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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86)안 농파르 드 카우몽 : 루이 18세의 정부

엘아라 2016. 3. 7.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루이 15세는 마담 뒤바리로 끝내고 루이 16세는 아시다시피 공식 정부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루이 18세 하기로 했습니다.-0-;;


정부들과 그 후손들...(86)안 농파르 드 카우몽 : 루이 18세의 정부




안 자코베 농파르 드 카우몽 드 라 포르세

발비 백작부인

Anne Jacobée Nompar de Caumont de La Force, 

Countess of Balbi 

(19 August 1753 – 3 April 1842)


안 자코베 농파르 드 카우몽 드 라 포르세는 1753년 카르몽 드 라 포르세 후작의 딸로 라 포르세 성에서 태어났습니다. 안의 아버지는 루이 15세의 궁정 조신으로 루이 15세의 손자인 프로방스 백작(후에 루이 18세)의 시종장이었었죠. 안의 어머니는 아르투아 백작의 아이들의 가정교사이기도 했었습니다.

안은 발비 백작과 결혼해서 발비 백작부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로방스 백작부인이었던 마리 조제핀 드 사보이아의 시녀가 되었죠.



프로방스 백작부인 

마리 조제핀 드 사보이아


아름답고 위트있었지만 자신의 적들에게는 무자비했던 안은 프로방스 백작부인의 시녀가 되면서 프로방스 백작의 정부가 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도팽 부부 사이에서 오래도록 아이가 없었기에 프로방스 백작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았으며 이런 상황은 안이 프로방스 백작의 정부가 되려했던 계기가 되었을 듯합니다. 게다가 프로방스 백작 역시 아내가 시녀였던 마르거리트 드 구르비용의 영향력아래 있었던것을 매우 못마땅해했기에 결국 안을 정부로 들이게 되죠. 

안의 남편인 발비 백작은 아내가 프로방스 백작의 정부가 된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이때문에 항의하다가 결국 체포되었으며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고 합니다.


프로방스 백작 

후에 루이 18세



프로방스 백작은 베르사유에 정원을 만들었는데 안의 이름을 따서 "발비 정원"이라고 이름 붙였었다고 합니다.


혁명이 일어나면서 안은 프로방스 백작부부와 함께 망명을 하기로 합니다. 문제는 프로방스 백작과 프로방스 백작부인이 따로 지내게 됐는데 안은 프로방스 백작부인의 시녀였기에 프로방스 백작과 떨어져지내게 되었었죠. 이후 안은 쌍둥이를 낳았는데 프로방스 백작의 아이가 아니었었죠. 결국 이 상황은 프로방스 백작이 안과의 관계를 정리하는 계기가 됩니다.


1802년까지 잉그랜드에서 머물렀던 안은 이후 프랑스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프랑스에서 자신의 남편의 재산을 조금이라도 되찾으려 했었다고 합니다. 


이후 안은 조용히 살다가 1842년 사망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