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드디어 마담 몽테스팡 막내아들이야기까지 왔네요/
정부들과 그 후손들...(64) 툴루즈 백작 루이 알렉상드르 드 부르봉 : 마담 드 몽테스팡의 아들
루이 알렉상드르 드 부르봉
툴루즈 백작,팡티에브르 공작
Louis Alexandre de Bourbon
comte de Toulouse (1681), duc de Penthièvre (1697), (1711),
(6 June 1678 – 1 December 1737),
마담 드 몽테스팡과 루이 14세의 막내아들이었던 루이 알렉상드르 드 부르봉은 1678년 베르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태어난뒤 그와 그의 누나인 프랑수아즈 마리는 마담 드 몽셰브뢰일의 손에서 자랐다고 합니다. 아마도 아이들의 교육을 맡았던 마담 드 멩트농이 이제 바빴기에 아이들을 또다른 사람들에게 맡겼었었죠.
툴루즈 백작의 어머니
마담 드 몽테스팡
1681년 루이 알렉상드르는 누나인 프랑수아즈 마리와 함께 국왕의 자신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때 루이 14세는 루이 알렉상드르를 인정하면서 그에게 "툴루즈 백작"지위를 부여했죠. 그리고 다섯살때인 1683년에는 해군 제독에 임명되었었습니다. 그리고 1684년에는 그의 이름을 딴 보병 연대(툴루즈 연대인듯..-0-;;)의 연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693년에는 기병 연대의 연대장 지위를 부여받았다고 합니다. 또 1689년 11살의 툴루즈 백작은 기옌의 행정관으로 임명되었으며, 1696년 1월 17살의 툴루즈 백작은 기예의 행정관에서는 물러났지만 대신 부르타뉴 지방의 행정관으로 임명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696년에는 "프랑스의 육군 원수"지위를 받았으며 다음해부터 왕실 근위대를 지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프랑스 구체제의 군대 상황으로 어린나이라도 국왕의 아들이라는 지위 때문에 군에서도 높은 지위를 얻을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시절의 툴루즈 백작
툴루즈 백작은 에스파냐 계승전쟁에도 참가했는데 그는 시칠리를 방어하는 임무를 맡았었습니다. 또 1704년에 벌어졌던 벨레즈-말라가 해전에도 지휘관으로 참가했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다섯살때 이미 해군 제독지위를 수여받았었기에 함대를 지휘하기도 했던것이었죠. (대충 이 해전은 잉글랜드가 지브롤터를 장악하는 전투로 프랑스과 에스파냐측에서는 지브롤터를 되찾지 못했기에 패배한 전투였다고 합니다. 물론 프랑스측은 영국-네덜란드 연합군이 더 많은 사상자를 냈기에 자신들의 승리를 주장했지만 말입니다.)
툴루즈 백작은 군인으로 살았으며 정치에는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루이 14세 치세말이 되면서 정치 상황은 좀 복잡하게 돌아가게 됩니다. 루이 14세는 자신의 두 아들인 멘공작과 툴루즈 백작을 정식으로 왕위계승권을 부여합니다. 루이 14세는 자신의 직계 후손과 동생인 오를레앙 공작의 직계후손 그리고 부르봉 가문의 분가였던 콩데 가문과 콩티 가문 다음으로 두 아들과 그 후손들이 왕위를 계승할 권리를 부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어린 증손자의 섭정으로 사위이자 조카였던 오를레앙 공작과 툴루즈 백작의 형인 멘 공작을 임명하는 유언장을 씁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오를레앙 공작이 자신의 권리를 뺏긴것이라 여기게 만들었고 결국 루이 14세가 사망한뒤 멘 공작과 툴루즈 백작이 얻었던 지위를 모두 무효로 돌리게 되죠.
10대의 툴루즈 백작
형인 멘 공작이 정치판에서 완전히 쫓겨난것에 비해서 정치에 관심이 없던 툴루즈 백작은 궁정내 지위를 계속 인정받게 됩니다. 그는 해군 장군으로써 그의 경력을 인정받았으며 해군장군으로 임명되기도 합니다.
툴루즈 백작은 아버지가 살아있었을때 기즈가문의 방계 가문 출신이었던 샤를로트 드 로렌과 혼담이 오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루이 14세는 이 결혼에 반대했으며 결혼은 성사되지 않습니다.
이후 툴루즈 백작은 1723년 2대 노아유 공작의 딸이었던 마리 빅투아르 드 노아유와 결혼합니다. 재미난것은 마리 빅투아르는 과부였는데 그녀의 남편은 툴루즈 백작의 이부조카였던 공드렝 후작 루이 드 파르다리앙 드 공드렝이었다고 합니다.공드렝 후작의 할머니가 바로 툴루즈 백작의 어머니였던 마담 드 몽테스팡으로 공드렝 후작의 아버지는 마담 드 몽테스팡이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마리 빅투아르 드 노아이유
툴루즈 백작부인
둘사이에서는 아들인 팡티에브르 공작 루이 장 마리 드 부르봉이 태어났으며 그는 아버지의 뒤를 잇게 되죠. (팡티에브르 공작 지위는 원래 로렌가문의 방계가문이 가지고 있던 지위로 팡티에브르 공작령의 상속녀가 앙리 4세의 아들이었던 방돔공작 세자르와 결혼하면서 방돔공작가문이 가지고 있던 지위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방돔 공작 가문의 남성직계가 단절되면서 팡티에브르 공작령은 툴루즈 백작이 구입했으며 이때문에 팡티에브르 공작 지위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툴루즈 백작은 1737년 사망했으며 그의 지위와 재산은 외아들인 루이 장 마리 드 부르봉에게 물려지게 됩니다. 툴루즈 백작의 후손중에는 오를레앙 공작인 "필리프 에갈리테"와 결혼하는 루이즈 마리 아델라이드 드 부르봉이 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혁명을 지지하자 남편과의 관계를 단절했다고 합니다. 루이즈 마리 아델라이드의 아들이 바로 오를레앙 가문 출신으로 프랑스 국왕이 되는 루이 필리프입니다.
루이 장 마리 드 부르봉
팡티에브르 공작
툴루즈 백작의 외아들
자료출처
위키 피디어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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