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정복왕 윌리엄 이전의 잉글랜드 왕비들...(1) 들어가면서

엘아라 2018. 11. 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요즘 글이 진짜 안써지네요..ㅠ.ㅠ

할것이 많은데 계획한 글도 많은데 딱 안써지는것이 막 짜증이 나네요 -0-;;;;;

프랑스 왕비들 하려고 하다가 카페왕가부터 해야하나 그전의 프랑크 왕국도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짜증나서 일단 잉글랜드 마저 하고 프랑스로 갈까합니다. -0-;;;


윌리엄 이전의 잉글랜드 왕비들...(1) 들어가면서


우리가 아는 잉글랜드라는 나라가 성립된것은 아주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브리튼 섬이 세계 역사에 나타난 것은 바로 로마 시대였습니다. 갈리아를 정복한 카이사르는 바다 건너의 브리튼섬에 가기도 했었으며 이후 로마에 의해서 브리튼이 복속되었죠. 그후 로마가 붕괴되고 게르만인들이 이동하면서 브리튼섬에는 게르만인들이 세운 나라들이 등장합니다. 브리튼 섬으로 온 게르만인들을 앵글로-색슨인들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브리튼 섬 자신들의 나라들인 7왕국Heptarchy을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 나라들은 경쟁적으로 서로의 패권을 장악하려 했었고 9세기 무렵에는 웨섹스 왕국이 이들 나라들의 패권을 장악하게 됩니다. 하지만 웨섹스 왕국은 곧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바로 바이킹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노르드인들이 침입하기 때문입니다.



앵글로-색슨인들이 세운 일곱 왕국과 위치들

붉은색 표시가 나라들입니다.



브리튼 섬은 내부적인 다툼은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로마가 붕괴되고 난뒤 유럽 대륙의 혼란보다는 안정된 상태였으며 이때문에 번역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일단 브리튼 섬은 유럽대륙에서 배를 타고 가야했기에 외적들이 상대적으로 침입하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이킹들은 뛰어난 항해술을 가진 전사들이었으며 이들은 브리튼섬까지 항해하는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으며 부유하지만 방비가 허술했던 브리튼 섬의 여러 지역을 공격하는데 충분했었습니다. 특히 해안을 따라 있던 부유한 수도원들이 표적이었으며 이런 수도원에 대한 공격은 브리튼 섬의 경제는 물론 문화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노르드인들의 침입은 브리튼 섬내의 앵글로-색슨인들을 단결하게 만들었으며 결국 당시 힘을 얻고 있던 웨섹스 왕국을 중심으로 앵글로-색슨인들의 나라인 "잉글랜드"를 성립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잉글랜드를 성립했다고 알려진 인물은 바로 웨섹스 왕국의 국왕이었던 앨프레드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앨프레드 대왕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827년 바이킹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형의 뒤를 이어 웨섹스 왕국의 국왕이 되었으며 웨섹스를 지키기 위한 여러가지 노력을 해야했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이전의 국왕들처럼 돈을 주면서 바이킹의 침입을 억제하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이전처럼 역시 바이킹의 침입을 되풀이하게 만들었으며 바이킹에 대항해서 앵글로-색슨인들이 뭉쳐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바이킹에 대해서 기적적인 승리를 거둔후에 그의 생각은 주변 사람들에게 더욱더 지지를 얻게 되었고 결국 앵글로-색슨인들의 나라인 "잉글랜드"를 형성하게 만듭니다. 물론 잉글랜드라는 나라가 성립된것은 앨프러드의 손자대의 일이지만 개념 자체를 제시한때는 앨프러드 대왕때였기에 잉글랜드의 첫 국왕을 앨프레드로 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앨프레드

19세기


하지만 잉글랜드를 성립한 웨섹스 왕가는 평온하게 왕국을 유지한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바이킹의 후손들인 데인인의 침입을 받았으며 왕국의 왕위 역시 뺏기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정통성은 오래도록 유지했었습니다만, 결국 노르망디 공작인 기욤의 침입을 받았고, 이 노르망디 공작은 무력으로 잉글랜드를 장악하면서 "정복왕 윌리엄"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정복왕 이전의 잉글랜드 왕비들을 할 예정입니다. 앨프러드 대왕의 왕비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으로는 참회왕 에드워드의 왕비까지죠. 물론 중세 그것도 초기 중세의 여성들에 대한 자료는 극히 미흡한 경우가 많지만 일단 시작해보려합니다. 이들 왕비들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거나 정치에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노르망디의 엠마입니다. 잉글랜드에서는 노르웨이와 덴마크를 견제하기 위해 역시 바이킹의 후예였던 노르망디 공작과 동맹을 맺으려했고 이에 엠마가 동맹의 조건으로 잉글랜드의 국왕과 결혼하죠. 하지만 그녀의 삶은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참회왕이 되는 에드워드를 낳았지만 잉글랜드는 결국 데인인에 의해 점령당합니다. 하지만 잉글랜드를 점령한 크누트는 막강한 노르망디 공작과의 동맹을 유지하고 싶었기에 엠마와 결혼하면서 동맹을 재확인합니다. 그후 엠마는 아들들의 잉글랜드 왕위계승에도 적극적으로 관여해서 참회왕 에드워드가 왕위에 오를수있도록 하기도 했었습니다.



아마 오빠인 노르망디 공작 리하르 2세의 영접을 받는 노르망디의 엠마와 그녀의 두 아들



이런 왕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잉글랜드의 역사에 대해서 좀 더 알길 바랍니다.


자료출처

내책=-=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