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칼마르 동맹시기의 왕비에 대해 써볼까합니다.
칼마르 동맹은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을 한명의 군주가 통치하던 시기를 말합니다.
이렇게된 가장 큰 이유는 세 왕가의 왕위계승자 부족 때문이었죠.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공주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의 국왕인 호콘6세와 결혼했으며 아들 올라프를 낳았죠. 친정인 덴마크의 왕위계승문제가 일어나자 아들인 올라프를 왕위계승자로 선출되게 힘썼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죽은뒤 아들의 섭정이 되죠. 하지만 마르가레타 왕비의 아들인 올라프2세(노르웨이에서는 올라프4세)는 성인이 되기전 죽었습니다.
이때문에 왕위계승문제가 발생했는데, 마르가레타 왕비는 자신의 권리로 덴마크 여왕이 되었고, 노르웨이에서도 군주로 인정받았죠. 이후 스웨덴 역시 마르가레타를 여왕으로 인정합니다. 이렇게 칼마르 동맹이 형성된것입니다.
마르가레타 여왕(덴마크에서는 마르그레테1세, 현 여왕님과 구별하기 위해 이렇게 씁니다.)은 후계자가 없었기에 언니인 잉에보리의 손자인 포메른의 보기슬라우(에릭)을 세나라의 군주로 내세웁니다.
그렇게 해서 칼마르 동맹시기의 첫번째 스웨덴 왕비는 에릭의 부인이됩니다.
에릭13세
스웨덴에서는 에릭13세로 표기되는 그는 실은 잘못된 표기라고 합니다.실은 열세번째 에릭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는 잉글랜드의 공주인 필리파와 결혼했습니다.
잉글랜드의 필리파
Philippa of England
(4 June 1394 – 7 January 1430)
잉글랜드의 필리파는 잉글랜드의 국왕인 헨리4세(랭카스터 공작인 존오브콘트와 첫번째 부인인 랭카스터의 블랜치의 아들)과 그의 부인인 메리 드 분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마르그레타 여왕에게 입양된 에릭과 결혼합니다. 이때 그녀는 혼수로 스웨덴 측에 상당한 영지를 가져왔다고 합니다.필리파는 처음으로 흰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성으로 문헌에 기록되어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주로 스웨덴에서 거주했는데, 그녀는 남편과 스웨덴에서 공동으로 통치했으며, 덴마크에서도 섭정직을 수행했다고합니다. 주로 국외에 있었던 남편 대신 스웨덴을 통치했는데, 남편이 돌아왔을때도 그녀는 스스로 통치했고, 에릭13세 역시 그녀를 신뢰했고 그녀의 결정을 따랐다고 합니다. 스웨덴 역사에서 필리파는 매우 공정한 군주로 기록되어있다고 합니다.
필리파는 아이를 낳다가 사망했습니다.
에릭13세의 통치는 칼마르 동맹의 신하들에게는 불만이 많은것이었습니다. 때문에 동맹측은 결국 에릭13세의 조카인 팔츠-노이마르크트의 크리스토퍼를 국왕으로 추대합니다. 그는 크리스토페르라는 이름으로 통치합니다. (크리스토페르는 에릭13세의 여동생인 카타리나와 팔츠-노이마르크트의 팔츠그라프이자 공작인 요한의 아들입니다.)
크리스토페르 국왕
그는 브란덴부르크의 도로테아와 결혼했습니다.
브란덴부르크의 도로테아
Dorothea of Brandenburg
(1430/1431 – 1495)
브란덴부르크의 도로테아는 브란덴부르크-쿠름바흐의 마르크그라프인 요한과 작센-비텐베르크의 요한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할아버지인 프리드리히1세는 호엔촐레른 가문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브란덴부르크의 선제후가 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남편이 없는동안 섭정으로 스웨덴을 다스렸으며, 스스로의 권리로 광대한 영지를 다스렸다고 합니다. 이때문에 두번째 결혼시에 문제가 됩니다.
크리스토페르 국왕은 일찍 사망했기에 그녀는 일찍 과부가 되었고, 다음 덴마크 국왕과 재혼합니다.^^*
크리스토페르 국왕이 죽은후 덴마크는 올덴부르크가의 크리스티안을 국왕으로 선출합니다. 이에 반해 스웨덴은 자국의 귀족이었던 칼 크누트손 본데가 국왕으로 칼 8세가 됩니다.(최근 연구결과에서는 칼8세가 아니라 칼2세라는군요.^^* 잘못셌다고 하네요.) 하지만 크리스티안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다른 귀족 세력들때문에 왕위계승문제는 복잡했으며, 크리스티안1세가 한번 즉위했다가 다시 칼8세가 즉위하고 다시 다른 귀족이 섭정에 오르는등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칼8세 (사실 칼2세라고 합니다.)
칼8세의 첫번째 부인인 비르이타 투레스도테르 비엘케는 그가 국왕이 되기전 사망했습니다. 칼 8세는 첫번째 부인이 죽은후 두번더 결혼했습니다.
카타리나 칼스도테르 굼셰후푸드
Catherine of Bjurum,
in her lifetime called Katarina Karlsdotter,
Katarina Gumsehuvud (?- 7 September 1450)
카타리나는 스웨덴 귀족가문 출신으로 당시 섭정이었던 칼8세와 결혼했습니다. 후에 칼 8세가 즉위하자 그녀 역시 왕비로 대관합니다. 카타리나와 칼의 결혼은 처음에는 교황의 허락을 얻지 못했는데, 카타리나가 칼의 첫번째 부인인 비르이타의 친척이었기때문었습니다. (초기에는 근친결혼에 대해서 엄격했군요.-0-;;) 둘의 아이가 태어난후에야 교황이 정식으로 결혼을 인정했기에, 아이들이 한동안 사생아 상태였다고 합니다..카타리나와 칼은 매우 행복했다고 합니다.
카타리나는 매우 아름답고 온화한 사람으로 궁정을 온화하게 만들었으며, 수많은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1450년 스웨덴에 흑사병이 돌았는데 카타리나 역시 이때 사망했고, 칼은 무척이나 상심했다고 합니다.
부인이 죽은후, 칼 8세는 오래도록 재혼하지 않고 있다가 죽기 직전 정부였던 여성과 결혼합니다. (어째 랭카스터공작과 캐서린 스윈포드 이야기랑 비슷합니다.-0-;;)
카타리나 아브라함스도테르
Kristina Abrahamsdotter
(1432-1492),
카타리나는 핀란드 귀족출신으로 칼8세가 왕위에서 물러나 핀란드로 도피했을때 만났습니다. 이후 칼8세가 다시 스웨덴으로 돌아왔을때, 그녀는 그의 정부로 함께 스웨덴에 왔죠. 둘사이에 아들이 태어납니다. 이후 칼 8세는 죽기 직전 카타리나와 정식으로 결혼합니다. 이때문에 카타리나는 스웨덴의 왕비가 되었고, 둘의 아들은 적자로 인정받았죠.
칼8세와 스웨덴의 왕위를 다투던 인물은 덴마크의 왕위를 물려받은 크리스티안1세입니다. 그는 올덴부르크 가문 출신의 첫 덴마크 국왕이었습니다.
크리스티안1세
크리스티안1세는 선왕이었던 크리스토페르의 왕비인 브란덴부르크의 도로테아와 결혼했습니다.
브란덴부르크의 도로테아
Dorothea of Brandenburg
(1430/1431 – 1495)
도로테아는 크리스토페르 국왕이 사망한후 폴란드 국왕이나 오스트리아 대공과 결혼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첫번째 남편의 후계자인 올덴부르크의 크리스티안과 결혼합니다. 그는 덴마크의 국왕이 되었고, 곧 칼마르 동맹의 군주가 되죠. 하지만 그녀의 영지는 문제꺼리가 됩니다. 특히 스웨덴쪽 영지들은 문제가 되었고 도로테아는 교황에게 자신의 권리를 호소하기에 이릅니다. 이후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분 문제로 숙부와도 마찰이 있었습니다.
다른 왕비들처럼 도로테아 역시 남편이 없을때는 섭정으로 일을 했으며, 특히나 자신의 영지로부터 나오는 재산을 가지고 남편과 아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남편인 크리스티안1세는 도로테아에게 돈을 빌렸고, 그 돈을 갚지 않자 도로테아는 남편에게서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영지를 빚대신 받았고, 남편 사후에는 자신의 영지로 그곳을 통치했습니다. 그리고 후에 아들들에게 두곳을 분할해서 물려주죠.
그녀는 매우 차갑고 엄격하며 검소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그러니 돈을 모아서 한재산 하셨죠.^^*)
스웨덴은 칼8세가 사망한후 복잡한 섭정인 스텐 스투레가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그는 스웨덴을 칼마르 동맹의 두 나라인 덴마크와 노르웨이 떨어져 독립된 국가로 있길 바랬고 그런 정책을 폈습니다. 하지만 복잡한 사정으로 크리스티안1세의 아들이자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국왕이었던 한스가 다시 잠시 스웨덴 국왕이 됩니다.
한스는 요한2세라는 이름으로 스웨덴을 통치했습니다.
요한2세
요한2세의 부인은 작센의 크리스티나입니다.
작센의 크리스티나
Christina of Saxony
(b. Torgau, 25 December 1461 - d. Odense, 8 December 1521
작센의 크리스티나는 작센의 선제후였던 에른스트와 그의 부인인 바이에른-뮌헨의 엘리자베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에른스트의 후손으로는 작센-코부르크-고타가문이 있습니다. (결국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공의 후손, 포르투갈 왕가,벨기에 왕가,불가리아 왕가가 에른스트의 후손이 되죠.)
1500년 크리스티나는 남편을 대신해서 스웨덴의 섭정으로 스웨덴에 있었습니다. 이때 크리스티나의 남편인 요한2세는 크리스티나의 시녀와 연애사건을 일으켰고,크리스티나와 요한2세의 결혼생활을 파경에 이릅니다. 그리고 1501년 스웨덴이 칼마르 동맹에서 탈퇴하면서, 크리스티나는 인질로 잡히죠. 한동안 스웨덴에서 인질로 살았던 그녀는 1503년 평화협상이 타결된후 덴마크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남편과의 결혼생활은 완전히 깨졌으며, 크리스티나와 요한2세는 평생 별거했습니다.
크리스티나는 예술과 음악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칼마르 동맹의 마지막 군주는 요한2세의 아들이었던 크리스티안2세였습니다. 그는 스웨덴을 무력으로 진압했고 귀족과 성직자들을 처형한 이른바 "스톡홀름 피바다"사건을 일으켰으며, 스웨덴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하게 귀족들과 성직자들을 처형하면서 왕권강화를 꾀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도리어 스웨덴 귀족들의 반발을 샀고, 결국 구스타프 바사의 주도하에 스웨덴은 칼마르 동맹과 완전히 결별하게 됩니다.
크리스티안2세
크리스티안2세의 부인은 합스부르크 출신인 이사벨라였습니다.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오스트리아의 이사벨라
오스트리아의 엘리사베트 (엘리사베트 아브 외스테르리케)
Elisabet av Österrike,
Isabella of Austria
(also known as Isabella or Elisabeth of Burgundy, of Habsburg,of Denmark or of Castile)
(18 July 1501–19 January 1526)
이사벨라는 유명한 합스부르크가 출신으로 아버지는 막시밀리안1세와 마리 드 부르고뉴의 아들인 필리프(미남왕 필리프)였고 어머니는 아라곤의 페르디난드 국왕과 카스티야의 이사벨라여왕의 딸이었던 카스티야의 후아나였습니다. 그녀의 어머니인 후아나는 후아나 라 로카(미친 후아나)로 유명한 사람이었죠.
또 언니인 엘레노레는 포르투갈 왕비였으며, 후에 프랑스의 프랑수아1세와 결혼해서 프랑스 왕비가 되었고,오빠인 카를5세(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1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의 국왕으로 유럽 대부분과 신대륙을 다스리던 거대한 영지의 통치자였습니다. 또 동생인 페르디난트는 후에 형인 카를5세의 뒤를 이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었죠. 또 여동생인 마리아는 헝가리의 왕비였고, 다른 동생인 카타리나는 포르투갈의 왕비였습니다.
원래 크리스티안2세와 혼담이 오간 사람은 이사벨라의 언니인 엘레노레였는데, 합스부르크가에서는 그녀 대신 이사벨라를 크리스티안과 결혼시켰다고 합니다. 이사벨라는 대리결혼후 1년간 네덜란드에서 머물렀습니다. (네덜란드는 할머니인 마리 드 부르고뉴의 영지였습니다.) 1년후 그녀는 덴마크로 가서 남편과 정식으로 결혼했는데 그때 나이가 14살이었습니다.
결혼후 엘리사베트라는 이름으로 왕비가 되었습니다. 결혼초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이미 크리스티안2세에게는 영향력을 행사하던 정부가 있었으며, 정부의 어머니는 궁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사벨라의 할아버지인 막시밀리안1세는 매우 화를 냈으며 외교문제까지 발전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부가 사망한후, 남편과의 사이는 좋아졌다고합니다.
남편 크리스티안2세가 덴마크 왕위마저 잃고 추방당하자, 이사벨라는 남편을 따라 갑니다. 막강한 합스부르크가 사람이었던 이사벨라와 원만하게 지내기 위해서 새로 선출된 덴마크 국왕(크리스티안2세의 숙부)는 이사벨라에게 대비로 덴마크에 머물러도 된다고 했습니다만, 이사벨라는 "내 남편이 있는곳이 내 왕국입니다"라면서 이 제안을 거절했다고합니다.
덴마크를 떠난후 남편의 왕위를 되찾기 위해 독일 여러곳을 다녔고 이때 개신교에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공식적으로 개종하지 않았지만 루터파의 교의에 심취했습니다. 하지만 얼마후 중병을 앓았으며 24살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 위키피디어 (www.wikipedia.org)
그림출처 : 위키미디어 커먼스 (http://commons.wiki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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