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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들과 그 후손들...(66)팡티에브르 공작가문 : 공작 루이 장 마리 드 부르봉 (두번째)

엘아라 2015. 9. 21. 06:00

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늘 글을 미리 써놓는데 요즘 상태가 좀 안 좋습니다.

한여름에 알러지때문에 기침을 하고 있거든요. 천식환자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 더 중요한것은 의사가 매년 제가 똑같은 시기에 찾아온다고 해요...

천식은 아니겠죠..ㅠ.ㅠ


정부들과 그 후손들...(66)팡티에브르 공작가문 : 공작 루이 장 마리 드 부르봉 (두번째)



루이 장 마리 드 부르봉

팡티에브르 공작

Louis Jean Marie de Bourbon 

(16 November 1725 – 4 March 1793) 


팡티에브르 공작 부부는 당대에 매우 행복했던 부부라고 알려져있습니다. 둘은 서로를 사랑했다고 여겨진다고 합니다. 둘사이에서는 모두 일곱명의 아이가 태어나지만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는 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인 루이 알렉상드르 조제프 스타니슬라 드 부르봉과 딸인 마리 루이즈 드 부르봉이었죠. 아들인 루이는 일찍 죽었는데 그의 며느리는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친구로 유명한 랑발공비였습니다. 또 딸인 마리 루이즈는 오를레앙 공작의 후계자인 샤르트르 공작과 결혼했었죠.



어머니, 아들 며느리 딸과 함께 있는 팡티에브르 공작



하지만 결혼 10년후인 1754년 팡티에브르 공작부인은 막내아이를 낳다가 사망합니다. 팡티에브르 공작은 30살도 안된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에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을 깊이 애도했으며 이후 그는 재혼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지내게 됩니다.



팡티에브르 공작부인


아내가 죽은뒤 팡티에브르 공작은 화려한 베르사유 궁정의 생활을 뒤로하고 자신의 영지에 오래 머물게 됩니다. 그는 엄청난 재산이 있었으며 프랑스 전역에 그의 영지가 있었죠.  게다가 팡티에브르 공작은 사촌인 외백작이 사망한뒤 백부였던 멘 공작의 재산모두를 상속받았기에 매우 부유하게 됩니다.

하지만 팡티에브르 공작은 남은 생을 그냥 자선사업에 집중하면서 삶을 살았습니다. 



팡티에브르 공작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면서 팡티에브르 공작은 혁명을 피해 자신의 집으로 오는 사람을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 역시 혁명의 소용돌이를 피할수 없었죠. 1791년 공작은 노르망디로 갑니다. 그리고 얼마뒤 남편과 헤어진 딸 마리 루이즈 역시 아버지 곁에오게되죠. 자선 사업을 활발히 했던 공작은 많은 사람들이 존경을 했기에 혁명때 그가 직접적으로 해를 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변인물들은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의 며느리인 랑발 공비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친구였고 결국 랑발 공비는 혁명중 사람들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국왕인 루이 16세의 죽음도 목격했었죠.


딸 마리 루이즈와 함께 있는 팡티에브르 공작


팡티에브르 공작은 1793년 사망합니다.그의 외손자인 샤르트르 공작 루이 필리프는 후에 프랑스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