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게으른 엘입니다.
제가 보통 삼사일치 글을 미리 써놓거든요
그래야 다음 글쓸자료도 찾아보고 그러니까요..(백수인데도 이리 바쁘다니..ㅠ.ㅠ)
그런데 며칠간 좀 멍때리고 있었더니...당췌 글이 안써집니다..흑
이렇게 후다닥 쓰면 왠지 적응이 안된다죠..ㅠ.ㅠ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5) 이사벨라 : 미남왕 필립의 딸
카스티야의 이사벨
오스트리아의 이사벨라
부르고뉴의 엘리자베트
덴마크의 엘리자베트 왕비
오스트리아 여대공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 왕비
Isabella of Austria (also known as Isabella or Elisabeth of Burgundy, of Habsburg,of Denmarkor of Castile)
(18 July 1501 – 19 January 1526),
오스트리아의 이사벨라, 부르고뉴의 엘리자베트,합스부르크의 엘리자베트, 카스티야의 이사벨등으로 불리는 이사벨은 합스부르크가 출신으로 부르고뉴 공작이자 아내의 권리로 카스티야의 국왕이 되었던 미남왕 필립(에스파냐식으로는 펠리페1세)과 그의 부인인 카스티야의 후아나(후아나 라 로카)의 셋째아이로 태어났습니다.
필립과 후아나
아버지가 죽은후 이사벨은 오빠인 카를과 언니인 레오노르와 함께 고모인 마르가레타가 총독으로 있던 네덜란드로 보내져서 성장하게 됩니다. 이사벨은 합스부르크가문 출신으로 황제의 손녀였으며, 재산도 많았으며 또 에스파냐 왕위계승권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훌륭한 신부감으로 왕비가 되기에 충분했었죠. 덴마크의 왕위계승자와의 혼담이 오가게 됩니다. 사실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세는 이사벨의 언니인 레오노라와 결혼하길 원했었지만, 합스부르크가문에서는 레오노라보다는 이사벨이 결혼하기 적당하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이사벨과 이사벨의 언니 오빠
맨 왼쪽이 카를 5세, 다음에 레오노라 그 옆이 이사벨
1514년 이사벨은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세와 대리혼을 치룹니다. (대리혼을 치루면 실제로 결혼한것은 아니지만 결혼한것과 마찬가지로 취급되어서 아마 이사벨은 이때부터 덴마크 왕비로 대접받았을듯합니다.) 하지만 바로 덴마크로 가지 않고 일년정도 네덜란드에서 더 머물렀는데, 이동안 이사벨은 남편의 초상화를 보면서 남편에 대한 사랑을 키웠다고 합니다. 14살의 이사벨은 덴마크로 갔으며 20살 많은 남편인 크리스티안 2세와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이사벨
1515년경
"엘리자베트"라는 이름으로 덴마크와 노르웨이에서 정식으로 왕비로 대관합니다. 하지만 그는 결혼 첫해에 아내를 외면합니다. 그에게는 정부가 있었을뿐 아니라 열네살의 어린 소녀에게는 관심이 없었던것이죠. 궁정은 크리스티안 2세의 정부와 그녀의 어머니가 장악했습니다.
이 문제는 엘리자베트의 할아버지인 막시밀리안 1세가 화를 내는 계기가 됩니다. 그는 손녀가 홀대받는것을 못마땅해했으며 이 문제는 외교적 마찰까지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엘리자베트와 크리스티안 2세의 관계는 쉽게 좋아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1517년 크리스티안 2세의 정부가 죽자 국왕과 왕비는 사이가 좀더 가까워집니다. (크리스티안 2세의 정부는 아마 독살됐을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2세
1515년경
1520년 크리스티안 2세는 스웨덴의 국왕으로 즉위했으며, 엘리자베트 역시 스웨덴의 왕비가 됩니다. 크리스티안 2세는 자신의 후계자가 미성년일때 자신이 죽을경우 엘리자베트를 섭정으로 임명하게 해달라고 스웨덴 의회에 부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엘리자베트는 한번도 스웨덴을 가본적이 없는데 크리스티안 2세가 왕위에 있는 동안 그녀는 계속 임신중이었기 때문이었죠. 엘리자베트는 남편이 스웨덴에 가있는동안 덴마크에서 섭정의 지위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엘리자베트
1520년경
1523년 덴마크 귀족들에 의해서 크리스티안 2세가 퇴위당한후, 국왕으로 옹립된 크리스티안 2세의 숙부인 요한은 엘리자베트의 친정식구들과 반목하는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녀에게 "대비"지위를 유지하면서 덴마크에 머무는것을 허락하겠다는 편지를 독일어로 써서 보냅니다. 하지만 그녀의 남편은 네덜란드로 망명을 떠나야만했죠. 이에 엘리자베트는 이에 라틴어로 된 답변을 보내왔는데 내용은 ubi rex meus, ibi regnum meum 로 이것은 "나의 국왕이 있는곳이 내 왕국입니다."라는 의미로 요한의 제안을 거절한것이었죠.
엘리자베트는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덴마크를 떠나 네덜란드로 갑니다. 이후 엘리자베트와 크리스티안은 왕위를 다시 되찾기 위해 독일 여러곳을 여행하면서 힘을 얻으려 합니다. 이때 엘리자베트는 남편과 함께 다니기도 했으며, 또 따로 자신의 친척들을 홀로 만나기도 했었습니다. 이런 여행중에 엘리자베트는 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녀는 공식적으로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종교에 대한 관점이 신교와 매우 흡사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공식적으로 개종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 문제때문이었을듯합니다.
엘리자베트
19세기에 그려진 그림
1525년 봄 엘리자베트는 심각한 병에 걸렸고 완쾌되기도 전에 여름에 다시 독일을 여행하면서 상태가 악화됩니다. 그리고 1526년 1월 24살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엘리자베트는 죽으면서 고모인 마르가레타에게 남편의 복위에 대해서 부탁했다고 합니다. 엘리자베트가 죽은후, 논란이 있었지만 합스부르크가에서는 엘리자베트의 장례를 가톨릭식으로 치룹니다.
엘리자베트는 크리스티안 2세와의 사이에서 모두 여섯아이를 낳습니다. 하지만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는 딸들인 크리스티나와 도로테아 둘밖에 없었습니다. 크리스티나는 밀라노 공작과 결혼했었고 후에는 로렌 공작과 재혼합니다. 도로테아는 팔츠의 선제후와 결혼했습니다.
엘리자베트의 세 아이들
요한,크리스티나,도로테아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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