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카페왕가합니다..ㅠ.ㅠ
이제 좀 머리는 덜 아플까 싶습니다만, 제가 프랑스 사를 하나도 몰라서 정치 상황을 머리 깨지게 읽어야하는 것은 똑같네요.
그래도 이름 읽는것은 좀 수월하겠죠.=-=
프랑스의 왕비들...번외편 16. 카페 가문
카페 가문은 987년 프랑스의 국왕이 되는 위그 카페로부터 시작되는 왕가입니다. 위그 카페는 당시 서프랑크 왕국의 가장 강력한 귀족 가문이었던 로베르티안 가문 출신이기도 했었습니다.
위그 카페의 아버지인 위그 르 그랑은 당대 서프랑크에서 가장 강력한 귀족이었습니다. 그리고 위그 카페는 이런 아버지의 영지와 권력을 물려받았었습니다. 물론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었을때는 미성년이었기에 후견인이 필요했었습니다만 그의 혈통과 주변인물들은 그에게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위그 카페는 사실 국왕 로타르에게 충성을 하는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로타르가 신성로마제국과의 경쟁에서 실패하고 약화되면서 아마도 위그 카페의 위상이 올라갔을 것입니다. 왜냐면 위그 카페의 어머니는 바로 오토 1세의 누이이자 오토 2세의 고모였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국 카롤링거 왕가의 마지막 국왕인 루이 5세가 사고로 사망한뒤 바로 위그 카페가 국왕으로 즉위합니다.
위그 카페가 서프랑크의 국왕이 된 이후, 서프랑크와 그의 뒤를 잇는 프랑스 왕국은 모두 위그 카페의 남성 직계 후손들이 통치하게 됩니다. 물론 카페 가문의 직계는 14세기 샤를 4세때 끝나게 되지만, 샤를 4세의 뒤를 잇는 발루아 가문의 필리프 6세 역시 카페 가문의 국왕인 필리프 3세의 손자로 그의 아버지가 발루아 백작이 되면서 "발루아" 가문으로 분가한것이었죠. 그리고 이어지는 부르봉 가문 역시 루이 9세의 아들인 클레르몽 백작 로베르가 시조이고 결국 카페 가문의 후손이었기에 결국 부르봉 가문의 마지막 국왕인 샤를 10세와 오를레앙 가문 출신의 국왕인 루이 필리프까지 모두 카페 가문 출신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를 루이 카페라고 부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사실 카페 가문이 서프랑크-프랑스를 통치하던 시기는 왕권이 주변 귀족들에 비해서 약하던 시절이었으며 결국 이 카페 가문의 국왕들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투쟁으로 발전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가장 강력한 봉신이었던 잉글랜드 국왕과 마찰을 빚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죠.
특히 카페 가문의 마지막 국왕인 샤를 4세가 죽은뒤, 샤를 4세의 조카이자 잉글랜드 국왕인 에드워드 3세는 어머니를 통해서 프랑스 왕가의 후손임을 들어서 프랑스 왕위계승을 주장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카페 가문의 단절과 발루아 가문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100년전쟁이 일어나게 되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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