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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82) 루이 드 나르본-라라 : 루이 15세의 아들(?):두번째

엘아라 2016. 2. 8.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ㅎㅎㅎ 네 글쓰기 싫어서 두개로 늘렸습니다.-=-


정부들과 그 후손들...(82) 루이 드 나르본-라라 : 루이 15세의 아들(?):두번째



루이 마리 자크 알마릭 드 나르본-라라

나르본-라라 백작

Louis Marie Jacques Amalric, comte de Narbonne-Lara 

(17, 23 or 24 August 1755 – 17 November 1813) 


하지만 루이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폴레옹이었죠.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프랑스와 자신이 정복한 여러 영지들을 제국의 여러 영토로 개편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자신의 궁정을 유럽의 다른 어느 나라의 궁정 못지 않는 곳으로 만들려했었죠. 이때문에 나폴레옹은 옛 귀족들을 많이 우대하게 됩니다. 루이 역시 구체제에서 군사와 외교에 대해서 매우 잘 배운 인물이었으며 나폴레옹은 루이가 자신에게 도움이 될것이라고 여겼었죠. 



나폴레옹


1809년 루이는 군에 다시 복귀합니다. 그리고 나폴레옹과 오스트리아 황제의 딸이었던 마리 루이즈간의 결혼을 위해 외교관으로 빈으로 가게 됩니다. 이후 1810년에는 바이에른 지방의 행정관으로 가게 되는데 바이에른을 통시하고 있던 막시밀리안1세 요제프는 루이가 이전에 프랑스에서 잘 알던 사이기도 했었습니다.(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는 바이에른과 팔츠 선제후의 후계자가 되기 전에 프랑스에서 장교로 복무했었으며 그의 첫번째 아내는 마리 앙투아네트와도 친한 사이였었습니다.) 이후 루이는 나폴레옹의 참모가 되었으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었습니다.



마리 루이즈


1812년 루이는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2세 빌헬름에게 프랑스의 러시아 원정에 동참하라는 외교 협상을 위해 프로이센으로 갑니다. 루이는 프랑스로 돌아온뒤 나폴레옹에게 러시아 원정을 실행하지 말라고 권했다고 합니다. 물론 나폴레옹은 루이의 말을 무시했었죠. 결국 루이 역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 동참하게 됩니다. 나폴레옹은 알렉산드르 1세에게 최후 통첩을 보내는 사절로 루이를 보냈었죠.


실패로 끝난 러시아 원정은 처참했었습니다. 하지만 루이는 군인으로써 매우 모범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혼란스러운 퇴각 와중에 루이는 다른 모든 군인의 모범이 될만한 행동으로 퇴각을 지휘했으며, 조용하지만 불굴의 의지로 군의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게 됩니다. 퇴각하는 나폴레옹의 곁에서 말을 타고 황제를 지키는 모습은 루이가 구귀족으로써의 명예를 어떻게 지키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모스크바에서 퇴각중인 나폴레옹


1813년 루이는 메테르니히와 협상을 위해 빈으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루이는 메테르니히에게 프랑스와의 동맹을 상기시켜주려 했지만 이미 기울어진 프랑스에 오스트리아는 동조하지 않습니다. 외교적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자 루이는 군인으로써의 자신의 임무를 수행합니다. 작센지방의 행정관이 된 루이는 그곳에서 전쟁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되죠. 


1813년 11월 27일 군을 사열하고 돌아온 루이는 발진티푸스로 사망합니다. 루이가 죽은뒤 루이의 참모였던 로한-샤봇 백작은 그의 심장을 프랑스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루이의 이름은 개선문에 새겨져있었죠.


루이의 형인 필리프는 루이와 달리 프랑스 왕가를 위해 일했습니다. 그는 혁명이 일어난뒤 에스파냐로 망명했으며 그곳에서 군인으로 복무했었습니다. 왕정복고후 그는 프랑스로 돌아갔고 왕립군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Philippe-Louis-Marie-Innocent-Christophe-Juste de Narbonne-Lara, duc de Narbonne-Lara, 

(né à Parme le 28 décembre 1750 - mort à Paris le 10 mai 1834)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