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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노프 가문의 여성들...(138) 올가 알렉산드로브나 : 알렉산드르 3세의 딸 (세번째)
올가 알렉산드로브나
Grand Duchess Olga Alexandrovna of Russia
О́льга Алекса́ндровна;
(13 June [O.S. 1 June] 1882 – 24 November 1960)
1903년 올가는 오빠인 미하일 대공에게 군인이었던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쿨리코프스키를 만나게 됩니다. 올가와 쿨리코프스키는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둘은 정기적으로 편지룰 주고 받는 사이가 됩니다. 그리고 그와의 만남은 올가에게 새로운 삶을 생각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제 22살이었던 올가는 남편에게 정식으로 이혼을 요청합니다. 그와의 관계에서는 그녀가 원하는 평범한 결혼생활도 아이들도 얻을수 없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페테르는 이 이혼요청을 거절합니다. 사실 둘의 결혼은 집안간의 결혼이었으며 이혼은 둘 마음대로 할수 없는 문제였죠. 페테르는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으며, 이때문에 결국 그는 쿨리코프스키를 자신의 참모로 임명했고 자신의 집에 함께 거주하게 합니다. 이렇게 올가와 페테르 그리고 쿨리코프스키는 한집에 살게 되었는데 이것은 당연히 스캔들거리기도 했었습니다.
올가와 쿨리코프스키
1904년에서 1906년사이 페테르는 짜르스코예슬로의 경비 책임자가 되었으며, 올가 역시 이곳에 머물렀으며 짜르 가족들과 근처에 살게 되죠. 그리고 이때 조카들인 니콜라이 2세의 네딸들과 매우 친한 사이가 됩니다. 올가는 짜르의 네딸들과 함께 파티등에 다니기도 했었습니다. 올가는 특히 자신의 대녀이기도 했었던 아나스타샤와 제일 친한 사이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올가는 또 오빠 부부가 신뢰했던 "성자"인 라스푸틴을 만나기도 했었습니다. 그녀는 공식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라스푸틴을 불신했으며 마음에 들어하지도 않았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야 황태후와 조카들인 니콜라이 2세의 네딸들과 함께 있는 올가
하지만 이런 가족의 문제는 외부적 상황에 비해서는 아무것도아니게 됩니다. 러시아는 점차 더 복잡한 정치 상황에 빠져들게 됩니다. 세계 최강국이었던 러시아의 상황은 점차 나빠지기 시작했었죠. 특히 20세기 시스템과 맞지 않는 정치 체제는 결국 러시아의 상황을 더욱더 악화시켰고 사람들은 점차 개혁을 강하게 요구하게 되죠. 이런 불안한 정치 상황은 황실 가족들의 삶에 더욱더 위협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하지만 러시아가 완전히 몰락하게 된것은 바로 1차 세계대전이후였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서 러시아의 상황은 더 악화됩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쿨리코프스키는 자원해서 전장으로 갔으며 올가 역시 야전병원에서 일하게 되죠. 결국 부부는 1915년 공식적으로 별거했었으며 올가의 오빠인 니콜라이 2세는 1916년 올가와 페테르의 결혼을 무효로해서 둘의 이혼을 허락합니다. 그리고 올가는 이제 사랑하는 니콜라이 쿨리코프스키와 결혼을 할수 있게 됩니다. 올가는 더 늦기전에 결혼해서 자신의 아이를 얻고 싶었으며 이때문에 니콜라이 2세는 결국 올가의 이혼을 허락한 것일듯합니다.
올가는 어머니가 있는 키예프로 갔고 그곳에서 쿨리코프스키와 정식으로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개인적 행복을 찾아가는 동안 러시아 황실 가족들은 비극을 향해서 가게 됩니다. 1917년 니콜라이 2세는 퇴위해야했고 곧 많은 러시아 황실 가족들이 연금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나라는 공화국이 되죠. 볼셰비키는 황제 일가는 물론 황실 가족들 상당수를 살해했었죠. 올가는 어머니인 황태후와 남편 그리고 언니 부부와 함께 가택 연금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첫아이인 티콘을 낳았었습니다.
올가와 쿨리코프스키의 결혼식
이후 비극이 시작됩니다. 올가의 오빠가족들은 살해당했으며 다른 오빠나 숙부 사촌들 그리고 다른 로마노프 가문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올가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어머니와 함께 머물고 있었고 살아남은 로마노프 가문 사람들은 이 황태후 주변에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황태후는 언니인 알렉산드라 왕비의 간청으로 조카가 보낸 영국 전함을 타고 러시아를 빠져나왔었죠. 하지만 올가는 이때 어머니와 함께 하지 않았었습니다. 올가와 올가의 남편인 쿨리코프스키는 러시아 백군과 함께 있으면 안전하다고 여겼었기에 러시아에 머물렀었죠. 그리고 올가는 1919년 둘째 아들인 쿠리를 낳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안전도 여기까지였습니다. 올가와 올가의 가족들 역시 안전하지 못했으며 러시아를 떠나야했었죠., 이들은 터키로 간신히 피신을 했었으며 이후 세르비아로 가게 됩니다. 세르비아의 알렉산다르 1세는 이들에게 살곳을 제공했지만 올가의 어머니인 황태후는 딸이 자신에게 오길 원했으며 결국 올가와 그 가족들은 1920년 덴마크에 도착했고 황태후가 사는 곳으로 가서 머물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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