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결국 다섯개를 해야할듯합니다. -0-;;;
포르투갈의 인판타들...(49) 인판타 카타리나 : 주앙 4세의 딸 (네번째)
포르투갈의 카타리나
카타리나 디 브라간사
잉글랜드의 캐서린 왕비
Catherine of Braganza
(25 November 1638 – 31 December 1705)
캐서린은 서서히 국왕의 애정과 잉글랜드 대중의 신뢰를 얻어갔지만 잉글랜드 내에서 여전히 편안히 보낼수는 없었습니다. 그녀는 잉글랜드 정치에는 전혀 관계하지 않았지만 포르투갈의 이익에 대해서는 개입을 하려했었습니다. 그녀의 개입은 성공적이지는 않았으며 이것은 아마도 잉글랜드 내에서 캐서린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캐서린은 유산만 했을뿐 찰스 2세에게 적자를 낳아주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되자 의회에서는 가톨릭 교도이며 후계자를 낳을수 없는 캐서린에 대해서 그다지 호의적이 되지 않게 됩니다. 캐서린의 건강이 악화되었을때 찰스 2세의 새로운 신붓감을 찾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국왕은 아내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었으며 의회에서 이혼하라는 압력을 넣었어도 여전히 캐서린을 왕비로 인정하고 살았었습니다.
찰스 2세
캐서린은 잉글랜드 내정에는 전혀 간섭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가톨릭 교도라는 것은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잉글랜드 내에서 가톨릭 사제를 추방했을때 캐서린의 조언자였던 개인 사제마저도 추방당할 위기가에 놓이게 됩니다. 이에 찰스 2세는 그를 캐서린의 시종으로 임명해서 아내의 곁에 머물수 있게 해주었죠.
이렇게 찰스 2세의 애정을 얻게 되면서 캐서린은 위태위태한 잉글랜드에서의 삶을 보호받을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큰 사건은 바로 Popish Plot 이라고 불리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사실 가톨릭 교도에 대한 개신교도의 견제로 부풀려진 이야기였습니다만 어쨌든 국왕의 암살음모로 국왕 주변의 모든 가톨릭 교도들을 연루시킨 사건이었습니다. 왕비인 캐서린 마저도 의심받았는데 찰스 2세는 의회에서 왕비인 캐서린을 직접 옹호하면서 그녀가 자신을 죽이는 음모에 관여되었을리 없었다고 확언했었다고 합니다. 국왕의 보증으로 캐서린은 혐의에서 벗어날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가톨릭 교도들을 보호할수 있었습니다. 캐서린은 국왕의 정부이자 프랑스 출신의 가톨릭 교도였던 루이즈 드 케루얄을 보호하기도 햇었습니다. 이것은 찰스 2세가 아내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캐서린의 남편에 대한 애정을 보상받은 것이기도 했습니다.
루이즈 드 케루얄
포츠머스 공작부인
찰스 2세의 정부
1685년 찰스 2세는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죽기전 캐서린은 남편에게 자신이 그를 화나게 했었다면 용서해달라고 했었다고 합니다. 이에 찰스 2세는 늘 자신에게 성실하고 애정을 보였던 아내에게 도리어 사과를 전했다고 합니다. 찰스 2세는 가톨릭에 호의적이었지만 정치적인 문제로 가톨릭이 될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어가면서 그는 종교에 대한 절실함이 더해졌고 캐서린은 이런 남편 뜻을 열렬히 지지했었다고 합니다.
남편인 찰스 2세가 죽고 난 뒤 캐서린은 잉글랜드에서 사는 것을 점차 힘들어 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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