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프랑스

루이 15세와 가족들...(1) 부모와 형

엘아라 2011. 1. 1. 22:03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루이 15세로 넘어왔습니다..ㅠ.ㅠ

루이 14세가 죽을때 직계 왕위계승자는 증손자인 루이 15세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손자인 필리프는 스페인의 국왕이 되면서 프랑스 왕위계승권을 포기해야했죠. 이때문에 루이14세가 좀 골치아팠는데, 만약 증손자마저 죽는다면 왕위는 자신의 후손이 아니라 조카이자 사위였던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었죠. 이때문에 뭐 자신의 서자들의 지위를 높여줬는데 이것은 후에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하게 됩니다.

 

어쨌든 루이 15세는 멀쩡히 성인으로 성장해서 결혼했고 후계자도 얻게 됩니다만, 그때까지 좀 어수선했습니다..^^* 앞쪽에서 루이 15세의 부모이야기를 잠깐 했었는데 다시 해볼까합니다.^^*

 

루이 15세와 가족들.... 부모와 형 : 부르고뉴 공작 루이와 사보이의 마리 아델라이드 그리고 부르타뉴 공작 루이

 

루이 15세의 부모는 루이 14세의 손자였던 부르고뉴 공작과 사보이의 마리 아델라이드였습니다. 부르고뉴 공작 루이는 루이 14세의 아들이었던 도팽 루이의 큰아들로 제2왕위계승자였죠. 부르고뉴 공작의 가정교사는 대주교였던 프랑수아 페늘롱으로, 페늘롱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부르고뉴 공작은 경건하고 신앙심 깊은 인물로 성장합니다.

 

 

부르고뉴 공작 루이

르 쁘띠 도팽

루이 14세의 손자, 루이 15세의 아버지

 

그는 15살에 12살이었던 사보이의 마리 아델라이드와 결혼합니다. 마리 아델라이드는 사보이 공작이었던 빅토리오 아메데오2세와 그의 부인인 안 마리 도를레앙의 딸이었습니다. 마리의 어머니는 루이 14세의 조카로,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와 그의 첫번째 부인인 앙리에타 안의 둘째딸이었죠.

마리 아델라이드의 결혼은 마리 아델라이드의 아버지인 사보이 공작과 루이 14세간의 동맹관계로 결혼이 성립되었습니다. 사보이 공작은 딸을 처음에 합스부르크가의 레오폴트1세의 아들인 요제프와 결혼시키려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레오폴트 1세는 이 결혼을 깼고, 사보이 공작은 루이 14세의 손자와 딸을 결혼시키기로 합니다.

 

 

부르고뉴 공작과 사보이의 마리 아델라이드의 결혼식

 

 

마리 아델라이드는 결혼후 궁정에 잘 적응했으며, 루이 14세와 그의 부인인 마담 드 맹트농과 가까운 사이가 됩니다. 특히 마담 드 맹트농은 마리 아델라이드를 무척이나 예뻐했는데, 재미난 사실은 마리 아델라이드의 시아버지인 르 그랑 도팽 루이는 정치적으로 마담 드 맹트농에게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마리 아델라이드의 가장 큰 정적은 시고모였던 부르봉 공작부인인 루이즈 프랑수아즈였습니다. 그녀는 몽테스팡 후작부인과 루이 14세의 딸로, 정치적으로 르 그랑 도팽과 같은 입장이었죠. 부르봉 공작부인은 자신의 딸을 마리 아델라이드의 시동생인 베리 공작부인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에 마리 아델라이드는 부르봉 공작부인과 사이가 나빴던 오를레앙 공작부인의 딸을 자신의 동서로 만듭니다. ^^* 

 

 

 

사보이의 마리 아델라이드

부르고뉴 공작부인

 

부르고뉴 공작은 아버지와 달리 할아버지에게 잘 보였으며 젊은 나이에 아버지보다 더 정치적인 입지가 강화됩니다. 하지만 그는 군사적인 면에서는 성공을 못 거뒀는데,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당시 그와 방돔 공작사이의 다툼은 결국 프랑스의 패배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부르고뉴 공작 루이

 

르 그랑 도팽이 사망한후, 부르고뉴 공작은 후계자인 도팽이 됩니다. 부르고뉴 공작이 도팽이 된 후, 그와 그의 아버지를 구별하기 위해 부르고뉴 공작은 르 쁘띠 도팽이라고 불렀고, 아버지는 르 그랑 도팽으로 부르게 됩니다. 마리 아델라이드 역시 마담 라 도피느가 됩니다.

 

마리 아델라이드

 

도피느가 된 다음해 마리 아델라이드는 홍역을 앓다가 사망합니다. 부인을 끔찍히 사랑했던 루이는 아내 곁에서 떠나지 않고 간호를 했으며, 부인이 죽은 6일후에 그 역시 홍역으로 사망합니다.

 

루이와 마리 아델라이드는 모두 세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중 부부가 죽을때 살아있었던 아들들은 둘이었는데, 부르타뉴 공작과 앙주 공작이었죠.

 

 

두 아이들인 부르타뉴 공작과 앙주 공작과 함께 있는 마리 아델라이드

 

부모가 죽은후 부르타뉴 공작 루이가 도팽이 됩니다. 하지만 두 아이들 역시 부모와 마찬가지로 홍역에 감염됩니다. 의사들은 도팽을 살리기 위해 시도했지만, 결국 어린 도팽은 부모가 죽은지 한달도 되지 않아서 사망합니다.

 

 

 

 

부르타뉴 공작 루이

루이 15세의 형

 

 

둘째인 앙주 공작 역시 홍역으로 아팠으며 의사들은 이제 이 어린 아이를 치료하려 합니다. 하지만 앙주 공작은 의사들의 치료를 받지 않았는데, 앙주 공작의 보모였던 마담 드 방타두르는 의사들이 잘못된 진료를 하고 있다고 여겼기에 의사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방문을 걸어잠그고 홀로 앙주공작을 보살폈다고 합니다. 당시 의사들은 사혈법을 써서 치료를 시도했는데 이 방법으로 많은 왕족들이 사망했기에 마담 방타두르는 의사들을 신뢰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를레앙 공작부인이었던 엘리자베트 샤를로테 역시 사혈법을 불신해서 의사들의 진료를 거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마담 드 방타두르의 간호로 어린 앙주 공작은 홍역을 이겨냈으며, 그가 바로 루이 14세의 뒤를 이어 국왕이 되는 루이 15세입니다.

 

 

앙주 공작

후에 루이 15세

 

마담 드 방타두르

방타두르 공작부인

마담 드 방타두르가 아니었으면 루이 15세도 살아남기 힘들었을지도 ...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