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전 루이즈 왕비님 팬이기에 덩달아 스웨덴 역사에도 쬐금 관심이 있습니다. 아하하..
덕분에 스웨덴의 왕가들에 대해서 이것저것 보고있는데, 홀슈타인-고토로프 이전 왕가였던 팔츠-츠바이브뤽켄에 대해서도 좀 읽어봤답니다.(......ㅠ.ㅠ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도대체 이가문은 뭔가...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죠..-0-;;)
어쨌든 15세기초 시작하는 이가문의 가계도를 쫘악 본적이 있는데.....하여튼 복잡합니다.(.....왜 장자상속제를 안하냐구요..ㅠ.ㅠ 분가가 너무많아서 쓰러지는줄 알았습니다...-0-;;)
잠시 배경설명을 하면 팔츠의 선제후이자 독일의 국왕이었던 루페르트가 아들들에게 영지를 분할하면서 그 분가들이 생겨나게 됩니다.(팔츠그라프라는 칭호는 궁정백이라는 의미였는데 후대에 와서는 아예가문명으로 정착한듯합니다. 독일어라..--;;;눈치로 해석해서..쿨럭..)
하여튼 루페르트의 아들중 슈테판이 팔츠-지메른-츠바이브뤽켄의 팔츠그라프가 되면서 이가문이 시작됩니다. 이 가문역시 여러 분가들을 형성하게 되었는데. 팔츠 선제후,스웨덴 왕가,바이에른 왕가가 이 가문의 분가들입니다.
어쨌든 이 복잡한 분가들에 대해서 정리하다가 팔츠-츠바이브뤽켄-비르켄펠트가문까지 갔습니다.(스웨덴 왕들이 팔츠-츠바이브뤽켄 공작이기도 했는데, 칼12세 이후에 복잡하게 흘러가면서, 결국 이 가문에게로 공작위가 넘어가거든요.) 이 비르켄펠트 가문이 바로 바이에른 왕가입니다.(그리고 시씨황후의 가문인 바이에른 공작가문도 이가문의 분가입니다.)
뭐 어쨌든 보다가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1세 요제프가 어떻게 바이에른을 얻게 되었는지 궁금해졌었는데, 그의 형에 대해서 쬐금 읽게 되었답니다. 그의 형인 팔츠-츠바이브뤽켄의 카를2세 아우구스트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딸을 사랑했습니다만, 후에는 합스부르크가와 적대적 관계가 됩니다.^^*
카를 아우구스트
Charles II/III August Christian
(October 29, 1746 - April 1, 1795)
카를2세나 카를3세로 표기하는것은
비르켄펠트가문쪽으로는 카를2세이고,팔츠-츠바이브뤽켄 공작으로는 카를3세입니다.
(팔츠-츠바이브뤽켄공작으로 카를1세는 스웨덴의 칼11세, 카를2세는 스웨덴의 칼12세입니다. 팔츠-츠바이브뤽켄 가문으로 첫번째 스웨덴 국왕이었던 칼10세 구스타프는 팔츠-츠바이브뤽켄 공작이 아니라 그 분가인 팔츠-츠바이브뤽켄-클리부르크 공작이었습니다. 그의 아들인 칼11세가 윗대 분가들이 후손이 없자 공작령을 물려받은것입니다.--;;어찌나 복잡하던지.......ㅠ.ㅠ)
팔츠-츠바이브뤽켄의 팔츠그라프이자 공작인 카를2세 아우구스트는 팔츠-비르켄펠트-슈바일러의 프리드리히 미하엘과 그의 부인인 팔츠-줄츠바흐의 마리아 프란치스카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누이인 마리아 아말리에 아우구스테는 작센의 왕비였고, 다른 누이인 마리아 안나는 바이에른의 공작인 빌헬름과 결혼했죠.(둘의 아들이 바이에른의 피우스 공작으로 시씨황후의 할아버지입니다.) 그리고 막내동생은 후에 바이에른의 국왕이 되는 막시밀리안1세 요제프입니다.
카를 아우구스트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미하엘
카를 아우구스트의 여동생인 마리아 아말리에
(작센의 초대국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투스1세의 왕비)
카를 아우구스트의 동생인 막시밀리안 요제프
바이에른의 국왕 막시밀리안1세 요제프
그는 원래 아버지가 물려받은 슈바일러근처의 작은 지역만을 물려받을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촌인 팔츠-츠바이브뤽켄공작인 크리스티안3세가 귀천상혼하면서 공작령을 물려받게 됩니다. 그는 처음 오스트리아 궁정에 자주 출입하면서 한 여대공을 알게 됩니다. 바로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슈테판의 딸이었던 마리아 아말리아였죠. 마리아 테레지아의 여덟번째 아이였던 그녀는 막내동생이었던 마리아 안토니아(후에 프랑스의 마리 앙투와네트 왕비)와 무척이나 친했다고합니다. 하지만 여제는 마리아 아말리아와 언니오빠들과 비교했고, 이때문에 여제와 여대공사이는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다고합니다.
마리아 아말리아 여대공
마리아 아말리아 여대공과 카를 아우구스트는 서로 사랑에 빠졌지만, 여제는 둘의 결혼을 반대합니다. 여제는 카를 아우구스트가 합스부르크의 여대공과 결혼하기에 신분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고, 마리아 아말리아를 정략결혼시킬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또 마리아 아말리아의 큰오빠인 요제프2세는 자신의 사랑했던 부인인 파르마의 이사벨라의 남동생과 자신의 여동생을 결혼시키는것을 지지했기에 결국 마리아 아말리아는 파르마의 공작과 결혼하게 됩니다.
마리아 아말리아와 남편인 파르마의 페르디난드
둘이 헤어진후, 카를 아우구스트는 합스부르크가와도 등을 돌리게 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바이에른계승문제때문이었죠. 바이에른 계승문제 역시 복잡했는데, 바이에른의 선제후였던 막시밀리안3세가 죽은후, 줄츠바흐가문의 카를 테오도어가 선제후가 됩니다. 하지만 그가 합스부르크가와 평화를 위해 영토를 맞바꾸자, 막시밀리안3세의 부인이었던 작센의 마리아 안나 소피아는 이에 반대했고, 합스부르크가에 맞서 바이에른의 독립을 지키고, 카를 아우구스트를 후계자로 지원하기 위해 프로이센과 연합하게 됩니다.
바이에른의 선제후 카를4세 테어도어
그는 오스트리아와 친하게 지내려해서 선대 선제후비였던 마리아 안나의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바이에른의 선제후 막시밀리안3세의 부인이었던 마리아 안나 선제후비
작센의 마리아 안나
그녀는 합스부르크에 대항해서 프로이센과 연합했고, 카를 테오도어의 후계자로 팔츠-츠바이브뤽켄가문을 지지했다고 합니다.
결국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간의 전쟁으로 확대되었고, 카를 아우구스트는 자신의 계승을 위해 오스트리아와 싸우게 되죠. 그는 자신을 지지한 마리아 안나의 조카인 작센의 마리아 아말리아와 결혼합니다.
카를 아우구스트는 계승권리를 얻었지만, 카를 테어도어보다 오래 살지 못했고, 결국 동생인 막시밀리안 요제프가 뒤를 잇게 되죠. 이를 바탕으로 막시밀리안 요제프는 바이에른의 초대 국왕이 됩니다.
후에 마리아 아말리아의 큰딸인 부르봉-파르마의 카롤린은 카를 아우구스트의 처남인 작센의 막시밀리안 왕자와 결혼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피디어
그림출처
위키미디어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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