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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왕비들...(42) 파스트라다 : 샤를마뉴의 아내

엘아라 2020. 5. 14. 06:00

 

 

파스트라다

Fastrada (765 – 10 August 794)

 

파스트라다는 765년경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라둘프(Radulf)또는 루돌프 또는 애돌프 등으로 알려진 인물이며 현재 튀링겐 근처의 강력한 세력을 가진 귀족이었다고 추정합니다. 

 

파스트라다는 783년 10월 보름스에서 샤를마뉴와 결혼했습니다. 샤를마뉴가 파스트라다와 결혼한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정치적 목적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샤를마뉴는 당시 작센과 싸우고 있었으며 이에 라인유역의 세력들과 동맹을 지속해야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783년에는 아내였던 힐데가르트는 물론 어머니였던 베르트라다 마저 사망했었고 아마도 궁정을 다스릴만한 여성 역시 필요했을 듯합니다.

 

황제로 대관하는 샤를마뉴

 

파스트라다는 샤를마뉴와의 사이에서 테오드라다와 힐트루드라는 두명의 딸을 낳았다고 합니다.

파스트라다는 남편인 샤를마뉴와 늘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샤를마뉴는 그녀와 연락을 지속했었다고 합니다.

 

파스트라다는 궁정에서 샤를마뉴의 장남이었던 피핀이 반란을 일으켰을때 비난을 받게 됩니다. 궁정에 있던 피핀을 파스트라다가 혹독하게 대했기에 그가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것은 이를 기록한 연대기 저자가 정작 파스트라다가 살아있을때는 궁정에 없었다고 합니다. 피핀은 반란을 일으킬만한 명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파스트라다는 피핀과 비슷한 또래였으며 아마 파스트라다가 장성한 의붓아들을 정치적으로 견제했을수도 있긴 합니다.

 

파스트라다는 794년 프랑크푸르트에서 사망했는데 다른 프랑크왕국의 왕과 왕비들처럼 생드니 대성당에 묻히지 않고 마인츠 근처의 한 대성당에 묻히게 됩니다. 이것은 당시 마인츠의 대주교가 그녀가 생드니에 묻히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