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러시아

러시아의 대공비들...3.파벨1세의 며느리들

엘아라 2009. 3. 21. 03:46

파벨1세는 어머니 예카테리나2세와 사이가 지극히 나빴다고 합니다.

예카테리나는 정치적으로 자신에게 반대하던 아들을 대신해서 손자를 계승자로 고려하고있다고 알려져있을정도였죠. 어쨌든 파벨1세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됩니다만 늘 혼란했던 러시아 궁정은 또한명의 짜르를 살해하게 됩니다.

파벨1세에게 불만을 품었던 예카테리나2세측 사람들은 파벨1세를 몰아내고 예카테리나2세가 직접 훈육한 손자인 알렉산드르를 황제로 추대하기로 하죠. 알렉산드르는 아마도 그 계획을 알고 있었고 묵인해줬을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를 죽이지 않는다는 조건과는 달리 쿠데타 세력은 파벨1세를 살해했고, 알렉산드르1세가 후에 신비주의에 몰입하게 된것도 아버지를 죽인 죄책감때문이라는 소리도 있습니다.(나폴레옹에게 알렉산드르1세가 뭐라 그러자 나폴레옹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남자'라고 응수했다고합니다.)

파벨1세는 황위계승법을 확립해서 여성의 황위계승권 배제, 귀천상혼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부계인 홀슈타인-고토로프계의 계승법을 그대로 확립한것이라는 생각이 든답니다.^^*

 

첫번째는 알렉산드르1세의 황후인 옐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 황후입니다.

 

 

 

 

바덴의 루이제

옐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 황후

 Elizabeth Alexeievna (Russian: Елизавета Алексеевна)

 (13/24 January 1779 - 4 May/16 May, 1826)

달고 있는 훈장은 바로 성 예카테리나 훈장

 

 

바덴의 루이제는 바덴 대공가의 후게자였던 카를 루드비히와 그의 부인인 헤센-다름슈타트의 아말리에 프레데리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언니는 바로 바이에른의 막시밀리안1세 요제프의 부인인 아말리에 왕비였고, 동생은 스웨덴의 구스타프4세 아돌프의 왕비인 프레데리카 왕비였죠. 그리고 막내 동생인 빌헤미네는 헤센의 대공비로 러시아의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알렉산드르2세의 황후)의 어머니였습니다.

예카테리나2세는 아름다운 루이제를 사랑하는 손자인 알렉산드르의 부인감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녀는 14살때 15살인 알렉산드르 파블로비치대공과 결혼하죠.

둘의 결혼은 전체적으로 불행한것이었다고 합니다. 둘이 처음만났을때, 어린 알렉산드르는 루이제에게 어떻게 대해야하는지 잘 몰랐고,루이제는 이런 행동에 대해 남편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결혼후에는 각자 연인이 있었죠. 옐리자베타는 향수병이 있었고, 시아버지인 파벨1세와 사이가 좋지 않았기에 러시아 궁정에서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합니다.

옐리자베타와 알렉산드르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옐리자베타는 남편을 늘 사랑했고, 남편을 늘 북돋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알렉산드르1세는 할머니-와 그 추종세력-과 아버지사이에 껴서 우유부단 하셨다고합니다.-0-;;;)

옐리자베타는 두 딸이 있었는데 둘다 남편의 아이가 아니라고 알려져있습니다. 둘다 어린나이에 사망했는데, 둘째딸을 잃었을때, 옐리자베타와 알렉산드르는 아이를 잃은 슬픔을 공유하면서 좀더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옐리자베타가 40대가 되었을때, 알렉산드르1세는 신비주의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아버지인 파벨1세를 살해했다는 죄책감때문이라고합니다.)  종교에 심취한 알렉산드르1세는 13년간 정부였던 마리야 나리쉬키나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부인인 엘리자베타 곁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둘은 부부로써 좀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황후는 어머니에게 '지금 제가 알렉산드르의 정부거나 그와 비밀결혼한것같답니다.'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1825년 황후는 몹시 아팠는데, 그해 황후보다 남편인 알렉산드르1세가 먼저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남편을 잃은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남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에는 너무나 연약했던 그녀는 결국 남편의 장레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편이 죽은지 6개월도 되지 않아서 그녀 역시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아름다운 옐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 황후

 

어린시절의 알렉산드르1세

 

나이들어서...

동생인 니콜라이1세랑 비슷하군요.

...라진스키 책에는 니콜라이1세에 대해서 외가인 뷔르템베르크가문을 닮았다..라고 나와있는데..

아마도 알렉산드르1세도 어머니를 닮은듯하네요.

(어머니인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는 파벨1세보다 훨씬 키가 컸다고 하죠..솔직히 파벨1세는 풍채가 좀 아니시라는...--;;;파벨1세는 아버지인 표트르3세를 과하게 닮으신 바람에....쿨럭..)

 

 

 

두번째는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의 부인인 안나 표도로브나 대공비입니다.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율리아네

한때 안나 표도로브나 대공비

Anna Feodorovna (Анна Фёдоровна )

Princess Juliane Henriette Ulrike of Saxe-Coburg-Saalfeld

(b. Coburg, 23 September 1781 - d. Elfenau, near Berne, Switzerland, 15 August 1860),

빅토리아 여왕이 얼굴에 비해 턱이 좀 작은 편인데..외가쪽 유전이군요...--;;;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율리아네 공녀는 작센-코부르크-잘펠트의 프란츠 공작과 그의 두번째 부인인 러스-뒤셀도르프의 아우구스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를 보면 누구인지 감이 안잡히시겠지만, 알고보면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이모이자 알버트공의 고모이고 벨기에의 레오폴1세의 누나입니다.

예카테리나2세는 둘째 손자인 콘스탄틴의 신부감으로 그녀를 선택했죠. 그리고 14살의 그녀는 콘스탄틴 파블로비치 대공과 결혼합니다. 하지만 둘의 결혼생활은 아주 불행했습니다. 콘스탄틴 대공은 부인에게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랐고, 안나 표도로브나는 남편의 행동에 실망하게 되죠.

결국 안나 표도로브나는 러시아 궁정과 남편에게 적응하는데 실패했고, 결혼 3년만에 친정인 코부르크로 돌아옵니다. 잠시 다시 러시아로 돌아가서 남편과 잘 지내려했으나 실패했고 1801년 아예 코부르크로 돌아옵니다.

둘은 별거 상태로 19년간이나 지낸후에야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콘스탄틴 대공이 사랑했던 폴란드 여성과 결혼하기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율리아네는 친정에서 지내면서 두 아이를 낳았다고 합니다. 첫번째 아이는 프랑스귀족의 아들로, 동생인 에른스트1세에 의해서 양육되었다고 합니다.(후에 에른스트1세의 사생아 딸과 결혼했고, 그 후손이 현재도 살고있다고합니다.) 둘째아이는 스위스인 의사의 딸로, 스캔들을 막기 위해 한 프랑스 망명자에게 입양되었다고 합니다.

율리아네는 음악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그녀의 집은 음악가들이 모여든 사교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이부언니인 페오도라의 세례명인 안나 페오도라는 안나 표도로브나의 이름에서 따온것이라고합니다.^^*

 

 

성 예카테리나 훈장을 단 안나 표도로브나 대공비

 

아부지를 심하게 닮은 콘스탄틴 대공

(가끔 파벨1세 초상화를 보는듯한 착각이....)

 

좀더 나이든후의 콘스탄틴 대공

...형제들이 비슷해지시는듯..

 

콘스탄틴대공의 귀천상혼한 부인 요한나

(성..은 못읽겠더라구요..쿨럭..)

 

 

세번째는 니콜라이1세의 황후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입니다.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

Alexandra Feodorovna(Александра Фёдоровна )

Princess Charlotte of Prussia,

 (July 13, 1798 – November 1, 1860)

 

니콜라이1세의 황후인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는 프로이센의 샤를로테 공주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헤름3세와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의 루이제였습니다. 특히 샤를로테의 어머니인 루이제 왕비는 나폴레옹에 맞서달라며 러시아의 알렉산드르1세를 방문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죠.

샤를로테는 어머니를 일찍잃었고, 장녀였기에 프로이센 궁정에서 가장 높은 지위의 여성으로 궁정을 이끌어가는법을 알았다고 합니다.

샤를로테가 16살이 되었을때 알렉산드르1세의 동생인 니콜라이 파블로비치 대공이 동생인 미하일 대공과 함께 베를린을 방문했다고합니다. (니콜라이 대공은 형들과 나이차가 많이 나서 동생이라기보다는 아들뻘이었다고합니다.) 다음해 러시아와 프로이센간의 결속을 위해 샤를로테와 니콜라이의 결혼이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둘이 약혼한후 2년후에야 결혼식이 열렸다고 합니다.

둘의 결혼이 정략결혼이긴했지만, 둘은 서로 사랑에 빠졌다고합니다. 약혼 2년후인 1817년 7월 13일 19번째 생일에 샤를로테와 니콜라이는 결혼했고, 그녀는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대공비로 불리게 됩니다.

알렉산드라는 시어머니인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태후가 사랑하는 며느리가 되었지만, 동서인 옐리자베타 알렉세예브나 황후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알렉산드라는 결혼 직후 임신해서 두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았고, 두아이를 낳은 다음해 딸은 사산했다고 합니다. 때문에 그녀의 건강은 급속히 악화되었고, 평생 건강이 좋지 않게 됩니다.

니콜라이는 형이 두명이었기에, 황위와는 거리가 멀어보였습니다. 둘은 아이들과 함께 매우 조용히 살았고 그것을 좋아했다고합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르1세가 사망한후, 콘스탄틴 대공이 황위를 거절하고난뒤 니콜라이는 황제로 즉위하게됩니다. 이때문에 알렉산드라 역시 황후가 되죠.

(니콜라이1세는 자신이 황제가 된것은 형들이 원해서였기때문이라고 했고 황제로 즉위한 당일 누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신과 형들의 의지의 희생양인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라고 적고있습니다.)

알렉산드라는 매우 동정심이 많은 사람으로 가난한 이들에대해서 특히나 더했다고 합니다. 또 완고한 남편에게 무척이나 순종적인 아내였으며, 니콜라이가 바라는 아내이자 어머니상을 성실히 수행했다고합니다.

그녀의 건강때문에 니콜라이1세는 정부를 두었고, 그녀는 정부를 질투하기는 했지만, 남편의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고합니다. --;;;;;

 

 

아름다운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의 남편

니콜라이1세

...라진스키 책에는 니콜라이와 미하일은 외가인 뷔르템베르크가문을 닮아서 잘생겼다..라고 나옵니다.

..형들에 비하면 확실히 잘생기긴 하신듯....ㅎㅎㅎ

하긴 아들인 알렉산드르2세를 보고 빅토리아 여왕께서 마음에 들어하셨다고 하더군요..

(여왕님께서 잘생기고 예쁜 사람에 좀 민감하시잖아요..ㅎㅎㅎ)

 

니콜라이1세와 가족들인듯..

확실히 니콜라이1세는 알아보겠습니다.

 

 

 

빈터할터가 그린 알렉산드라 표도로브나 황후

...라진스키 책에는 며느리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라고 표기되어있다죠.

(그거본순간 책산것이 후회되면서 라진스키 책을 믿을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위의 그림과 똑같은 황후 사진

...... 사실 며느리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랑 좀 닮긴했거든요..그래도 그게 분위기가 좀 비슷하지 실제로 사진이나 초상화를 보면 전혀 다른데 말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미하일 파블로비치 대공의 부인인 옐레나 파블로브나 대공비입니다.

 

 

 

 

 

뷔르템베르크의 샤를로테

옐레나 파블로브나 대공비

Grand Duchess Elena Pavlovna of Russia (Елена Павловна)

Princess Friederike Charlotte Marie of Württemberg

(Stuttgart, 9 January 1807 – Stuttgart, 2 February 1873)

 

뷔르템베르크의 샤를로테는 뷔르템베르크의 파울과 작센-힐드부르크하우젠의 카트린느 샤를로테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파벨1세의 부인인 마리야 표도로브나 황후의 조카로 미하일 대공과는 사촌간이었죠.

그녀는 어린시절 가족과 함께 파리에서 살았으며, 그녀의 어린시절 집은 다른 왕족들이 보기에는 평민에 가까웠다고합니다. 또 그녀는 파리에서 교양있는 사람들에게 교육을 받았다고합니다.

매우 교양있는 여성으로 알려졌던 샤를로테는 오촌인 러시아의 미하일 파블로비치 대공과 1822년 약혼합니다. 그녀는 매우 아름답고 교양있었기에 미하일 대공은 이런 그녀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죠.

1824년 미하일 대공과 결혼하면서 정교회로 개종했고 옐레나 파블로브나 대공비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미하일 대공과 옐레나 대공비의 결혼생활은 불행했는데  미하일 대공은 부인보다는 군대에 더 열성을 쏟았다고합니다.

옐레나 대공비는 니콜라이1세와 알렉산드라 황후와 매우 절친했으며, 조카 며느리인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황후와도 매우 잘 지냈다고합니다.

남편이 죽은후 옐레나 대공비는 자선사업에 열성을 쏟았으며, 예술의 후원자가 되었다고합니다.

 

 

딸인 마리야 미하일로브나 여대공과 함께 있는 옐레나 대공비

 

옐레나 대공비의 남편

미하일 파블로비치 대공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 Alexander II: The last great Tsar (라진스키)

그림출처

위키피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