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영국의 왕비들

스코틀랜드의 왕비들...(30) 잉글랜드의 마거릿 : 제임스 4세의 왕비 (다섯번째)

엘아라 2018. 8. 9.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0-;;;;;;

잠이 와요....


스코틀랜드의 왕비들...(30) 잉글랜드의 마거릿 : 제임스 4세의 왕비 (다섯번째)




마거릿 튜더

헨리 7세의 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4세의 왕비

제임스 5세의 어머니

메리 스튜어트의 할머니

단리경의 외할머니

Margaret Tudor

(28 November 1489 – 18 October 1541)


마거릿은 전 남편과의 문제가 여전히 골치아팠었는데 그것은 그가 스코틀랜드 내에서 강력한 귀족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거릿의 이런 상황은 아들인 제임스 5세가 성장하면서 해결됩니다. 그는 성인으로 스스로 통치하게 되면서 주변의 신하들을 배제할수 있었는데 그는 어머니에게 호의적이었기때문이었습니다.


제임스 5세는 새아버지였던 헨리 스튜어트와 어머니에게 메테번 성을 주었고 헨리 스튜어트는 메테번 영주 지위를 부여했었습니다.그리고 어머니인 마거릿을 꽤나 신임했었죠. 이런 상황은 그녀가 정치적 특히 잉글랜드와의 외교 관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제임스 5세


마거릿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사이에서 끼인 상황이었습니다. 두 나라간의 사이가 좋다면 그녀의 역할은 편안했지만 두 나라 사이가 나빠지면 그녀의 역할도 그리 좋을수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마도 마거릿은 친정인 잉글랜드와 자신의 후손들이 물려받게 될 스코틀랜드 사이에 평화를 유지하길 바랬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거릿이 아들인 제임스 5세와 조카인 메리(메리 2세)의 결혼을 지지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 역시 이런 상황과 연결이 되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제임스 5세는 기본적으로 외삼촌인 헨리 8세에 대해서 어느정도 경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앵거스 백작을 여전히 헨리 8세가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마거릿은 국왕의 조언자로써 다시 한번 남동생을 만나러 가게 됩니다. 그녀는 매우 호화스럽고 당당하게 아들의 조언자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은 제임스 5세는 어머니의 말에 휘둘리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제임스 5세의 외삼촌 

잉글랜드의 헨리 8세


게다가 마거릿의 개인 생활은 사실 매우 우울해지기 시작했었습니다. 새로 결혼한 남편인 헨리 스튜어트 역시 전 남편인 앵거스 백작과 마찬가지로 아내의 돈으로 살아가면서도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었죠. 마거릿은 남편이 중혼했다고 여기기까지 했었습니다. 그녀는 이런 실망스러운 결혼생활에 다시 한번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합니다만 아들인 제임스 5세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결국 마거릿은 다시 한번 국경지방으로 도망가려했지만 결국 에든버러로 돌아와야했었다고 합니다. 


마거릿 튜더


마거릿은 마리 드 기즈가 스코틀랜드로 왔을때 좋아했으며, 며느리였던 마리 드 기즈가 자신을 시어머니 대접해주는 것에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마거릿은 1541년 뇌졸중이 왔으며 이후 사망했습니다. 다른곳에 있던 제임스 5세는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고 합니다. 마거릿은 제임스 5세에게 자신의 딸이자 그의 이부 동생인 마거릿 더글라스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