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합스부르크가를 잇게해주는 분이 나오시는군요.
개인적으로 스페인 합스부르크쪽이 근친결혼이 더 심했다고 여겨지거든요.
거긴 진짜 통혼한곳이 오스트리아 아니면 프랑스인데다가 후계자는 모두 오스트리아쪽 신부에게서 태어났죠. 이렇다 보니 오스트리아쪽보다 스페인쪽이 가계가 더 빨리 단절된듯합니다.-0-;;;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33)팔츠-노이부르크의 엘레오노르 마그달레네 : 레오폴트 1세의 황후
팔츠-노이부르크의 엘레오노르 마그달레네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Eleonore Magdalene of Neuburg
(Eleonore Magdalene Therese; 6 January 1655 – 19 January 1720)
팔츠-노이부르크의 엘레오노르 마그달레네는 팔츠-노이부르크의 필리프 빌헬름과 그의 부인인 헤센-다름슈타트의 엘리자베트 아말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팔츠-노이부르크 가문은 비텔스바흐 가문의 팔츠쪽 분가로 가톨릭을 믿는 분가였습니다. 그녀의 아버지인 필리프 빌헬름은 후에 친척관계였던 팔츠 선제후가 후계자없이 사망하자 그의 뒤를 이어 팔츠 선제후가 되죠. 엘레오노르의 어머니인 엘리자베트 아말리는 매우 매력적인 외모로 이름이 높았으며 나이들어서도 이런 매력을 잃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나 아름다운 금발머리는 모두에게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딸들은 이런 어머니의 매력을 물려받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필리프 빌헬름과 엘리자베트 아말리는 매우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엘레오로느 마그달레네의 부모
팔츠-노이부르크의 필리프 빌헬름과 헤센-다름슈타트의 엘리자베트 아말리
엘레오노르 마그달레네의 부모는 오래도록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렸으며 그 결과 모두 열일곱명의 자녀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중 엘레오노르는 첫째였죠. 엘레오노르의 자매들은 모두 시집을 잘갔죠. 특히 여동생들중 마리 조피 엘리자베트는 에스파냐의 왕비, 마리아 안나는 포르투갈의 왕비가 됩니다. 또 다른 여동생인 도로테아 조피는 파르마 공작의 후계자와 결혼했는데 도로테아 조피의 딸인 엘리자베트 파르네제는 에스파냐의 펠리페 5세와 결혼했습니다.
엘레오노르 마그달레네의 두 여동생
마리 조피와 마리 안나
포르투갈왕비와 에스파냐 왕비
엘레오노르 마그달레네는 1676년 21살에 나이로 황제 레오폴트 1세의 세번째 아내가 됩니다. 레오폴트 1세는 엘레오노르보다 열다섯살 많았는데 그는 두번째 아내를 잃은 직후 재혼했는데 그는 후계자가 절실히 필요로 했는데 두번의 결혼동안 살아남은 남성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이죠. 엘레오노르는 사실 레오폴트1세가 첫 아내를 잃었던때에도 신부감으로 거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엘레오노르 보다는 같은 합스부르크가문 출신이었던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가 황후가 되었던 것이죠. 엘레오노르의 부모는 이 결혼에 매우 기뻐했지만, 엘레오노르 자신은 그다지 기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매우 신앙심이 깊었으며 스스로 수녀가 되길 바랬기에 혼담이 정해졌을때도 담담히 받아들였습니다.
레오폴트 1세와 엘레오노르 마그달레네의 결혼
엘레오노르는 우울증과 자기비하에 시달렸는데 이것을 극복한것은 사회사업과 신앙심의 힘이었습니다. 그녀는 신앙심이 무척이나 깊었고 세상의 허례의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문에 빈의 궁정은 어느때보다 무척이나 절약하는 분위기였으며 엘레오노르 스스로는 간소한 검은 옷을 즐겨입었는데 이것은 당시 "상복"으로 여겨지던 복장이었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궁정은 마치 수도원이나 상중인 분위기가 감돌았다고 합니다.
엘레오노르 마그달레나는 정치적으로 매우 활발한 활동을 했으며 남편에게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아끼는 이들이나 자신의 친정식구들을 위해 영향력을 자주 행사했으며 남편 곁에서 개인 비서 역할을 하면서 정치에도 참여하게 됩니다. 그녀는 남편의 여행에 동반해서 자주 다녔으며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도 열성적이었다고 합니다.
엘레오노르 마그달레네와 레오폴트 1세 사이에는 모두 10명의 아이들이 태어납니다. 딸들에게는 모두 "마리아"라는 이름이 앞에 붙는데 이것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합스부르크가의 공경을 의미하는 뜻에서 붙였다고 합니다. 이후 오스트리아 여대공들의 이름에는 대부분 "마리아"라는 이름이 들어가게 된다고 합니다.
레오폴트 1세와 가족들
1705년 남편이 죽은뒤 엘레오노르는 며느리인 빌헬미나 아말리아 황후를 통해서 정치적 영향력을 그대로 행사했습니다. 1711년 큰아들인 요제프 1세가 사망하고 황위계승문제가 어수선해지자 섭정이 되어 정권을 장악합니다. 그녀는 아들 카를이 에스파냐에서 돌아올때까지 권력을 유지했으며 아들이 황위를 계승하자 궁정에서 은퇴해서 사회사업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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