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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104) 마리 클로틸드 엘리자베스 루이즈 드 리케 : 나폴레옹 3세의 정부

엘아라 2016. 8. 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나폴레옹 3세 정부들은 대충 여기서 끝내려고 합니다.
자료들은 더 있는데 짤막짤막한 이야기들밖에 없더라구요. 자료를 뒤져도 별말도 없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냥 편하게 자료 많은 사람들 이야기로 넘어갈까 싶더라구요.


사실 이 자료는 정리된 자료가 별로 없어서 사람들을 읽어가면서 정보를 얻어야하거든요.

프랑스 왕가의 방계 공작 가문들 같은 경우도 많은데 리스트가 없어서..-0-;;


그래서 다음으로는 자료 많은 잉글랜드쪽으로 할까합니다.-0-;;;



정부들과 그 후손들...(104) 마리 클로틸드 엘리자베스 루이즈 드 리케 : 나폴레옹 3세의 정부



마리-클로틸드-엘리자베스 루이즈 드 리케

메르시-아르장토 백작부인

Marie-Clotilde-Elisabeth Louise de Riquet 

(3 June 1837 – 8 November 1890) 


아마도 "루이즈"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마리 클로틸드 엘리자베스 루이즈 드 리케는 1837년 시메 공인 미셸 가브리엘 알폰스 페르디난드 드 리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16대 시메-카라망 공의 아들로 그의 형이 17대 시메-카라망 공이었습니다. 아마 이런 상황 때문에 그 역시 시메 공 칭호를 썼었던듯합니다. 재미난 것은 그녀의 오촌조카였던 19대 시메-카라망 공은 미국의 상속녀였던 클라라 워드와 결혼했었는데, 클라라 워드는 이 높은 신분의 남편을 버리고 웨이터 출신의 남자와 야반도주하는 바람에 유럽 상류 사회를 발칵 뒤집기도 했었습니다. (클라라 워드에 대해서는 앞쪽의 제글 유럽의 왕족,귀족과 결혼한 미국의 상속녀들...(39) 클라라 워드를 참조해주세요,)


1860년 메르시-아르장토 백작인 외젠 아르눌프 앙리 샤를 프랑수아 마리 드 메르시-아르장토와 결혼했고 이후 그녀는 메르시-아르장토 백작부인이나 루이즈 드 메르시-아르장토 등으로 더 잘 알려지게 됩니다.

어린시절부터 피아노에 재능이 있었던 그녀는 재능있는 음악가로 성장합니다. 그녀는 피아노를 잘 쳤을뿐만 아니라 작곡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재능때문에 여러 음악가들과 교류했는데 리스트도 그중 한명이었다고 합니다. 1861년 리스트를 만났던 루이즈는 이후 리스트가 죽을때까지 평생 교류했었습니다.



루이즈가 작곡한 곡

피아노와 성악을 위한 여섯 멜로디 (...맞나 내맘대로 해석중..ㅠ.ㅠ)



1866년 메르시-아르장토 백작부인은 황제 나폴레옹 3세와 만나게 됩니다. 아름답고 재능있었던 루이즈에게 당연히 나폴레옹 3세는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훗날 루이즈는 자신의 자서전에서 황제와의 관계는 플라토닉한 관계로 묘사하고 있는듯합니다. 하지만 당대에는 나폴레옹 3세의 많은 여성 편력때문에 루이즈 역시 그의 정부가 되었을것이라고 생각했던듯합니다. (...ㅠ.ㅠ 프랑스어로 뭐라뭐라 그러는데 모르겠어요-0-;;; 이거 내가 완전 소설쓰는거 아니야?) 메르시-아르장토 백작부인은 나폴레옹 3세가 세당에서 패배한뒤 프로이센의 포로가 되었을때 그를 방문한 마지막 인물이기도 했었습니다. 아마 이런 상황은 그녀가 친구였다고 하더라도 나폴레옹 3세와 매우 가까운 친구였을 것이라고 추정할수 있습니다.(자서전을 못읽어봤습니다..ㅠ.ㅠ)


1880년대가 되면서 메르시-아르장토 백작부인은 러시아 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녀는 러시아어를 배웠으며 러시아 음악가들과 교류했고 러시아 음악을 널리 알리려 노력했었다고 합니다. 

루이즈는 1890년 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루이즈 드 메르시-아르장토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