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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84) 바리 백작부인 잔 베퀴 : 루이 15세의 정부 (첫번째)

엘아라 2016. 2. 22.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마담 뒤 바리만 하고나면 몇명 안남습니다.

루이 16세는 공식 정부는 없었는데 대신 사생아 딸이 한명있거든요. 

이에 대해서 자료 찾아보고 있음 하고 없음 말고 할까합니다.

그담으로는 뭐 루이 18세, 샤를 10세까지가 끝이거든요. 프랑스 국왕으로는 다음으로는 나폴레옹과 나폴레옹 3세가 있는데 사실 나폴레옹은 했거든요-0-;;;;나폴레옹 3세는 할까말까 고민입니다.(실은 나폴레옹 3세의 여인들이라는 책을 찾아놓은것이 있긴합니다.-0-;;;)

하여튼 그럼 프랑스 왕가는 대충 끝나는데 다음으로는 분가를 봐야해서 말입니다. 오를레앙 가문부터 거꾸로 올라갈까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0-;;;;


음냐... 아직 잉글랜드도 안하고 스웨덴도 안하고 하여튼 안한나라 천지인데 프랑스만으로도 몇년은 버틸듯해요-0-;;;


정부들과 그 후손들...(84) 바리 백작부인 잔 베퀴 : 루이 15세의 정부 (첫번째)




잔 베퀴

바리 백작부인

마담 뒤 바리

Jeanne Bécu, 

Madam du Barry 

(19 August 1743 – 8 December 1793)



루이 15세가 총애했으며 마담 드 퐁파두르와는 비교되게 오직 "사치"에만 열을 올렸으며 마리 앙투아네트와의 기싸움이야기로 유명한 마담 뒤 바리는 1743년 침모였던 안 베퀴의 사생아 딸로 태어났습니다. 사생아였기에 어머니의 이름을 따서 잔 베퀴라고 이름 붙여졌죠.

안 베퀴의 가계는 좀 재미난데 그녀의 아버지인 파비엥 베퀴는 루이 14세의 정부였던 이자벨 드 뤼드르의 집에서 하인으로 있었다고 합니다.


잔의 아버지가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여러명의 후보가 있지만 가장 유력한 후보는 프란체스코회 수도사로 "앙쥐 수사"라고 불렸던 장 바티스트 그라몽 드 부베르니라고 추정한다고 합니다. 그는 잔 베퀴가 침모로 일했던 수도원에 있던 수사였다고 합니다.


잔의 어머니인 안 베퀴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알려져있었으며 이런 그녀에게 남자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중 무슈 빌라르-뒤몽소라는 인물은 안과 그녀의 딸인 잔을 파리로 데리고 갔었습니다. 무슈 빌라르-뒤몽소는 안 베퀴의 또다른 아이였던 클로드 베퀴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인물이었죠. 안 베퀴는 파리에서 무슈 빌라르-뒤몽소의 이탈리아 출신의 정부 집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무슈 빌라르-뒤몽소의 정부였던 프란체스카는 남자친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해서 얻어내는 인물이었는데 이런 그녀는 어린 잔을 만난후 잔을 매우 예뻐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무슈 빌라르-뒤몽소가 잔의 교육을 위해 돈을 지불하게 했던듯 합니다. 무슈 빌라르-뒤몽소는 어린 잔을 전통적 교육방식으로 교육시키기 위해 수녀원으로 보내줬었죠.


하지만 잔은 15살이 되던해 수녀원을 떠나게 됩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프란체스카가 잔의 어머니인 안 베퀴의 아름다움과 그녀에 대한 무슈 빌라르-뒤몽소의 감정을 질투했기 때문일것이라 추정합니다. 결국 이런 상황은 안과 잔이 편안한 곳에서쫓겨나 힘든 삶을 살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죠. 쫓겨난뒤 잔은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남편이었던 니콜라 랑송의 집으로 옮겨갑니다. 이곳에서 잔은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마담 뒤 바리


열다섯살의 잔은 파리의 거리로 나가서 할수 있는 일을 닥치는대로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미용사의 조수로 일하기도 했으며 다음으로는 노부인을 따라다니는 역할을 하기도 했었습니다.(뭐 쉽게 말하면 비서 같은 역할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상점의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었죠.  여기저기 일을 하면서 잔은 남자들과도 관계를 맺게 됩니다. 아마도 잔의 아름다움은 그녀가 일자리를 얻는데 도움을 줬을 것입니다.

여러 일을 하면서 잔은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중에는 평생 친구가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바로 상점 주인의 딸이었던 아델라이드 라빌이었죠. 그녀는 후에 이름을 알린 화가였었습니다. 


아델라이드 라빌-기아르

자화상

그녀는 엘리자베트 비제 르블룅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여성화가라고 합니다.


이때쯤 잔은 매우 가느다란 아름다운 금발머리에 아몬드형의 푸른눈을 가진 여성으로 묘사됩니다. 이런 아름다운 잔을 눈여겨 본 사람이 있는데 바로 장 바티스트 뒤 바리 백작이라는 인물이었죠. 그는 상류층들에게 여성을 소개시켜주던 뚜쟁이로, 아름다운 잔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곧 장 바티스트 뒤 바리는 잔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으며 그녀를 자신의 정부로 삼게 되죠. 곧 잔은 "마드무아젤 랑쥐"라는 예명으로 파리의 상류사회 남자들을 상대로 하는 매춘부의 일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것은 무슈 뒤 바리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아름다운 잔은 곧 파리의 상류사회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많은 상류층 남성들이 그녀의 고객이 되었죠. 특히 마드무아젤 랑쥐의 고객들중에는 루이 15세의 궁정 조신들이 많이 있었으며 아마도 이런 상황은 그녀가 루이 15세를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마담 뒤 바리


1768년 잔은 루이 15세와 만나게 됩니다. 이때 궁정에는 공식 정부의 자리가 비어있었죠. 마담 드 퐁파두르가 죽은뒤 루이 15세의 신하들이나 아니면 야심을 가진 귀족 여성들이 이 자리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잔을 만난 루이 15세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젊음에 빠져들게 되죠. 늘 즐거움을 좋아했었던 루이 15세에게 잔은 딱 맞는 여성이었죠


궁정 조신들은 곧 국왕이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국왕의 공식정부가 되게 하려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신분은 국왕의 공식 정부가 되기에는 너무 낮았기에 사람들은 일단 잔은 정부가 될만한 신분으로 만들기로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무슈 뒤바리가 적극적이었죠. 백작 지위를 가지고 있던 무슈 뒤바리는 자신이 결혼하면 좋았겠지만, 그는 이미 아내가 있었습니다.결국 그는 다른 사람을 찾게 되죠.


잔은 무슈 뒤바리의 형제였던 기욤 뒤 바리 백작과 결혼해서 "마담 뒤 바리"라는 지위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출생증명서는 백작과 결혼할만한 신분으로 조작되었으며 나이도 3살이나 더 어리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잔은 이제 마담 뒤 바리가 되었으며 궁정을 마음대로 출입할수 있는 지위를 얻게 됩니다. 그녀의 남편인 기욤 뒤 바리는 결혼 직후 고향 영지로 돌아갔으며 그 보상으로 돈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출신때문에 한동안 그녀가 국왕의 공식 정부가 되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1769년 1월 마담 뒤 바리는 정식으로 궁정에 소개되었고 이제 국왕의 총애받는 공식 정부가 되었죠.


루이 15세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