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역시 아는 내용은 쉽게 글이 써지는군요
평소에 열심히 책등을 읽어야하는데 말입니다...ㅠ.ㅠ
그리스의 공주들...(5) 콘스탄티노스1세의 딸 : 예카테리니
그리스의 예카테리니
레이디 캐서린 브랜드램
Princess Katherine of Greece and Denmark
( Πριγκίπισσα Αικατερίνη της Ελλάδας και Δανίας)
(4 May 1913 – 2 October 2007)
그리스의 예카테리니 공주는 그리스의 콘스탄티노스 1세와 독일의 조피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늦둥이였는데 큰오빠인 게오르기오스와는 20살가량 차이가 났습니다. 조피가 예카테리니를 임신했는때 부부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했는데 발칸전쟁에 참전중이었던 콘스탄티노스는 야전병원에서 일하던 여성과 연애질 중이었습니다. 그녀에 대해서 국왕이자 예카테리니의 할아버지인 게오르기오스 1세만 빼고 모두 다 알았다라고 언급될 정도였죠. 비록 이기고 있었다고 하지만 막 망명에서 돌아와서 전쟁중에 연애질이라는것은 누가봐도 썩 괜찮은 상황은 아니었을듯합니다. 게다가 이 연애질이 알려진 것과 거의 동시에 조피가 임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더 복잡하게 변했죠.
망명중 부모와 함께 있는 예카테리니
늦둥이인것이 티나죠
예카테리니는 할아버지 게오르기오스 1세가 암살당한 몇주후에 태어났습니다. 예카테리니의 세례식때 그리스 육군과 해군 전체가 그녀의 대부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어린시절 사진을 보면 "그리스 육군과 해군의 대녀 예카테리니"라는 서명이 들어간 사진도 있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는 예카테리니
예카테리니는 매우 어렸지만 다른 형제 자매들처럼 혼란한 그리스 정치에 휘말렸습니다. 이를테면 타토이에 일어난 방화사건때 어머니 소피아 왕비는 아기였던 예카테리니를 데리고 불길을 피해 도망가서 간신히 목숨을 구할정도였죠. 그리고 부모가 망명을 하자 예카테리니도 따라 가게 됩니다. 어린 아이였던 예카테리니는 부모가 두번의 망명생활을 하는 동안 같이 따라 갔습니다. 예카테리니가 10살때 아버지 콘스탄티노스 1세는 두번째 망명중 이탈리아에서 사망합니다. 그리고 19살 무렵에는 어머니 소피아 왕비가 사망하죠. 부모가 죽은뒤 예카테리니는 언니들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살았습니다.
예카테리니
예카테리니는 영국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어머니 소피아 왕비가 외가인 영국을 좋아했기 때문에 딸을 영국에서 교육시켰을듯합니다. 1934년에는 사촌인 마리나 공주가 영국의 켄트 공작과 결혼할때 그 들러리를 서기도 했습니다. 예카테리니는 망명기간동안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이때 미국의 영화제작자가 예카테리니에게 영화에 출연하도록 권하기도 했습니다. 예카테리니는 이에 대해서 흥미를 가졌습니다만, 왕가에서는 이에 대해서 반대했고 이런 제의는 없었던 것이 됩니다.
1935년 오빠인 게오르기오스가 그리스 국왕으로 복위하자 예카테리니는 언니 이리니와 함께 그리스로 돌아옵니다. 하지만 곧 2차대전이 일어납니다. 예카테리니는 그리스 적십자사의 일원으로 부상당한 병사들을 돌보기도 했습니다. 이때 예카테리니는 한 파일럿을 돌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낫자 그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는데 약속시간 그 파일럿은 전투에 참여해야했고, 그는 그 전투에서 살아돌아오지 못했죠.
2차대전 초반 그리스는 이탈리아의 침공을 효과적으로 막아냈지만, 독일군이 개입하면서 그리스는 독일과 이탈리아군에 의해 점령당합니다. 게오르기오스 2세는 동생 파울로스와 함께 영국으로 가서 망명정부를 구성했습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게오르기오스2세와 그의 동생이자 왕위계승자인 파울로스가 입국하는것은 허락했지만, 나머지 왕실 가족들이 오는것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켄트 공작의 장모인 니콜라오스 왕자비(엘렌)이 오는것조차도 반대했습니다.
결국 국왕의 두 늙은 숙모들인 니콜라오스 왕자비와 안드레아스 왕자비는 그리스에서 남았고 나머지 그리스 왕실 가족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갔습니다. 예카테리니는 올케들과 조카들과 함께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머물렀고 그곳에서 "캐서린 수녀"라는 이름으로 다친 병사들을 돌봤습니다.
1934년 예카테리니
1946년 예카테리니는 이집트를 거쳐 영국으로 갑니다. 이때 배에서 한 영국 장교를 만나죠. 영국 공군 소령이었던 리처드 캠벨 브랜드램이었습니다. 그와 예카테리니는 배의 갑판에서 처음 만났는데 예카테리니가 배멀미하다가 그를 만났다고 합니다. 둘은 여행하는 내내 가까워졌고 영국에 도착했을때는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을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곧 약혼이 발표되죠. 리처드 브랜드램은 귀족이나 왕족 사회와 무관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때문에 공주와 그가 결혼한다는것은 영국에서 매우 큰 흥미거리가 됐는데 이때문에 리처드의 부모는 다양한 가쉽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이를테면 언론 인터뷰중 며느리와 집안일을 하겠다는 리처드의 어머니 말에 언론에서는 공주에게 허드렛일을 시키는것은 안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떠들어댔습니다.)
예카테리니와 리처드 브랜드램의 결혼식 직전 예카테리니의 큰오빠인 게오르기오스 2세가 사망합니다. 그리고 다른 오빠인 파울로스가 그리스의 국왕이 되죠. 예카테리니의 결혼은 큰오빠 장례식 3주후에 치뤄졌습니다. 왕궁에서 조용히 치뤄진 결혼식에서 신랑 들러리 역인 베스트맨은 파울로스 국왕이 맡았습니다. 결혼식때 예카테리니는 그리스 경찰과 군대에게서 혼수를 받았습니다. 왜냐면 그녀는 그리스 육군과 해군의 대녀였기 때문이죠.
결혼후 예카테리니는 남편을 따라 영국으로 왔고, 친척이었던 조지 6세(조지 6세와 예카테리니는 부계로는 육촌이었고 모계로는 칠촌관계입니다.)는 예카테리니에게 공작의 딸과 같은 예우를 해줬고 영국에서는 "레이디 캐서린 브랜드램"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죠.
예카테리니는 영국 왕실 가족들과도 역시 친척관계였지만 (켄트공작부인인 마리나나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인 필립공은 예카테리니의 사촌이죠.) 공적인 자리에 잘 나서지 않았고 남편과 조용한 삶을 살았습니다.
예카테리니와 남편 리처드 브랜드램
그리고 아들인 폴 브랜드램과 사촌인 마리나 공주(켄트 공작부인)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Alice : Princess Andrew of Greece(2001,Hugo Vickers)
3.텔레그라프 (www.telegraph.co.uk)중 Lady Katherine Brandram에 대한 기사
사진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http://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Princess_Katherine_of_Greece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Katherine_Marina_Richard_Paul.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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