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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117) 링컨의 리처드 : 헨리 1세의 아들

엘아라 2016. 10. 3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헨리 1세는 자식이 왜이리 많은 거랩니까

자식들 순서라도 알면 좋을텐데 큰아들 빼고는 순서도 잘 모르겠습니다.-0-;;;


그래서 자료 많은 사람들 부터 막 할까합니다. -0-;;;; (그럼 딸들이 밀리는데...)


정부들과 그 후손들...(117) 링컨의 리처드 : 헨리 1세의 아들



Richard of Lincoln

(b. before 1101, d. 25 November 1120)


링컨의 리처드는 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1세와 안스프리데(Ansfride)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과부로, 헨리 1세의 세번째 정부였다고 알려져있다고 합니다. 

링컨의 리처드는 링컨의 주교였던 리처드 블로엣에 의해서 양육되고 교육받았는데, 리처드 블로엣은 링컨의 리처드의 형이었던 글로스터 백작 로버트 역시 교육했다고 알려진 인물이라고 합니다.



헨리 1세


리처드는 아버지인 헨리 1세와 프랑스의 국왕 루이 6세와의 전쟁에서 아버지를 도왔지만 그가 전투에 직접적으로 언제 참전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잉글랜드의 연대기에 따르면 1119년 그는 랄프 드 루스의 도움으로 프랑스 군에 포로가 되는 것을 면했다는 내용이 있으며 이때문에 적어도 1119년 이전에 참전했을 것이라 추정할수 있는듯합니다.


그는 아버지를 도와 프랑스와의 전쟁을 계속했으며 특히 아버지의 강력한 적중 한명이었던 아모리 3세 드 몽포르와 싸워서 에브뢰 성을 함락시키는데 기여를 했었으며, 더 나아가서 브레뮐 전투에서도 활약을 했었다고 합니다. 브레뮐 전투 이후 프랑스 국왕인 루이 6세는 헨리 1세의 적자였던 윌리엄 아델린을 노르망디 공작으로 인정하는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링컨의 리처드는 가엘과 몽포르의 영주였던 라울 2세 드 가엘의 딸인 아미스와 약혼했었습니다만, 그 결혼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결혼하기 전 그는 이복형제였던 윌리엄 아델린과 함께 화이트 쉽에 승선했었고 화이트쉽 난파때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아미스는 약혼자와 함께 가지 않았기에 살아남았으며, 2대 레스터 백작인 로버트 드 보먼트와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아미스와 레스터 백작의 딸인 하와이즈는 후에 헨리 1세의 손자이자 링컨의 리처드의 조카인 2대 글로스터 백작 윌리엄 피츠로버트와 결혼했습니다. 



화이트쉽 난파사건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