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엉엉엉..지쳐요..ㅠ.ㅠ
백년 전쟁 이야기를 써야 이자보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수 있어서 어쩔수 없이 써야하네요
엉엉엉..백년전쟁이야기는 잘 모르는데..라고 말하려니 책에 백년전쟁이야기가 있네요.
네 책쓰다가 이자보에 필받았던것입니다..흑-0-;;;;
늘 주장하지만 그냥 전쟁이야기가 싫은 것일뿐입니다.(그래놓고 프랑스 혁명전쟁이야기 쓴....--;; 고백하자면 좋아하지 않지만 남들이 안해서 튀어 보려고 쓴것뿐입니다.ㅠ.ㅠ 그래요 베르나도트 이야기 읽다가 필받은거예요..흑)
[새해특집] 불운한 아내, 불운한 어머니 그리고 불운한 왕비 : 바이에른의 이자보(9) 백년전쟁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의 오랜 전쟁이었던 백년 전쟁은 사실상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의 세력다툼때문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의 왕위에 오르면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도 할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정복왕 윌리엄은 노르망디 공작으로 프랑스 국왕의 봉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잉글랜드 왕위를 얻게 되면서 프랑스 국왕과 동등한 지위의 잉글랜드 국왕인 동시에 프랑스 국왕의 봉신인 노르망디 공작이라는 애매한 상태가 됩니다. 사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간단한 문제는 이제 외국의 국왕이 되었으니 상위군주였던 프랑스 국왕이 봉신이었던 노르망디 공작의 영지를 뺏아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노르망디 공작과 그 가신들은 바이킹의 후손으로 "노르만인"이라고 불릴렸고 이들은 엄청나게 사납고 전쟁기술이 뛰어난 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국왕은 노르망디 공작의 상위군주였지만 무력으로 그에게서 노르망디 공작령을 뺏을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럼 잉글랜드 국왕이 된 노르망디 공작이 노르망디 공작령을 잉글랜드에 편입시키는 방법도 있을것이지만 이것을 프랑스 국왕이 허용할리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전면전쟁을 해야할텐데 이러면 잘못하면 프랑스 왕국내 모든 귀족들을 적으로 돌려야할수도 있는 문제였기에 역시나 애매한 문제였습니다.
정복왕 윌리엄
잉글랜드의 윌리엄 1세
노르망디 공작
그런데 이후 결혼등으로 인해서 잉글랜드 국왕이 가지는 프랑스 내의 영지가 더 커지면서 문제가 됩니다. 헨리 1세의 뒤를 이은 이들은 프랑스쪽 사람이었으며 특히 헨리 1세의 외손자인 헨리 2세가 잉글랜드의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문제가 아주 복잡해지죠. 헨리 2세는 역시 사납기로 악명높았던 앙주 백작 가문 출신으로 앙주 백작 가문의 상속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당대 최고의 상속녀였던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결혼합니다. 이것은 헨리 2세가 아버지로부터 앙주 백작령과 인근 지역을, 어머니로부터 노르망디와 잉글랜드르 물려받았으며 아내의 권리를 통해서 아키텐 공작령과 그 인근 지역까지 통치할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됩니다. 이때 헨리 2세의 프랑스내 영지는 프랑스 국왕의 영지보다 더 컸었고 이것은 프랑스 국왕에게 굉장한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결국 잉글랜드와 프랑스간의 마찰로 이어지게 되죠.
헨리 2세와 엘레오노르 다키텐
헨리 2세는 어머니로부터 노르망디와 잉글랜드를, 아버지로부터 앙주 백작령과 그 인근 지대를 물려받았으며 아내인 엘레오노르의 권리를 통해서 아키텐 공작령과 그 일대를 통치했었습니다.
물론 잉글랜드의 국왕들은 이후 잉글랜드 내의 상황 역시 어려웠기에 프랑스 내 영지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으며 이에 프랑스 국왕은 잉글랜드 국왕이 가진 프랑스 내 영지를 되찾아오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이런 위태위태한 상황은 계속 이어지게 되다가 결국 프랑스 왕위계승문제와 맞물려서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본격적인 전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백년전쟁의 직접적 원인은 프랑스의 국왕 필리프 4세의 아들들이 남성 후계자를 남기지 못한 상황에서 시작됩니다. 필리프 4세의 아들들이 남성후계자가 없었기에 결국 왕위는 형제들이 잇다가 결국 친척관계였던 발루아 백작의 아들이었던 필리프 6세에게 왕위가 돌아가게 됩니다. 이 시기 잉글랜드의 국왕이었던 에드워드 3세는 그의 어머니인 프랑스의 이자벨이 필리프 4세의 딸인 것을 들어서 프랑스 왕위의 상속을 주장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프랑스측은 영지의 남성 계승만을 주장하는 살리카 법을 따르기로 합니다. 사실 이 살리카법은 확정된 법이 아니라 가문별로 적당한 합의를 볼수 있는 사항이었는데 프랑스는 외국 국왕인 잉글랜드의 국왕을 자신들의 국왕으로 받아들일수 없었기에 결국 남성에게만 상속권을 부여하는 살리카법을 주장하게 된것입니다. 이에 반발한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와의 전쟁을 시작하죠. 왕위계승을 주장하는 것이 직접적 이유이긴 했지만 사실 프랑스 내 잉글랜드 국왕의 영지를 분리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습니다.
필리프 4세와 그 가족들
왼쪽에서 샤를 4세, 필리프 5세, 이자벨(잉글랜드의 왕비), 필리프 4세, 루이 10세, 그리고 필리프 4세의 동생인 샤를 드 발루아(필리프 6세의 아버지)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필리프 6세와 장 2세를 거쳐서 샤를 5세와 샤를 6세에 이르기까지 지속됩니다. 특히 에드워드 3세가 전쟁을 시작한 초기 상황에서 프랑스에 비해서 잉글랜드는 매우 유리한 상황이 됩니다. 프랑스는 수세에 몰리게 되죠. 심지어 장 2세의 경우 잉글랜드에 포로가 되기까지 했었습니다. 국왕이 포로가 되자 프랑스는 결국 잉글랜드에 매우 유리한 조건의 휴전 협상을 진행하게 되죠. 하지만 장 2세의 뒤를 이은 샤를 5세는 이 틈을 타서 나라를 안정시키고 재정비했으며 프랑스 내 잉글랜드 영지의 봉신들이 잉글랜드에 대항하도록 규합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잉글랜드와의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지만 이번에는 프랑스 측에 유리하게 진행되면서 상당부분의 영지를 다시 되찾게 됩니다.
샤를 5세
하지만 잉글랜드와 프랑스 두 나라간의 내부적 문제는 전쟁을 다시 멈추게 만듭니다. 1377년 에드워드 3세가 사망하고 그의 손자인 리처드 2세가 10살의 나이로 즉위했습니다. 그의 숙부였던 랭카스터 공작이 섭정이 되었죠. 하지만 잉글랜드 내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불만이 가중되고 있었으며 특히 와트 타일러의 난 같은 과격한 농민반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은 잉글랜드가 프랑스와의 전쟁에 집중할수 없게 하는 일이었죠.
또 프랑스 역시 뛰어난 국왕이었던 샤를 5세가 1380년 사망했고 11살의 그의 장남인 샤를 6세가 즉위했고 숙부들과 외삼촌으로 구성된 네명의 섭정단이 프랑스를 이끌어갔으며 이들 역시 점차적으로 내부의권력다툼이 진행됩니다. 이러는 동안 결국 프랑스와 잉글랜드간의 전쟁은 다시 흐지부지 되었으며 1389년 휴전협상을 통해서 잠시 휴전에 들어가게 됩니다.
잉글랜드의 리처드 2세
이자보가 샤를 6세에게 시집갔던 시기는 바로 이 휴전시기가 막 시작되기 직전의 시기였습니다. 이 휴전시기는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모두 내전에 시달리는데 사실상 두 나라 모두 내정이 안정되지 않았기에 전쟁을 치룰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휴전한것이나 마찬가지였었죠. 잉글랜드에서는 숙부인 랭카스터 공작 곤트의 존과 그의 아들인 볼링블룩의 헨리를 경계했던 리처드 2세에 대해 볼링블룩의 헨리가 반발을 했고 결국 잉글랜드 내부는 편이 갈리면서 내전이 시작된것이었죠. 반면 프랑스의 경우는 더 비극적이었는데 섭정이었던 숙부들에게서 권력을 자연스럽게 이양받을것같았던 샤를 6세가 갑작스럽게 광기를 보이기 시작하면서 혼란이 시작 된 것이었습니다. 아무런 일을 할수 없게 된 국왕을 두고 다시 이제 예전의 섭정이었던 숙부들인 부르고뉴 공작등과 새롭게 세력을 형성하게 되는 국왕의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이 대결을 벌였고 결국 치열한 권력다툼은 내전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었습니다.
샤를 6세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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