주기까지 했습니다. 이때문에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늘 동생들의 질투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아말리아는 파르마 공작과 결혼했는데 사실 마리아 아말리아 역시 언니인 마리아 크리스티나처럼 보잘것없는 작은 공작을 사랑했었습니다. 하지만 여제는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달리 마리아 아말리아의 결혼은 허락하지 않았고 이에 마리아 아말리아는 어머니와의 사이가 매우 안 좋았다고 합니다. (그 공작이 비텔스바흐가문의 영지 모두를 상속받게 될 사람이었다는...) 마리아 카롤리나는 나폴리의 왕비가 되었는데 마리아 카롤리나는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를 가장 많이 닮은 딸로 정치에 매우 깊게 관여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막내딸은 프랑스의 왕비가 되는 마리아 안토니아였죠.
자녀들과 함께 있는 마리아 테레지아
마리아 테레지아는 젊어서는 외적 투쟁을 경험했지만 나이 들어서는 자식들과의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특히 아들인 요제프 2세와 부딪혔는데 마리아 테레지아는 요제프 2세의 급진적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아들의 정책을 못미더워했습니다. 요제프 2세 역시 어머니의 정책에 불만을 품었으며 자신을 완전히 믿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불신을 가지고 있었죠. 또 후계자 문제도 골치아팠는데, 요제프 2세는 사랑했던 첫 아내가 죽은뒤 결혼하길 거부했었으며, 억지로 한 결혼에서 아내를 차갑게 대해서 후계자가 없었죠. 하지만 다른 아들이었던 레오폴트에게서 후계자를 얻었으며 마리아 테레지아는 이에 매우 기뻐했었다고 합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1773년
마리아 테레지아의 마지막 공식 초상화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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