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

[새해특집] 불운한 아내, 불운한 어머니 그리고 불운한 왕비 : 바이에른의 이자보(10) 샤를 6세의 광기가 시작되다

엘아라 2019. 1. 1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에헤라 디야 망했습니다..ㅠ.ㅠ

엉엉엉....

하루쯤 쉬면서 글을써야할까요라고 생각하려니 이미 계속 글이 안써졌습니다.

올해도 역시 잠수하고 싶은 가득한 마음으로 글을 씁니다. ㅠ.ㅠ.



[새해특집] 불운한 아내, 불운한 어머니 그리고 불운한 왕비 : 바이에른의 이자보(10) 샤를 6세의 광기가 시작되다.


잉글랜드와의 전쟁도 사실상 거의 일어나지 않고 있었기에 이자보의 결혼 초기모습은 아마도 대외적으로는 평온하게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내부적으로는 알력과 갈등이 존재하고 있었겠지만 이런 알력이나 갈등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늘 있는 것이기에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닐수도 있었죠.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단숨에 뒤바꾼것이 바로 샤를 6세의 광기가 시작되면서였습니다. 이것은 이자보 삶의 가장 큰 불행이었을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부르고뉴-아르마냑 내전으로까지 이어지게 되기에 프랑스의 불행이기도 했습니다.


샤를 6세의 상태는 아마 외가쪽의 영향이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샤를 6세의 어머니인 잔 드 부르봉이나 외삼촌인 부르봉 공작 루이 드 부르봉 역시 샤를 6세와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단정짓기는 어려운데 몇몇 유전병(가장 대표적인 예가 포르피린증일것입니다.) 이 정신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환경이나 다른 질병등 다양한 외부 요인들 역시 무시할수는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샤를 6세


샤를 6세에게 처음으로 심각한 증상이 나타났다는 기록은 1392년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 사건에서 출발하게 되죠. 귀족이었던 피에르 드 크라옹이 샤를 6세의 조언자이자 고위 관리였던 올리비에르 드 크리송을 암살하려 했던 상황에서 출발합니다. 크라옹은 1391년 불분명한 이유로 파리에서 추방당하는데 이에 대해서 크리송을 비난하죠. 그리고 결국 크라옹은 크리송의 암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게 됩니다. 그리고 크라옹은 브르타뉴 공작의 궁정으로 도망가게 되죠. 이것은 브르타뉴 공작 장 4세가 크리송의 정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크라옹이 크리송을 암살하려할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장 4세의 뒷받침이 있어서였을 가능성이 커보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샤를 6세는 브르타뉴 공작이 자신의 총신을 살해하려한것에 대해서 격분했는데 아마도 이것은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여겼을 가능성도 있어보입니다. 어쨌든 샤를 6세는 이 브르타뉴 공작을 처벌하기 위해서 군대를 이끌고 가게 됩니다.


동시대 기록에는 샤를 6세가 군대를 준비하던 기간에 "열이났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이 어쩌면 발병의 시작이었을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군대는 순조롭게 준비되었으며 국왕은 기세 등등하게 브르타뉴 공작령을 향해 가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8월의 무더운날, 샤를 6세는 갑자기 배신자가 있다고 외치면서 칼을 빼들고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국왕 주변의 몇몇 기사들은 살해당한 후에 겨우 국왕을 제압합니다. 그리고 국왕은 기절하듯이 잠에 빠져들게 되죠. 다행히 잠에서 깨어난 샤를 6세는 다시 정신을 차렸습니다만 자신이 저지른 일을 보고서는 아마도 엄청나게 경악을 했을 것입니다. 


1392년 측근을 공격중인 샤를 6세


이후 샤를 6세의 정신 상태는 이상상태를 반복하게 됩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국왕의 이상 상태가 일시적인 것이라고 여기거나 적어도 통제할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샤를 6세의 증상은 점차 심해지는데 몇몇 사건들이 발생하면서 샤를 6세의 상태가 점차 더 악화되는 것을 대중도 알게 되죠. 그중 한 사건이 바로 1393년 1월 발생한 불타는 사람들의 무도회 라고 번역될수 있는 Bal des Ardents 일 것입니다. 이 사건의 시작은 이자보가 자신의 시녀가 결혼한 것을 기념해서 가장 무도회를 연것에서 출발합니다. 이 가장 무도회에서 여러 사람이 참석하는데 샤를 6세와 그의 측근들은 "야생인"으로 복장을 하고 춤을 추기로 한것입니다. 이것은 온몸에 첫을 두르고 기름을 바르고 마치 숲에서 살다 뛰어나온 사람처럼 복장을 한후 춤을 추는 것이었죠. 그리고 이런 상황은 늦게 온 국왕의 동생 오를레앙 공작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이들이 도대체 누구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횃불을 가까이 댔는데 문제는 이들의 복장이 너무 타기 좋은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불이 붙었는데 문제는 그들중 한명에 국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당황한 사이 국왕의 숙모였던 베리 공작부인 잔이 자신의 옷으로 국왕을 덮어서 불을 껐다고 합니다. 하지만 국왕과 함께 춤을 췄던 측근 몇명들은 화상을 입고 사망했었죠. 이 사건은 단순히 사고일수도 있었지만 국왕이 저런 복장으로 춤을 췄다는 것과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 것을 통해서 그가 이미 이전에 광기로 인해서 주변인물들을 살해했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중 하나가 되죠. 


 Bal des Ardents

15세기 그림

저기 푸른옷의 귀부인이 한 남자를 자신의 치마로 감싸고 있는데 그녀가 바로 베리 공작부인 잔이고 그녀가 감싸고 있는 사람이 샤를 6세입니다.



이후 샤를 6세의 상태는 점차 더 악화되는데 그는 자신이 국왕이라는 사실과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어버리기도 했으며 육개월간 씻지도 옷을 갈아입지도 않기도 합니다. 또 그는 상태가 악화될때마다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매우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자보에게 매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왜냐면 샤를 6세는 상태가 나빠지면 그렇게나 사랑했던 아내인 이자보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녀를 남처럼 대했으며 심지어 쫓아내기까지 했기때문입니다. 물론 다시 상태가 호전되면 그는 아내인 이자보를 찾았었죠.  특히 그렇게나 애정을 줬었던 남편이며 자신의 아이들의 아버지가 자신을 못알아보고 쫓아내기까지 한다는 것은 이자보에게는 엄청난 상처일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샤를 6세의 행동들은 어쩌면 단순히 이자보의 마음에만 상처를 준것이 아니라 나중에 그녀의 평판등에도 역시 영향을 줬을 것입니다.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