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제목에 번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실분들이 계실겁니다.
사실 저번호가 맞답니다. 왜냐면 11은 제임스 1세의 딸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를 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미 글을 썼답니다.--;;;
에디는 다시 글을 썼으면서 엘리자베스 스튜어트는 안하는 이유는 같은글을 또 쓰기 싫어서입니다
(게다가 그땐 읽은 글이 없어서 대충 아는 내용을 편집했구요. 하지만 그 글 쓰는데 한 세시간 넘게 걸렸습니다..ㅠ.ㅠ )
어쨌든 결국은 무슨소리냐
잉글랜드의 여성 왕위 계승자들...(11)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 팔츠의 선제후비,보헤미아의 겨울 왕비(제임스 1세의 딸) 은 앞쪽의 저의 포스트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 보헤미아의 겨울 왕비 (팔츠의 선제후비)를 참조해주세요
잉글랜드의 여성왕위 계승자들 ...(12) 팔츠의 조피 : 하노버의 선제후비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의 딸)
팔츠의 조피
하노버의 선제후비
잉글랜드의 제1 추정왕위계승자
Sophia of the Palatinate
(commonly referred to as Sophia of Hanover)
(14 October 1630 – 8 June 1714)
후에 조지 1세의 어머니가 되는 팔츠의 조피는 "보헤미아의 겨울 국왕과 왕비"라고 불렸던 팔츠의 선제후 프리드리히 5세와 그의 부인인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조피가 태어났을때 부모는 이미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망명생활중이었습니다. 조피의 부모가 망명하게된 원인은 30년 전쟁과 연관이 있습니다. 복잡하게 얽힌 이 국제전쟁에서 조피의 부모인 팔츠의 프리드리히 5세와 엘리자베스 스튜어트는 전쟁의 직접적 계기가 되는것이었죠. (물론 이때 이미 전쟁의 기운이 돌았습니다만 프리드리히 5세가 보헤미아의 왕위를 수락한것이 결정타가 되겠습니다.)
조피의 부모
팔츠의 프리드리히 5세와 엘리자베스 스튜어트
보헤미아의 왕과 왕비로써의 초상화
3살때 아버지가 사망했기에 네덜란드에서 가족들은 매우 곤궁하게 살아가는 처지가 됩니다. 조피는 어머니와 함께 머물렀는데, 오빠들은 영국 내전(청교도 혁명)에 국왕군측으로 참전하기도 했었습니다. 가문의 가난은 큰오빠인 카를 루드비히가 팔츠 선제후령을 다시 찾은 1649년 이후 형편이 나이집니다.
조피의 큰오빠 팔츠의 선제후 카를 루드비히
그는 청교도 혁명때 왕당파측에 참전했지만 의회파에 호의적인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외삼촌 찰스 1세가 목이 잘리는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후에 딸인 엘리자베트 샤를로테를 루이 14세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에게 시집보냅니다.
이 때문에 그는 합스부르크가문의 선조가 되죠. (엘리자베트 샤를로트의 외손자가 마리아 테레지아의 남편이 되는 로렌의 프란츠 슈테판입니다.)
한때 조피의 사촌인 영국의 찰스 2세는 조피에게 구혼을 합니다. 하지만 조피는 그가 어머니의 후원자인 윌리엄 크레이븐 경의 돈이 필요해서 자신에게 구혼한다고 여겼으며 그를 거절하죠.
조피는 1658년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와 결혼합니다. 그는 비록 "공작"작위가 있긴 했지만 넷째아들이었기에 그다지 큰 영지나 기타 다른 상속권을 바라기 힘들었습니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는 다른 왕족들처럼 직업군인으로 살아가야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군인이었으며 또 운도 매우 좋았습니다.
조피의 남편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
그는 "선제후"칭호를 얻게 됩니다만 선제후로써 활동을 해보지 못하고 사망합니다.
지위는 큰아들인 게오르그 루드비히에게 돌아가죠.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의 형들은 모두 아들없이 죽었기에 결국 형들의 토지를 상속받은것은 그가 된것이죠. 또 군인으로써 신성로마제국에 큰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그는 결국 "선제후"지위를 얻게됩니다. 그가 다스리던 곳은 하노버를 중심으로 하는 칼렌베르크 공령이었으며 이때문에 그와 그의 아들인 게오르그 루드비히는 "하노버의 선제후"라고 불립니다.
조피는 이런 남편때문에 후에 "하노버의 선제후비"라고 알려지게 되죠.
조피는 후에 수학자인 라이프니츠와 오랫동안 친분관계를 유지합니다. 둘은 서신왕래를 하면서 살았는데 조피가 죽을때까지 우정이 이어졌습니다. 이때문에 19세기에는 조피가 매우 뛰어난 능력에 호기심 많은 여성으로 묘사되었다고 합니다. 또 스피노자나 데카르트의 철학도 잘 이해했다고 전해집니다. 조피가 진짜 천재인지는 잘 모르지만 적어도 교육을 잘받은 여성이라는 것은 추론해볼수 있을듯합니다.
조피
조피는 남편과의 사이에 적어도 일곱명의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아이들중 큰아들인 게오르그 루드비히는 후에 영국의 조지1세가 됩니다. 그리고 딸인 조피 샤를로테는 프로이센의 왕비가 되죠.
조피는 자신의 큰아들인 게오르그 루드비히에 대해서 "동생들의 모범이 된다"라고 편지에 썼습니다. 또 아들이 다른이들에게 냉담하다는 평가를 받는것은 잘못된것이라고 이야기하죠.
큰아들인 게오르그 루드비히가 사촌인 첼레의 조피 도로테아와 결혼하는것을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팔츠 선제후의 딸이었고, 영국 국왕이 외할아버지인 조피에게 "겨우 사생아를 면한 처지"인 조피 도로테아는 마음에 차지 않는 며느리감이었죠. 게다가 게오르그 루드비히와 조피 도로테아는 서로를 싫어했으며 특히 조피 도로테아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버티기까지 했다니 더 성에 차지 않았을 겁니다.
조피의 자녀들중 두명
왼쪽은 프로이센의 왕비가 되는 조피 샤를로테 오른쪽은 막내아들인 요크와 알바니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투스
1700년 조피는 오촌 조카인 윌리엄3세를 만납니다.(윌리엄3세의 어머니가 찰스1세의 딸인 프린세스 로열로 조피의 사촌이었습니다.) 이 만남이 있기 두달전 영국의 유일한 신교도측 왕위계승자였던 글로스터 공작 윌리엄이 사망했었습니다. 이 만남이후 잉글랜드 의회는 윌리엄이나 앤에게 적자가 없을경우 조피와 그녀의 "신교도" 아들을 왕위계승자로 지정한다는 법률을 승인합니다.
조피를 추정왕위계승자로 선택한것은 카톨릭교도가 국왕이 되게 하지 못하겠다는 잉글랜드 의회의 의지였습니다. 조피는 신교도였고 카톨릭이었던적이 한번도 없으며, 신교도와 결혼했고 자녀들도 신교도였죠.
하지만 잉글랜드 의회 내에서도 앤의 이복동생인 "올드 프리텐더"를 완전히 무시할수는 없었습니다. 수많은 음모들이나 이야기들이 오갔으며 심지어는 올드 프리텐더가 개종할 경우 영국 왕위를 이어받는것을 고려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올드프리텐더가 거절해서 성사되지 못합니다. )
조피는 잉글랜드 상황을 주시했으며, 이것은 아들인 게오르그 루드비히 역시 마찬가지였죠.
조피는 앤 여왕보다 30살 이상 많았지만 매우 건강했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조피를 여왕으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앤여왕이 죽기 직전 건강하던 조피는 갑자기 사망합니다. 83살의 선제후비는 갑작스러운 폭우를 맞았고 이후 뇌졸증을 일으켜 사망합니다.
조피
하노버의 선제후비
조피가 죽은후 조피의 장남인 게오르그 루드비히가 영국의 추정왕위계승자가 되었으며 어머니가 죽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영국의 국왕 조지1세로 즉위하게 됩니다.
조피의 아들
하노버의 선제후 게오르그 루드비히
영국의 조지 1세
영국의 왕위계승순서는 아들이 우선이고 딸이 그 다음입니다.
그러니까 현재 영국 왕실의 예를 들어보면 제1왕위계승자는 웨일즈공이며 제 2왕위계승자는 캠브리지 공작 제3왕위계승자는 해리 왕자입니다. 그리고 제4왕위계승자는 웨일즈공의 동생인 요크 공작이고 제 5,6왕위계승자는 요크공작의 딸인 베아트리스 공주와 유지니 공주가 됩니다. 다음으로는 웨섹스 백작과 그 자녀들이며 그후에 여왕의 딸인 앤 공주가 왕위계승자입니다.
이런식으로 따지면 조피가 추정왕위계승자가 됐을때 상당히 서열이 떨어져있었습니다. 하지만 카톨릭을 제외한다는 문구는 조피를 영국의 왕위계승자로 올리는데 크게 한몫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중
http://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Electress_Sophia_of_Hanover (조피에 대한 한목)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Rundgang_31_-_Sophie_Charlotte.jpg (조피의 딸인 조피 샤를로테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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