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그리스

그리스의 공주들...(10) 게오르기오스 1세의 손녀 : 마르가리타

엘아라 2011. 11. 2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안드레아스 왕자 딸들 이야기군요.

아하하하..앨리스 왕자비 전기를 열심히 읽어서 이건 위키 내용보다 쬐금 더 쓸수 있습니다.-0-;;;;;;

 

 

그리스의 공주들...(10) 게오르기오스 1세의 손녀 : 마르가리타

 

 

 

 

그리스의 마르가리타

게오르기오스 1세의 넷째아들인 안드레아스 왕자와 바텐베르크의 앨리스의 첫번째 딸

호엔로에-랑겐부르크 공비

Princess Margarita of Greece and Denmark

(Πριγκίπισσα Μαργαρίτα της Ελλάδας και Δανίας)

(18 April 1905 – 24 April 1981)

 

그리스의 마르가리타는 게오르기오스 1세의 넷째아들인 안드레아스 왕자와 그의 부인인 바텐베르크의 앨리스의 첫번째 딸이었습니다. 안드레아스 왕자는 그리스 육군이었고 그는 평생 군인으로 교육받고 자랐습니다. 이때문에 왕가의 망명은 그의 인생에 치명적인 일이 됩니다. 바텐베르크의 앨리스는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중 한명으로 앨리스의 어머니인 헤센의 빅토리아는 빅토리아 여왕이 가장 사랑한 손녀라고 알려져있습니다. 둘의 결혼은 완전히 연애결혼이었으며 앨리스의 부모(특히 빅토리아)는 딸이 너무나 어린 나이에 통치왕가로 시집가는것을 좋지 않게 생각해서 결혼을 말렸지만 결국 허락해야했죠.

안드레아스 왕자와 앨리스 공녀의 결혼식은 헤센 대공가의 중심도시인 다름슈타트에서 열렸고 여기에 수많은 왕족들이 참석했습니다. 안드레아스 왕자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의 손자였고 앨리스 공녀는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이었으며, 이모들은 독일 왕자비,러시아 대공비, 러시아 황후들이었기에 덴마크,영국,독일,러시아,그리스등등에서 수많은 왕족들이 결혼식에 참석했었습니다.

 

 

 

마르가리타의 부모

그리스의 안드레아스 왕자와 바텐베르크의 앨리스

 

마르가리타가 태어날때 앨리스의 어머니인 빅토리아가 딸을 위해 그리스로 왔습니다. 그리고 사돈인 그리스의 올가 왕비(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과 함께 딸의 출산을 도왔죠. 여기서 올가 왕비는 며느리가 아이를 낳는데 아들을 강제로 참석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돈인 빅토리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남자들은 자기들이 저질러 놓고는 빠져나가버린 고통을 봐야하는 의무가 있답니다."

마르가리타의 세례식때 앨리스의 아버지인 바텐베르크의 루이스는 자신의 기함을 타고 아테네로 와서 첫 외손녀의 세례식에 참석했습니다.

마르가리타는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중에 첫번째로 태어난 현손(Great-Great Grand child)였습니다. 

 

마르가리타가 태어난 다음해 여동생인 테오도라가 태어났고 둘은 한쌍으로 자주 붙어다닙니다. 이 예쁜 두 아이들은 주로 많은 친척들과 함께 있었는데 그것은 불안한 정치상황때문에 부모가 자주 그리스를 떠나있어야했기때문이죠.

 

 

오촌인 러시아 여대공들과 함께

 러시아의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과 아나스타샤 니콜라예브나 여대공

그리스의 마르가리타와 테오도라 공주

자매들과 필립공까지 금발머리에 예쁜 아이들로 어머니 앨리스의 어린시절 모습과 꼭 닮았었다고 합니다.

 

 

1차대전중 그리스 왕실이 망명했을때 마르가리타도 부모와 함께 스위스로 갔었습니다. 그리고 그뒤에 아버지인 안드레아스 왕자가 죽을뻔한뒤 두번째 망명을 했을때 마르가리타도 역시 부모와 함께 영국 군함을 타고 빠져나왔죠. 이후 안드레아스 왕자 부부는 프랑스에 정착했지만 여러 나라들을 돌아다녔고 마르가리타 역시 부모와 함께 여러곳을 다니죠. 마르가리타와 자매들은 늘 그리스를 그리워했습니다.

 

1920년대 마르가리타와 테오도라는 영국 사교계에 데뷔했으며, 여러곳에서 선을 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가난한 망명왕족의 결혼은 잘 성사되지 않았죠. 이때 주로 외가식구들과 함께 보냈는데 재미난것은 둘이 사교계에 데뷔할때 둘의 이모인 루이즈가 "샤프롱"(막 사교계에 데뷔한 순진한 소녀들을 바람둥이들로부터 보호하던 나이든 여성)으로 따라다녔는데, 마르가리타와 테오도라 대신 루이즈가 자신의 남편감을 찾아서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마르가리타의 이모

레이디 루이즈 마운트배튼

스웨덴의 루이즈 왕비

루이즈는 언니가 아파서 요양원에 간뒤로 조카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자주 여행을 다니면서 조카들을 돌봤습니다. 그러고 보니 루이즈는 참 바쁘게 살았군요. 조카들 돌보랴 스웨덴 왕실에서 궁정을 이끌랴..-0-;; 

 

 

마르가리타는 1931년 4월에 결혼합니다. 이때 마르가리타의 자매들은 서둘러 모두 결혼했는데 1930년 12월 막내인 소피가 결혼했고 1931년 2월에는 케킬리아가 4월에는 마르가리타가 8월에는 테오도라가 결혼하죠. 넷의 결혼을 모두 서둔것은 아마도 어머니 앨리스의 병때문이었을듯합니다. 당시 앨리스는 "편집증"에 가까운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기 시작해서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는 앨리스 가족들을 당황시키고 있었죠. 결국 앨리스는 강제로 요양원에 보내졌는데, 어머니가 정신적 문제로 요양원에 보내졌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혼삿길이 막길것이기에 모두들 서둘러 결혼을 했습니다.

 

마르가리타는 호엔로에-랑겐부르크의 고트프리트 프리에델 공과 결혼합니다. 마르가리타의 남편인 고트프리트는 호엔로에-랑겐부르크의 에른스트공과 그의 부인인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렉산드라의 아들이었습니다. 에른스트 공은 외교관으로 호엔로에-랑겐부르크가문은 그리 큰 대가문은 아니었습니다만 알렉산드라는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이자 러시아 황제의 외손녀였죠. 알렉산드라의 아버지는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아들인 에든버러 공작이었고 후에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이 되는 앨프러드 였고 어머니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의 딸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여대공이었습니다. 이때문에 마르가리타와 고트프리트는 영국과 러시아쪽으로 친척관계였습니다. (마르가리타의 외할머니인 빅토리아와 고트프리트의 어머니인 알렉산드라가 사촌관계였으며, 마르가리타의 친할머니인 올가 왕비와 고트프리트의 외할머니인 마리 공작부인이 사촌관계이기도 했습니다.)

 

 

마르가리타의 시부모 알렉산드라와 에른스트

에른스트 공은 외교관으로 가문은 보잘것 없었지만 매우 똑똑하고 학식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식한 해군이었던 남편을 질려했던 마리 공작부인은 에른스트를 좋아했고 딸과 나이차도 많이나는 그에게 셋째딸을 시집보냅니다. 산드라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알렉산드라는 에든버러 네 자매들중 가장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고트프리트는 1920년대 후반 레지널 밴더빌트의 부인이었고 당시 과부였던 글로리아 모건 밴더빌트와 약혼을 합니다. 그의 약혼은 글로리아가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엄청난 재산때문이었습니다만 곧 파혼하게 됩니다. 후에1930년대 글로리아가 시누이로부터 양육권 소송을 당하게 되자, 고트프리트는 이와 관련해서 미국 법정에 증인으로 서기도 했습니다.

 

마르가리타는 독일에서 평온하게 살았습니다. 나치의 세력이 독일에서 점점 커지고 있었지만, 마르가리타 자신은 아마 다른 자매들처럼 나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을듯합니다. 비록 독일에서 살고 있었지만 마르가리타의 외가는 영국이었으며 마르가리타와 자매들 모두는 복잡한 정치사의 피해자였기에 정치에 관여하는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을것입니다. 하지만 마르가리타의 시부모인 에른스트와 알렉산드라는 초기 독일 나치 지지자중 한명이었으며, 아마 그녀의 남편인 고트프리트도 당시 많은 독일인들처럼 나치를 지지했었을듯합니다.

마르가리타의 남편인 고트프리트는 독일군으로 복무했으며, 러시아 전선에서 나가서 싸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곳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와야했습니다. 그리고 1944년 히틀러 암살시도 이후에는 해임됩니다.

 

 

마르가리타와 고트프리트

약혼때쯤

 

이후 독일이 연합군에 점령당하면서 약간의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고트프리트는 러시아 전선에서 초기에 부상으로 전쟁에서 빠졌으며 이후 그다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이후는 군 직위에 해임당하기까지 했었기에 그다지 큰 곤욕은 치르지 않았습니다.

 

마르가리타는 동생인 필리포스가 영국 여왕과 결혼하는데 초대받지 못합니다. 그녀와 자매들은 모두 독일인과 결혼했으며 그녀의 남편들은 대부분 나치와 어떤식으로든 연관이 있었기에 반독감정이 극에 달했던 영국에서 신랑의 누나들의 처지가 알려지는것은 왕실에 이롭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 이때문에 마르가리타와 자매들은 동생에게 서운한 감정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난후 필립공과 여왕은 누나들을 초대했고 필립의 누나들은 동생을 용서하죠.

이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에 마르가리타는 남편과 함께 대관식에 참석하기도 합니다.

 

자료출처

1.Alice : Princess Andrew of Greece (2001,Hugo Vickers)

2.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