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글쓰기 무진장 싫은 엘입니다.
그래서 그냥 아무생각없이 좀 놀기로 했습니다..-0-;;;;
즐겁게 놀다보면 다시 의욕에 불타오르겠죠....
이렇게 귀차니즘에 휩쌓이면 곤란한데 말입니다.--;;;
하여튼 어디서 써놨던글 또 가지고 왔습니다.
스웨덴의 구스타프 3세와 소피아 마그달레나 왕비 이야기는 늘 제가 관심갖는 이야기중 하나랍니다.
스웨덴의 구스타프3세와 소피아 마그달레나 왕비 그리고 스캔들
구스타프 3세
스웨덴의 구스타프 3세는 왕위에 오르기 전 덴마크와의 평화조약의 일환으로 덴마크 공주였던 소피아 마그달레나와 결혼했다. 둘은 친척관계였는데 구스타프 3세의 어머니인 로비사 울리카 왕비와 소피아 마그달레나의 어머니인 루이세 왕비가 사촌간이었다. (로비사 울리카는 조지 1세의 외손녀였고, 루이세왕비는 조지 1세의 친손녀입니다.)
소피아 마그달레나는 혼수로 스웨덴에 중요한 영지를 가져다 주었기에 스웨덴 궁정과 시아버지인 아돌프 프레데릭 국왕은 며느리를 따뜻하게 대해줬다. 하지만 시어머니이자 강한 성격의 로비사 울리카 왕비는 며느리를 못마땅해했다. 그녀는 소피아 마그달레나가 아닌 자신의 조카인 브란덴부르크-슈베트의 필리피네를 며느리로 맞고 싶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의회는 왕비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고 숙적이었던 덴마크 공주를 며느리로 들인것이었다.
덴마크의 소피아 마그달레나
구스타프 3세의 왕비
소피아 마그달레나와 구스타프 3세간에는 그다지 활발한 교류가 없었다. 둘은 서로에 대해서 잘 몰랐으며 정략결혼이었기에 사이가 소원했다. 게다가 구스타프 3세의 어머니인 로비사 울리카 왕비는 며느리와 아들이 잘 지내는것을 탐탁치 않게 여기기까지 했다.
이런 서먹한 관계는 후계자 문제때문에 더욱더 복잡해져갔다. 구스타프3세는 정부가 있는것도 아니었음에도 왕비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어디 숨겨둔 사생아를 얻었다는 소문조차 없었기에 당시 스웨덴 궁정에서는 그가 "동성연애자"일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전해진다. 어쨌든 사이가 좋지 않은 왕비사이에서 자녀를 얻는것을 단념하고 있었던 구스타프 3세는 동생인 쇠데르만란드 공작 칼을 결혼시켜서 후계자를 얻으려했다. (그는 이미 결혼전 사생아 아들을 얻었다.) 하지만 이것도 뜻대로 잘 되지 않았다.
구스타프 3세의 동생
쇠데르만란드 공작 칼
칼 13세
그런데 결혼 8년만에 왕비가 임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스캔들로 발전한다.
사실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도 결혼 7년만에 임신했었다. 루이 16세가 아내에게 꼼짝 못한 이유중 하나가 바로 이부분이었는데 궁정에서는 매일 마리와 루이가 "결혼을 완성시켰는가"에 대해서 쑥덕댔을정도였다. 칠년간 이런 뒷담화를 참고 살았던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소심한 성격의 루이 16세가 쩔쩔맸던것은 당연한 일일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스웨덴의 궁정은 좀 다른 양상이었다. 이미 궁정에서는 구스타프 3세가 "동성연애자"라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져있었다. 이런때 왕비가 임신한것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곧 왕비가 임신한 아이가 국왕의 아이가 아니라 국왕의 시종인 문크 백작의 아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구스타프 3세의 동생이자 자신이 국왕이 될 야심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던 칼은 어머니에게 "궁정에서 여자들이 외간남자들과 동침한다"라고 이야기 하면서 왕비의 부정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이에 며느리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로비사 울리카 왕비는 아들에게 공개적으로 왕비가 임신한 아이의 아버지를 조사해야한다고 주장하게 된다. 모후는 아들에게 "시종의 아들을 국왕으로 만들수없다"라고 까지 했다.
이런 모후의 반응에 구스타프 3세와 소피아 마그달레나 왕비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국왕부부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 되는 조사가 이루어진다.
구스타프 3세의 어머니
로비사 울리카 왕비
구스타프 3세는 이 문제로 어머니가 죽기 직전까지 어머니와 만나지 않습니다.
이 조사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다. 국왕의 시종이었던 문크 백작이 어떤 일을 했는지 공개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후계자 문제때문에 고민하던 국왕과 왕비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길 원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바로 문크백작이었다. 문크백작은 국왕부부에게 잠자리를 어떻게 하는지 가르치는 역할이었던 것이다. 국왕부부는 서로 "성적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였기때문에 어떻게 잠자리를 하는지 몰랐으며 결국 중간에서 문크백작이 둘에게 이것을 가르쳤다는것이다.
결국 왕비가 임신한 아이는 국왕의 아이가 맞다는것이 밝혀졌다. 국왕은 어머니에게 공개서한에 대한 철회를 정식으로 요청했고 왕비와 왕실 가족은 결국 이를 철회하고 왕비의 아이가 후계자임을 인정해야만했다. 구스타프 3세는 어머니가 죽기 직전까지 어머니와 만나지 않았으며 어머니의 임종시에 겨우 화해를 했다. 또 소피아 마그달레나 왕비는 충격으로 다시는 시어머니와 말을 하지 않았다.
이스캔들은 국왕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일중 하나였다. 신권과 왕권이 늘 투쟁중이었던 스웨덴 정치사에서 꽤나 치명적인 사건이었을것이다. 실제로 국왕이 아이없는 귀부인에게 농담을 건넸을때 그 귀부인이 "제 남편은 선생을 들일만큼 부유하지 않습니다."라고 답변했다는 기록이 있을정도였다.
그리고 태어난 후계자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생부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따라다녔다. 이는 문크 백작이 국왕부부사이에 어떤 일을 했는가에 대한 상상의 결과였으며 심지어는 왕비가 국왕과 이혼하고 문크 백작과 재혼했다는 소문까지 퍼질정도였다.
이 스캔들에 대한 논란은 후대에 좀더 과장되는 경향이 있었다. 왜냐면 소피아 마그달레나가 낳은 후계자는 바로 구스타프 4세 아돌프였기때문이다. 그가 쫓겨난후 베르나도테 가문이 왕위를 얻게 되는 과정에서 그의 후손들은 여전히 스웨덴 왕위계승권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칼 14세 요한은 의회의 지지 외에는 정당성을 입증할만한 근거가 없었다. 그는 스웨덴의 왕가와는 전혀 무관한 가문 출신이었으며 심지어 평민출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출생을 의심할만한 스캔들"이야 말로 구스타프 4세 아돌프의 후손들에게 치명적일수 있었다. 이때문에 칼 14세 요한때 이 스캔들에 대한 과장된 이야기가 많이 나돌았다고 한다.
현재 대부분 연구자들은 구스타프 4세 아돌프가 구스타프 3세의 아들이라는 점을 의심치 않고 있다.
구스타프 3세와 소피아 마그달레나의 아들
구스타프 4세 아돌프
...개인적으로는 외모가 딱 아부지 눈에 외할아버지 코라는 생각을 한다죠.
코가 외할아버지 코랑 똑같이 생겼거든요.
자료출처
위키피디어(스웨덴어 포함)
드라마 Gustav III's äktenskap (Stv,2001)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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