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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87) 조이 탈롱 : 루이 18세의 정부(첫번째)

엘아라 2016. 3. 14.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음냐 늘 생각하지만 프랑스 이름은 진짜 읽기 힘들어요..ㅠ.ㅠ


정부들과 그 후손들...(87) 조에 탈롱 : 루이 18세의 정부(첫번째)



조이 빅투아르 탈롱

바쉬 뒤 칼라일 백작부인

Zoé Victoire Talon 

(August 5, 1785 – March 19, 1852),

두 아이들과 함께 있는 모습


조이 빅투아르 탈롱은 1785년 앙투안 오메르 탈롱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루이 16세 시절 관리였으며,후에는 혁명에 가담하는 인물이었죠. 조에의 어머니는 벨기에에서 온 부유한 귀족가문 출신의 여성이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태어났던 시기는 혁명의 시기였으며 그녀의 아버지도 혁명에 휩쓸리게 됩니다.


복잡한 상황을 거쳐 조이의 아버지인 앙투안은 탈레랑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으며 가족들 역시 함께 미국으로 가게 됩니다. 이후 1796년이 되어서야 조이의 아버지는 가족들과 함께 프랑스로 돌아오게 되죠. 



조이의 아버지

앙투안 오메르 탈롱


프랑스로 돌아온 조이는 마담 캉팡의 학교에 다니게 됩니다. 혁명으로 전통적인 귀족 여성들이 다니던 수녀원 학교들은 거의가 사라졌으며 이때문에 마담 캉팡의 학교는 옛 귀족들은 물론이고 혁명으로 성장한 신흥 세력들의 딸이나 누이들이 다니던 곳이 됩니다. 마담 캉팡의 학교에는 나폴레옹의 여동생인 카롤린은 물론 조제핀 드 보아르네의 딸인 오르탕스도 다녔었죠.


1802년 17살의 조이는  아칠 피에르 앙투안 바쉬 뒤 카일라 백작과 결혼합니다. 그는 열렬한 왕당파였었습니다. 둘은 곧 따로 떨어져서 살았었습니다. 아마 서로 open marriage관계를 유지하려했거나 적어도 조이는 그렇게 하려했었던듯합니다. 어쨌든 조이는 남편과 떨어져 지내게 되죠. 아름답고 재치있는 여성이었던 조이에 대해서 많은 숭배자들이 생겨났으며 조이 역시 그들과 연애질을 했었습니다. 


1804년 조이의 아버지인 앙투안 오메르 탈롱은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체포되었으며 사형이 선고됩니다. 아버지의 체포에 조이는 여러 연줄을 동원해서 아버지를 구명하려 노력하죠. 여기서 조이는 안 장 마리 르네 사바리 장군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당시 경찰 최고 지위에 있는 인물이었는데 조이는 그를 매혹시켰으며 사바리는 앙투안 탈롱을 감형해서 일-상트-마르거리트(세인트 마거릿 섬)으로 유배보내는 것으로 마무리해줍니다. 조이는 그와 만난  아홉달후에 첫아이인 아들 우골랭을 낳았으며 이후 딸인 우골린을 낳았습니다. 두 아이는 모두 남편의 아이로 인정되었는데, 사실상 아이들의 친부는 그녀의 남편이 아니라고 추정하는듯합니다.



안 장 마리 르네 사바리

로비고 공작 


1814년 나폴레옹이 몰락한뒤 바쉬 뒤 칼라일 백작 부부는 돌아온 루이 18세를 맞이했었습니다. 하지만 곧 둘은 아이들의 양육권을 두고 다투게 됩니다. 조이는 아이들을 뺏길수 없었으며 양육권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국왕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그리고 루이 18세는 자신보다 30살이나 어린 이 바쉬 뒤 칼라일 백작부인에게 매혹당하게 됩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