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신성로마제국의황후들(완결)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18) 에노의 마르가레트 : 루드비히4세의 황후

엘아라 2012. 2. 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에노의 마르가레트는 잘 안나오는군요..

캐서린 스윈포드 책에 좀 나오는데 집에 놔두고 왔다는....ㅠ.ㅠ

어떻게든 내용을 늘려야하는데 말입니다...ㅠ.ㅠ

 

 

신성로마제국의 황후들....(18) 에노의 마르가레트 : 루드비히4세의 황후

 

 

 

 

 

에노의 마르가레트

에노와 홀란드,젤란드의 여백작

신성로마제국의 황후

Margaret II of Avesnes

(1311 – 23 June 1356)

 

에노의 마르가레트는 에노의 백작인 빌렘1세(기욤1세)와 그의 부인인 잔 드 발루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에노의 백작인 빌렘 1세는 현재 베네룩스지방을 중심으로 그 일대에 큰 세력을 가지고 있던 아벤느 가문 출신이었죠. 그는 에노 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들인 홀란드,젤란드 일대를 얻어서 통치하기도 했습니다.

마르가레트의 어머니인 잔 드 발루아는 프랑스 왕가인 발루아 가문 출신으로 잔의 할아버지는 프랑스의 필리프 3세였고 사촌인 이사벨라는 잉글랜드의 왕비가 되었는데 이것이 100년전쟁의 시초가 되기도 합니다.  잔의 사촌인 프랑스 국왕들에게 후손이 없자 결국 잔의 오빠인 필리프가 필리프 6세로 즉위하죠.

 

 

마르가레트의 아버지

빌렘1세(기욤1세)

..네덜란드어로 읽어야하나 프랑스어로 읽어야하나..ㅠ.ㅠ

 

마르가레트의 여동생인 필리파는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와 결혼했고 이에 에노와 잉글랜드는 동맹관계가 형성됩니다. 필리파는 중세 잉글랜드에서 칭송받던 왕비중 하나로 교육을 잘 받았으며 아이들을 잘 키웠고 자선사업에 열성을 다한 왕비로 알려져있습니다. 이런 동맹관계 때문에 마르가레트의 아버지 빌렘(기욤)은 처남이 프랑스 국왕이 되었음에도 잉글랜드의 동맹자로 프랑스에 적대적 관계가 됩니다.

 

 

칼레의 시민들을 위해 남편 에드워드 3세에게 탄원중인 필리파 왕비

에드워드 3세는 칼레의 시민 대표 여섯명이 죽는다면 나머지 시민들을 살려주겠다고 했고 그 여섯명이 나옵니다. 이때 필리파 왕비는 남편에게 그들을 살려달라고 탄원했고 결국 모두를 살려줍니다.

이 일은 왕비의 자애로움을 나타내는 상징적 일이 됩니다.

 

마르가레트는 1324년 바이에른의 공작이자 독일의 국왕이었던 비텔스바흐 가문의 루드비히와 결혼합니다. 루드비히는 재혼으로 그의 첫번째 아내인 슈비드니츠카의 베아트릭스가 사망한후 재혼한것이었습니다. 마르가레트는 10대 초반이었으며 반면 루드비히는 40대였죠. (늘 말하지만 중세 시대 결혼적령기는 12살부터랩니다. 20대면 이미 결혼은 포기해야하는 나이였다고 합니다.)

 

 

루드비히 4세

루드비히 4세와 그의 첫번째 부인 사이에 태어난 딸인 안나는 어린시절 죽었는데 루드비히 4세가 굉장히 슬퍼했다고 합니다. 이에 한 수도사가 안나를 영원한 모습으로 만들어줬는데 현재에도 안나의 미라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이 안나에 대한 현대의학적 검증을 한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마르가레트와 결혼하기전 루드비히는 친척이었던 합스부르크가의 프리드리히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위를 두고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루드비히는 합스부르크의 루돌프 1세의 외손자였으며 프리드리히는 루돌프 1세의 친손자였습니다.) 이때문에 두명의 국왕이 서로 전쟁을 했고 결국 프리드리히가 루드비히에게 패배했죠.

마르가레트가 루드비히와 결혼할 무렵에는 경쟁관계는 정리되었고 루드비히는 프리드리히와 독일의 공동국왕이 되었습니다. 대신 루드비히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는데 프리드리히가 반대하지 않기로 했죠.

 

1328년 루드비히는 드디어 이탈리아로 가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합니다. 이때 마르가레트 역시 황후로 대관합니다. 루드비히와 마르가레트 사이에는 모두 열명의 아이가 태어납니다.

 

 

루드비히 4세의 즉위식

옆에 있는 여자가 마르가레트겠죠.

물론 후대 그림

 

1345년 마르가레트의 오빠인 에노의 빌렘2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합니다. 이렇게 되자 에노,홀란드,젤란드의 백작령을 마르가레트가 상속받게 되죠. 마르가레트의 다른 여동생들은 이 권리를 포기했는데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3세의 왕비인 필리파같은경우는 100년전쟁중이었기때문에 동맹관계였던 신성로마제국과의 복잡한 문제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으리라 추정됩니다. 루드비히 4세는 아내의 이름으로 통치했지만 정세가 복잡했기에 아들인 빌헬름에게 통치권을 이임했고 에노와 홀란드 젤란드에서 통치권 강화를 위해 아내를 이곳으로 보내죠.

 

 

마르가레트의 아들 빌헬름

에노의 기욤3세(빌렘3세)

 

1347년 루드비히 4세가 사망한후 그의 영지는 여섯아들들에게 분할됩니다. 여섯 아들들중 네 명이 마르가레트의아들들이었는데 넷중 큰형인 루드비히는 동생들을 위해 어머니쪽 영지 상속을 양보했고 가장 어린 막내동생인 오토를 자신의 추정상속자로 삼았습니다. 결국 두 동생인 빌헬름과 알브레히트가 어머니의 영지를 물려받기로 합의합니다. 그리고 마르가레트는 아들에게 양위해서 아들을 통치자로 만듭니다.

하지만 에노와 홀란드 젤란드는 빌헬름의 통치에 반발했으며, 정당한 상속자인 마르가레트를 통치자로 원합니다. 1350년 에노의 귀족들은 마르가레트가 다시 통치자로 돌아와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마르가레트가 응합니다. 이때문에 결국 아들과 어머니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죠.

잉글랜드는 처음에는 마르가레트측에 섰으나 곧 빌헬름측으로 돌아섰고 마르가레트 역시 아들을 통치자로 인정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귀족들은 쉽게 누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마르가레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에노의 여백작으로 통치하고 나머지 영지인 젤란드와 홀란드는 빌헬름이 통치하기로 하죠.

 

1356년 마르가레트가 죽은후 아들인 빌헬름이 에노또한 상속받지만 그 역시 다음해 사망했고 영지는 빌헬름의 동생인 알브레히트에게 돌아갑니다.

 

 

빌헬름의 동생

알브레히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