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합스부르크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8)마리아 : 카를 5세의 딸

엘아라 2012. 9. 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카를 5세의 딸들까지만 하고 에스파냐의 인판타들은 더 안할겁니다만...마리아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 글을 썼었죠. 사촌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랑 결혼해서 황후가 되서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에 대해서 쓸때 적었죠-0-;;

그래서 안할까 하다가 은근슬쩍 그냥 넣기로 했습니다.-0-;;;;;;;;;;;;;;;;;;;;;;;;;;;;;


갑자기 할일이 생기는 바람에 타임라인이 정리가 안된다죠-0-;;;;

글이 아주아주 미묘하게 틀립니다.-0-;;;;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8)마리아 : 카를 5세의 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여대공

에스파냐의 마리아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의 딸

막시밀리안 2세의 황후

Archduchess Maria of Austria

(21 June 1528 – 26 February 1603)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여대공은 에스파냐의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5세(에스파냐의 카를로스 1세)와 그의 부인인 포르투갈의 이사벨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카를 5세는 에스파냐의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어머니인 이사벨라 역시 독일에 가있는 남편을 대신해서 섭정일을 맡아보고는 했죠.

마리아는 형제자매들과함께 톨레도와 바야돌리드에서 자랐는데 오빠 동생들과 매우 사이가 좋았으며 특히 오빠인 펠리페 2세와는 개인적 관심사나 정치적 관점을 평생 공유할정도였습니다.




마리아의 부모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와 포르투갈의 이사벨라



1548년 마리아는 사촌인 오스트리아의 막시밀리안 대공과 결혼합니다.마리아와 막시밀리안은 처음에는 스페인 궁정에서 지냈는데, 마리아의 아버지인 카를이 독일의 여러곳을 다닐 동안 막시밀리안은 아내인 마리아와 함께 스페인에서 황제의 대리인으로써 스페인을 통치했습니다. 그후 1552년 마리아는 남편과 함께 시아버지가 있는 빈의 궁정으로 옮겨가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1558년부터 3년간 펠리페 2세가 스페인을 비운 동안 마리아는 다시 마드리드로 돌아와서 오빠를 대리해서 스페인을 통치하기도 했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막시밀리안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2세


마리아가 스페인에서 돌아온 후 마리아의 남편인 막시밀리안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됩니다. 이에 마리아도 황후가 되죠. 마리아는 가톨릭에 매우 열성적이었으며 이 때문에 루터파에 호의적이었던 남편의 정책에 대해 자주 불만을 토로했다고 합니다. 이런 마리아는 자신의 두 아들인 루돌프와 마티아스에게 매우 강한 영향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1578년 남편이 죽은후 마리아는 관례대로 궁정에서 은퇴했을듯합니다. 그리고 1582년 고향인 에스파냐로 돌아갑니다. 그녀가 돌아간 이유는 여러가지였을듯한데 아마도 1580년 딸이자 오빠 펠리페 2세의 아내였던 안나가 사망한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합니다. 안나의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필요했을테고 오빠와 친했던 마리아는 고국으로 돌아가길 바랬을수도 있을테니까요



아마 남편이 죽은뒤의 마리아



마리아는 에스파냐 궁정에서 "오스트리아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 됩니다. 마리아는 펠리페 3세의 아내가 되는 마르가레테에게 큰 영향력을 미칩니다. 마르가레테는 황제인 페르디난트 1세의 손녀이자 황제인 페르디난트 2세의  여동생이기도 했죠. 후에 마르가레테는 펠리페 3세의 궁정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데 마르가레테가 가톨릭에 열성을 보였던것도 마리아의 영향이었을듯합니다.


또한 마리아는 에스파냐에서 에스파냐 음악가들을 후원했는데 그녀가 후원한 사람중에는 16세기 에스파냐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가로 알려져잇는 토마스 루이스 데 빅토리아도 있었습니다.



토마스 루이스 데 빅토리아의 오피키움 데펀토리움중

이것은 마리아의 장례식음악으로 작곡된 곡으로 일반적으로 "레퀴엠 매스"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에스파냐에서 마리아는 마드리드에 있는 Monastery of Las Descalzas Reales에서 거주합니다. 이곳은 원래 마리아의 부모가 거처하던 곳으로 마리아의 여동생인 후아나가 과부가 된 뒤 에스파냐로 돌아와서 이곳을 수녀원으로 만들어서 그곳에 기거했었던곳이었죠. 마리아는  에스파냐로 돌아올때 막내딸인 마르가레타를 데려왔고 마리아는 딸과 함께 나머지 생을 수녀원에서 머물렀습니다. (마르가레타는 신앙심이 깊었고 수녀가 됩니다.)


마리아와 막시밀리안 2세 사이에서는 모두 열여섯명의 자녀가 태어납니다만 살아남은 아이는 여섯명이었습니다. 그중 큰딸인 안나는 마리아의 오빠인 펠리페 2세와 결혼해서 에스파냐의 펠리페 3세의 어머니가 되죠.   아들인 루돌프와 마티아스는 모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고 다른 딸인 엘리자베트는 프랑스의 샤를 9세와 결혼해서 프랑스의 왕비가 됩니다. 




마리아의 두딸들

안나와 엘리자베트

안나는 에스파냐의 왕비였고 엘리자베트는 프랑스의 왕비였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