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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통치 가문들...(14) 던켈드 가문 : 스코틀랜드의 왕가

엘아라 2020. 3. 6.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스코틀랜드도 뭐랄까 참 기록이 부족한듯해요. ㅠ.ㅠ

아님 게일어말고 영어 기록이 부족한것일까요 ㅠ.ㅠ


유럽의 통치 가문들...(14) 던켈드 가문 : 스코틀랜드의 왕가


던켈드 가문은 스코틀랜드의 국왕 던칸 1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스코틀랜드를 통치한 왕가를 이야기합니다. 던켄드 가문의 원래 조상에 대해서 좀 애매한듯합니다. 던칸 1세의 아버지인 크리난Crinan은 던켈 수도원의 수도원장이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말콤 2세의 장녀였던 토소크Bethoc와 결혼했으며 둘사이에서는 던칸 1세가 태어났던 것입니다. 




던칸 1세

17세기 그림

세익스피어의 작품에서와 달리 그가 죽을때 던칸 1세는 젊은이였다고 합니다.



던칸 1세의 외할아버지인 말콤 2세는 아들이 없이 딸만 있었으며 이때문에 말콤 2세는 오래전부터 장녀의 아들인 던칸을 후계자로 지목한 상태였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인 말콤 2세가 죽은뒤 왕위를 잇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통치시기는 매우 복잡했는데 왜냐면 셰익스피어의 희곡 "맥베스"로도 유명한 맥베스가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머리의 통치자인 핀들라에흐의 아들인 맥베스는 아마도 던칸 1세처럼 말콤 2세의 외손자중 한명이었을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는 던칸 1세 만큼이나 왕위주장을 할수 있는 처지였으며 게다가 던칸 1세보다 더 유력한 가문 출신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던칸 1세와 그가 마찰을 빚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맥베스

18세기


던칸 1세가 죽고 맥베스가 왕위를 잇게 되자 던칸 1세의 자녀들은 매우 힘든 처지가 됩니다. 이들은 서둘러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야했었습니다. 그리고 던칸 1세의 아버지인 크리난은 손자를 위해서 맥베스에 대해서 봉기를 일으켰지만 실패하고 살해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말콤 3세는 성장한뒤 다시 스코틀랜드로 돌아가서 맥베스와 전투를 해서 이겼고 그와 그의 후계자를 살해하고 스코틀랜드의 국왕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말콤 3세와 웨섹스의 성 마거릿



하지만 말콤 3세와 그의 후계자였던 에드워드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스코틀랜드 내에서 다시 한번 계승의 혼란을 초래합니다. 말콤 3세는 그의 두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인 에드워드를 후계자로 내정했었는데 그가 죽자 말콤 3세의 동생인 도날드와 말콤 3세의 첫번째 아내의 아들인 던칸 그리고 에드워드의 동복 동생들인 에드가 등이 왕위계승권리를 두고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결국 왕위는 이전에 스코틀랜드 계승처럼 형제 상속으로 도날드가 도날드 3세로 즉위합니다만 말콤 3세의 아들인 던칸이 군사적 행동으로 숙부에게서 왕위를 뺏습니다만 던칸 2세는 도날드 3세에게 패배하고 살해당하게 됩니다. 



도날드 3세

17세기


말콤 3세와 그의 두번째 아내인 성 마거릿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중 어린 아이들은 대부분 잉글랜드로 피신했었습니다. 잉글랜드쪽에서는 이 말콤 3세의 자녀들을 받아들였으며 이들이 스코틀랜드로 돌아갈수 있도록 지원을 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에서 영향력을 강화할수 있는 계기가 될것으로 여겼기 때문일듯합니다. 그리고 던칸 2세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면서 말콤 3세의 아들인 에드가가 왕위에 오르게 되죠. 이후 그의 동생들인 알렉산더 1세와 데이비드 1세가 차례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데이비드 1세 시기가 되면서 잉글랜드는 혼란한 상황이 됩니다. 헨리 1세의 딸인 마틸다와 헨리 1세의 조카인 스티븐이 왕위를 두고 다투고 있었으며 잉글랜드는 내전상황이 되었죠. 스티븐이 장악했던 지역은 스코틀랜드와 더 가까웠고 데이비드 1세는 조카를 지지한다는 명분으로 잉글랜드를 공격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데이비드 1세의 아들인 헨리가 먼저 사망하고 어린 손자였던 말콤이 데이비드 1세의 후계자가 되었으며 후계자가 된지 1년만에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말콤 4세로 즉위합니다. 어린 국왕의 즉위는 당연히 왕국내에서 반란의 세력이 끊임없이 있었을뿐만 아니라 이웃이었던 잉글랜드 역시 강력한 헨리 2세가 즉위했었기에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하지만 말콤 4세는 이를 잘 해결했었는데 왕국내 반대 세력을 잘 달랬고 헨리 2세와도 우호를 유지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말콤 4세는 지병이 있었기에 젊은 나이로 결혼하기전에 사망했고 그의 뒤를 동생인 윌리엄이 윌리엄 1세로 즉위하게 됩니다.



데이비드 1세와 그의 손자인 말콤 4세



윌리엄 1세는 신앙심이 깊었으며 주변 사람들을 감복시킬줄 알았다고 알려진 형 말콤 4세와는 다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혈기왕성한 인물이었으며 자신의 의지대로 행하려했던 인물인듯합니다. 그의 행동이 좋은 결과를 맺었다면 괜찮았겠지만 그의 행동은 나쁜 결과를 초래했었습니다.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 패배해서 한동안 거의 속국처럼 되었었으며 다시 잉글랜드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에도 잉글랜드의 압박을 지속적으로 받아야했었습니다.


윌리엄 1세의 아들인 알렉산더 2세는 아버지와 달리 잉글랜드와의 관계에서 좀더 스코틀랜드에 유리한 입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잉글랜드 내 귀족들의 국왕에 대한 반발을 잘 이용했으며 이를 통해서 잉글랜드에 직접적으로 쳐들어가거나 아니면 잉글랜드가 스코틀랜드를 침량하려는 것을 효과적으로 막기도 했습니다. 


알렉산더 2세의 아들인 알렉산더 3세는 미성년 시절 아버지가 사망했기에 미성년으로 국왕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스코틀랜드내에서 반란을 초래하는 일이기도 햇었죠. 이후 그가 성년으로 스코틀랜드를 통치할때는 어느정도 안정을 찾았습니다만 그는 후계자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는 첫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세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모두 그보다 일찍 사망합니다. 특히 후손이라고는 노르웨이로 시집간 딸 마거릿이 낳은 마르가레타 밖에 없었는데, 마거릿도 이 딸을 낳고 사망했기 때문이죠.

이때문에 그는 후계자를 얻기 위해 두번째 아내를 맞았었지만 (첫번째 아내는 일찍 사망했었습니다만 후계자가 될 자녀들이 있었기에 재혼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두번째 아내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얻지 못하고 사망합니다. 알렉산더 3세의 죽음은 비극이었는데, 아내인 왕비의 생일날 멀리 떨어져 있던 국왕은 아내를 찾아가기로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날씨때문에 신하들이 반대햇었죠. 그러나 이미 술에 취한 국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길을 나섰다가 말에서 떨어져서 목이 부러져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와 스코틀랜드의 알렉산더 3세


그의 이른 죽음은 스코틀랜드 왕위계승문제를 발생하게 만듭니다. 처음에 귀족들은 그의 외손녀인 노르웨이의 마르그레테를 여왕으로 모시기로 했었지만 마르가레타는 스코틀랜드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사망했으며 그녀의 죽음이후 스코틀랜드 왕위를 주장하는 사람들로 복잡한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