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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왕비들...(60) 이탈리아의 로잘라 : 로베르 2세의 왕비

엘아라 2021. 4. 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카페 가문이라도 중세는 ..ㅠ.ㅠ

 

프랑스의 왕비들...(60) 이탈리아의 로잘라 : 로베르 2세의 왕비

 

이탈리아의 로잘라

플랑드르 백작부인

서프랑크의 왕비

Rozala of Italy, Rozala of Lombardy, Rozala of Ivrea or Susanna of Ivrea; 

(c. 950–960 –1003) 

 

로베르 2세의 첫번째 아내로 수산나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이탈리아의 로잘라는 이탈리아의 국왕 베렌가리오2세(베렌가리우스 2세)와 그의 아내인 토스카나의 윌라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로잘라의 아버지인 베렌가리오 2세는 이브레아의후작으로 이탈리아에서 권력을 잡았으며 결국 국왕이었던 로타르 2세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인물이었습니다. 로타르 2세의 아내인 아델라이드는  동프랑크 국왕인 오토 1세에게로 도망쳐서 그와 결혼했으며, 오토 1세는 대립관계가 되었으며 이탈리아를 두고 베렌가리오 2세와 대립했으며 결국 오토에게 왕위를 뺏기게 되죠. (오토 1세는 이탈리아 왕위를 얻은뒤 동프랑크와 이탈리아의 국왕이 되었으며 교황에 의해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지위를 얻게 되죠.)

윌라는 토스카나의 후작 보소의딸이었으며, 남편인 베렌가리오 2세가 몰아낸 이탈리아의 국왕 로타르 2세와는 사촌관계이기도 했었습니다. 윌라는 남편이 오토 1세에게 패배한뒤 남편과 함께 포로로 잡혔으며, 남편이 죽은뒤 밤베르크의 수녀원으로 은퇴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오토1세에게 항복하는 베겐가리오 2세

 

로잘라는 중세 여성들처럼 어린 시절에 대해서 잘 알려져있지 않습니다만, 아마도 아버지와 오토 1세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성장했을 것입니다. 아마 부모가 붙잡혀있는동안 함께 있었을 것이며 어머니가 밤베르크로 은퇴했을때 어머니와 함께 가서 지냈다고도 알려져있습니다.

 

로잘라는 976년 플랑드르 백작인 아르눌프 2세와 결혼하게 됩니다. 아르눌프 2세는 아버지가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했었기에 플랑드르는 섭정이 통치했었는데 이 틈을 타서 국왕은 플랑드르 백작의 영지 일부를 다른 친척들이나 가신들에게 줘버렸으며 그중에는 위그 카페도 포함되었습니다. 아마도 아르눌프 2세가 위그 카페가 국왕으로 선출되는 것을 지지하지 않은 것은 이때문일듯합니다. 로잘라는 아르눌프 2세와의 사이에서 두명의 아이인 보두앵과 마틸다를 낳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르눌프 2세는 987년 사망하죠.

 

아르눌프 2세

 

아르눌프 2세가 죽은뒤 로잘라의 아들인 보두앵 4세가 플랑드르 백작이 되었는데, 미성년이었기에 어머니인 로잘라가 아들의 섭정중 한명으로 일했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죽은 다음해인 988년 로잘라는 프랑스의 국왕 위그 카페의 아들인 로베르와 결혼하게 됩니다. 

 

로잘라가 로베르와 결혼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위그 카페의 뜻이 가장 컸다고 합니다. 로잘라는 이탈리아 국왕의 딸이었으며 엄청난 지참금을 가지고 있었기에 위그 카페는 로잘라가 아들에 비해서 나이가 많았음에도 결혼을 시켰다고 합니다.

 

로잘라는 로베르가 아버지 위그 카페와 공동 국왕으로 즉위했기에 역시 서프랑크의 왕비가 됩니다. 하지만 로잘라와 로베르의 사이는 좋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나이차였으며 또 자녀가 생기지 않은 것도 원인이 됩니다. 둘은 991년 또는 992년 경부터 별거했다고 합니다. 아마 이혼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결혼을 주선했던 로베르의 아버지 위그 카페가 반대했을 듯해서 입니다만, 996년 위그 카페가 사망하자 로베르는 로잘라와 헤어지기로 결정하죠. 로베르는 로잘라와 헤어진뒤에도 로잘라가 혼수로 가져온 영지를 돌려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로베르 2세의 대관식

 

로잘라는 로베르와 헤어진후에 아들이 있는 플랑드르로 갔으며 그곳에서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