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막내딸까지 왔습니다.
이전 스웨덴 왕가에 대해서는 제가 아직 잘 모르는 관계로 아마 안할듯합니다.
칼마르 동맹시기에는 덴마크 국왕이 스웨덴 국왕도 겸했기 때문에 나중에 덴마크 공주들에 대해서 쓸 기회가 되면 그때 쓰면 될듯하거든요.
그 이전 시기는 제가 아직 보지 않아서 말입니다.
하여튼 나중에 하던가 말던가 하죠..ㅎㅎㅎ
다음에는 영국 할려다가 영국만 너무 하는것 같아서 합스부르크가의 여대공들 하기로 했습니다.
아마 제 예상으로는 이제 일년 내내 화요일날 글 걱정은 없을듯합니다.-0-;;;
스웨덴의 공주들...(20)엘리자베트 구스타프스도테르 바사 : 구스타프 1세의 딸
스웨덴의 엘리자베트
엘리자베트 구스타프스도테르 바사
메클렌부르크 공작부인
Princess Elizabeth of Sweden,
Elisabet Gustavsdotter Vasa;
(5 April 1549- 20 November 1597),
이전까지 이 그림은 에릭 14세의 왕비였던 카린 몬스도테르의 그림으로 알려져있었는데 현재는 엘리자베트의 초상화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스웨덴의 엘리자베트는 구스타프 1세와 그의 두번째 부인인 마르가레타 왕비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엘리자베트의 언니인 소피아가 형제자매들중 가장 불행했던 사람이었다면 엘리자베트는 가장 행복했던 사람으로 알려져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가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험난한 과정을 걷게 됩니다.
엘리자베트는 자라면서 아름답고 명랑한 성격의 여성으로 성장합니다. 유쾌한 성격이었지만 평온하다는 평가도 있었다고 하니 얌전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성격이었던듯합니다. 그녀의 외모는 금발머리에 예쁘다는 평가였죠. 그녀는 다른 언니들처럼 정략결혼에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1562년 13살의 엘리자베트는 메클렌부르크-귀스트로의 공작 알브레히트 7세의 아들이었던 크리스토프와 약혼합니다. 알브레히트 7세는 메클렌부르크 가문중에서 스칸디나비아 왕위계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던 가문의 직계였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덴마크와의 마찰이 있었는데 아마도 스웨덴측에서는 이런 덴마크를 견제하기 위해 엘리자베트와 크리스토프의 약혼이 성사되었을듯합니다.
하지만 크리스토프가 영토문제로 전쟁을 하다가 포로가 되었고 여러가지 정치 문제로 오래도록 풀려나지 않게 되자 결국 약혼이 깨지게 됩니다. 약혼이 깨진후 엘리자베트의 오빠들은 예쁜 자신의 여동생을 위해 좋은 혼처를 찾아다닙니다. 독일과 이탈리아의 혼처를 알아봤는데 혼담이 오간 상대중에는 투스카니의 대공이었던 프란체스코 1세도 있었다고 합니다.
1574년 요한 3세는 프랑스의 대비였던 카트린느 드 메디시스와 함께 엘리자베트와 프랑스의 앙리 3세의 혼담을 추진합니다. 카트린느는 이 결혼이 프랑스에 상당히 이익이 될것이라고 여겼는데 먼저 엘리자베트는 국왕의 딸이자 국왕의 여동생이었으며, 엘리자베트의 조카인 시기스문드는 폴란드 공주가 어머니였으며 이때문에 폴란드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력을 확대할수 있을것이라 여겼다고 합니다. 더불어 합스부르크가문에 대항하는 좋은 동맹이라고 여겼습니다.
프랑스 대사는 엘리자베트의 아름다움과 성격에 대해서 극찬하는 보고서를 대비에게 보낼정도였죠. 결혼이 거의 합의되기 직전 앙리 3세는 로렌의 루이즈와 결혼하기로 결정하고 발표합니다. (앙리 3세와 로렌의 루이즈와의 결혼은 신데렐라 이야기에 버금가는 이야기입니다. 어린시절 계모밑에서 불행했던 소녀는 국왕과 결혼해서 왕비가 되는 이야기라죠. 언제 이이야기해야겠습니다.)
프랑스의 앙리 3세
혼담이 여러번 깨졌지만 엘리자베트는 절대 이에 대해 우울해하는 내색을 보이지 않았으며 스웨덴 궁정에서 평온한 삶을 살았고 가족들이 화목하게 지내는데 무척 노력했다고 합니다. 에릭 14세의 왕비가 되는 카린 몬스도테르는 그녀의 시녀였다고 합니다. 또 오빠들의 사생아 자녀들에 대한 양육 역시 그녀가 책임졌습니다.
큰오빠인 에릭 14세가 폐위될때 형제자매들중 큰오빠의 곁에서 가장 나중에 떠난 인물이 바로 엘리자베트였다고 합니다.그녀는 새어머니인 카타리나와 언니 소피아와 함께 제일 나중에 떠난 인물이었죠. 엘리자베트는 형제자매들이 다툴때 늘 중재하는 역할을 떠맡았습니다.
1577년 28살의 나이에 엘리자베트는 다시 결혼할 기회를 갖게 됩니다. 바로 첫번째 약혼자였던 메클렌부르크의 크리스토프와 다시 약혼한것입니다. 크리스토프는 1572년 덴마크 공주와 결혼했었지만 그녀가 1575년 사망했기에 홀몸이었죠. 둘의 결혼에는 장애가 많았던듯합니다. 왜냐면 약혼 발표후 3년이나 지난 1581년 결혼하기 때문이죠. 나이가 어린것도 아닌데 이렇게 약혼기간이 긴것은 대부분 결혼하는데 여러가지 방해가 있을경우 많이 그렇습니다. (오랜 약혼기간중 지쳐서 포기하게 만드는...-0-;;)
엘리자베트
3년간의 약혼기간중 엘리자베트와 크리스토프는 서로에 대해 매우 진실한 사랑을 확인합니다. 둘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으며 단순히 정략결혼이 아니었기에 이런 오랜 약혼기간을 견딜수 있었던것이죠. 1581년 슈베린에서 결혼한 엘리자베트는 남편과 함께 독일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딸이 한명 태어납니다.
1592년 남편인 크리스토프가 사망하자 엘리자베트는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1597년 갑자기 사망했고 스웨덴에 묻혔다고 합니다. 그녀는 처음에 남편곁에 묻히고 싶었던듯합니다. 왜냐면 슈베린에 있는 가족묘지에 크리스토프의 무덤에는 크리스토프와 엘리자베트의 조상이 함께 조각되어있다고 합니다.
슈베린에 있는 크리스토프의 묘
저기 옆에 조각되어있는 사람이 엘리자베트라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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