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정부들 이야기는 없는데 아이들 이야기는 있군요.
헨리 1세는 사생아들이 열두명이나 있더라구요=0-;;;;;;;;;;
그래서 일단 어머니 이야기는 없지만 있는 사람들을 적으려하니까 문제가 중세 인물들은 또 자료가 별로 없드랩니다.ㅠ.ㅠ
어쨌든 적긴해야하고 난감하네요 -0-;;;;
정부들과 그 후손들...(110)블루아의 제르바즈 : 국왕 스티븐의 아들
Gervase of Blois
블루아의 제르바즈는 잉글랜드의 국왕이 되는 블루아의 스티븐(에티엔)과 그의 정부였던 다메트(Damette)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스티븐은 정복왕 윌리엄의 외손자로 외삼촌이었던 헨리 1세가 남성후계자없이 사망하면서, 헨리 1세가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했던 딸인 마틸다(모드)를 제치고 잉글랜드 국왕이 된 인물이었습니다. 후에 잉글랜드는 모드와 스티븐의 내전으로 엄청나게 혼란스럽게 되는데 결국은 스티븐의 남성후계자가 없게 되면서 모드의 아들인 앙주 백작 앙리(헨리 2세)가 잉글랜드 왕위를 물려받게 됩니다.
노르망디의 아델라(정복왕 윌리엄의 딸)과 세아들들
스티븐은 정부와의 사이에서 몇명의 아이가 있었는데, 중세 시대의 다른 사람들처럼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나마 제르바즈의 경우 그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수도원장이었기에 어느정도 기록이 남아있는 것입니다.
잉글랜드의 스티븐 국왕
1138년 스티븐은 자신의 아들이었던 제르바즈를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수도원장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이것은 전형적으로 영지가 부족한 아들에게 영지나 재산을 물려주는 방식으로, 웨스트민스터 같은 강력하고 거대한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되는 것은 부유하고 편안한 삶을 누릴수 있는 중요한 계기중 하나였습니다. 아마 이때 제르바즈는 나이가 어려서 수도원장으로써의 임무를 수행할수는 없었던듯합니다. 이때문에 그의 업무는 대리하는 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수도원에서 이런 어린 수도원장을 인정한 것은 수도원 역시 왕실에서 보조금을 더 받을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제르바즈가 웨스트민스터의 수도원장이었을때 그는 참회왕 에드워드를 시성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웨스트민스터에는 에드워드의 시신이 모셔져있었고 이때문에 그가 시성된다면 웨스트민스터에 순례자들이 더 올것을 기대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 그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바이외 테피스트리에 나타난 참회왕 에드워드와 헤롤드
제르바즈가 웨스트민스터의 수도원장이었을무렵 교황은 웨스트민스터의 영지 운영에 대한 개혁을 요구했었으며, 제르바즈의 운영방식은 어느정도 교회의 인정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잉글랜드 내의 정치적 상황은 제르바즈가 수도원장의 지위를 계속 유지할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1154년 스티븐이 죽고, 헨리 2세가 즉위하면서 상황은 변하게 되죠. 헨리 2세는 웨스트민스터에 자신의 사람을 두길 바랬으며 결국 제르바즈는 1157년 자신의 지위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수도원장 지위에서 물러난 직후 제르바즈는 사망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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