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미남왕 필립의 딸들 끝입니다.
다음은 카를 5세의 딸들을 해야겠죠. 카를 5세의 딸들까지만 하고 에스파냐는 더이상은 안할겁니다.
에스파냐는 에스파냐 공주들 이야기할때 이야기해야죠..ㅎㅎㅎㅎ
합스부르크의 여대공들...(7)카타리나 : 미남왕 필립의 딸
오스트리아의 카타리나
오스트리아의 여대공
포르투갈의 왕비
Catherine of Austria
Catherine of Castile or Catherine of Burgundy
(14 January 1507 – 12 February 1578)
오스트리아의 카타리나, 카스티야의 카타리나, 부르고뉴의 카타리나등으로 불렸던 카타리나는 미남왕 필립과 그의 부인인 카스티야의 여왕 후아나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필립은 카타리나가 태어나기 전인 1506년 사망했고 카타리나는 유복자로 태어났습니다. 이때문에 그녀의 어머니인 후아나는 자신의 막내딸과 절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카타리나라는 이름은 이모인 잉글랜드의 캐서린 왕비(헨리 8세의 왕비)에서 따온것이라고 합니다.
필립이 죽자 후아나의 아이들중 대부분은 고모가 있는 네덜란드로 보내져서 교육받습니다. 하지만 페르디난트와 카타리나는 어머니 곁에 남았죠. 하지만 아들이었던 페르디난트는 외할아버지의 궁정에서 교육되었던 반면 딸인 카타리나는 어머니인 후아나 곁에 남았습니다. 이것은 카타리나의 어린시절을 매우 불행하게 하는것이었습니다.
카타리나의 부모
부르고뉴 공작이자 카스티야의 공동국왕이었던 필립과 카스티야의 여왕 후아나
후아나는 카스티야의 여왕이었지만, 정치적 실권은 남편인 필립에게 있었습니다. 그가 죽자 후아나의 아버지인 페르난도는 카스티야의 왕위를 차지하고싶어했죠. 이때문에 딸을 거의 유폐시키다시피하고 난뒤 자신이 섭정이 됩니다. 이 과정에서 후아나의 정신상태를 문제 삼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후아나는 "후아나 라 로카"(미친 후아나)라는 이름으로 널리 기억되게 됩니다.
카타리나는 유폐된 어머니와 시녀 두명과 함께 생활했는데 카타리나는 하루종일 방안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것없이 창밖만 하염없이 보는것이 전부였었다고 합니다. 이런 카타리나의 생활이 좀 나아진것은 큰 오빠인 카를 5세가 큰언니와 함께 에스파냐로 돌아온 1517년이 되어서야 겨우 자유로와졌다고 합니다.
유폐된 후아나와 그녀의 딸 카타리나
20세기 그림
카나리나는 1525년 사촌인 포르투갈의 국왕 주앙 3세와 결혼합니다. 둘의 결혼은 전형적인 정략결혼으로 포르투갈과의 동맹이 필요했던 카를 5세의 의지이기도 했습니다. 카타리나의 언니인 레오노르는 주앙 3세의 아버지와 결혼했었는데 이 역시 포르투갈과의 동맹때문에 정략결혼한 것이었죠.
포르투갈의 주앙 3세
포르투갈에서 카타리나는 매우 활동적인 왕비로 살았으며 포르투갈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남편이 죽은후 3살된 손자가 즉위했을때 며느리를 체치고 자신이 손자의 섭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560년경부터 섭정직을 사퇴하라는 압력을 받았고 결국 1562년 섭정직을 사퇴한후 수녀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만, 손자의 교육에 지속적으로 관여하기도 했습니다.
카타리나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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