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엘입니다.
오랫만에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읽었답니다.
그래서 글을 적어볼까합니다.
마르가레타 폰 발덱은 발덱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이야기가 "백설공주"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이야기가 있네요. 흥미있는 이야기지만 그 주장을 시작한 사람이 너무 몇몇 이야기에서는 너무 과한 주장을 하는듯하네요.ㅎㅎㅎ
마르가레타 폰 발덱 : 그녀의 이야기는 과연 백설공주 이야기와 연결될까?
마르가레타 폰 발덱은 16세기경의 독일 출신의 여성이었습니다.그녀의 아버지는 필립 4세로 발덱지방을 통치하던 백작이었습니다. 독일은 19세기까지도 작은 백작들도 "독립된 군주"라고 인정을 받았었습니다.
발덱 가문은 13세기 무렵 신성로마제국에 편입된 가문으로 발덱지방은 신성로마제국의 한 주로 인정받았다고 합니다. 가문은 17세기 피르몬트 지방도 얻게 되었으며 18세기가 들어서면서 발덱가문은 prince령으로 승격됩니다. 발덱-피르몬트 가문은 19세기 혼인관계로 유명했는데 가장 유명한 사람이 네덜란드의 빌렘 3세의 두번째 아내였던 발덱-피르몬트의 엠마였죠. 엠마의 외동딸인 네덜란드의 빌헬미나 여왕은 1,2차 세계대전을 겪었었으며 네덜란드를 이끌었던 인물로 유명합니다. 빌헬미나의 외동딸은 율리아나 여왕이었고 율리아나 여왕의 장녀가 현 네덜란드 국왕의 어머니인 베아트릭스 여왕이었죠.
발덱 가문의 문장
"Armoiries de Waldeck" by CaranornImage created for the Blazon Project of the French Wikipedia - Own work The source code of this SVG is valid.This vector image was created with Inkscape by Caranorn.. Licensed under GFDL via Wikimedia Commons.
마르가레타 폰 발덱은 발덱의 백작 필립 4세의 딸로 당시 네덜란드 섭정이었던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비 마리아 폰 합스부르크의 시녀로 살았었습니다. 마리아는 카를 5세의 누이로 그녀의 남편인 라요시는 투르크와의 전투에서 후계자없이 전사했고 이후 마리아는 재혼하지 않고 평생 네덜란드 총독으로 살았었죠.
마르가레타 폰 발덱은 21살때 미혼으로 사망했으며 이때문에 그리 주목받는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대 독일의 지역 역사학자였던 에크하르트 산더라는 인물에 의해서 마르가레타 폰 발덱은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는 학교 선생님으로 지역 역사를 연구했었는데 옛 "광산업"에 대한 묘사와 백설공주의 이야기에 나오는 일곱 난장이 이야기의 유사점에 대해서 주목하게 됩니다.
오스트리아의 마리
마리아 폰 합스부르크
헝가리와 보헤미아의 왕비
네덜란드의 섭정
마리는 신교에 호의적이었고 이때문에 마르가레타 폰 발덱을 시녀로 들였을듯합니다.
그리고 16세기 인물인 마르가레타 폰 발덱을 알아내게 됩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세번 결혼했으며 마르가레타 폰 발덱은 첫번째 결혼으로 태어난 딸이었습니다. 마르가레타의 아버지는 광산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또 어떤 이유에서건 간에 아이들은 브뤼셀로 보내져서 교육받았다고 알려집니다. 아마도 지역의 "전설"등에서는 마르가레테와 새어머니간의 불화가 이야기될수도 있을듯합니다.이런 상황은 결국 마르가레타 폰 발덱의 이야기가 백설공주의 이야기와 직결된다고 주장하게 된 계기가 됩니다.
산더는 1994년의 책에서 마르가레타 폰 발덱이 21살의 나이로 독살당했으며 그녀를 독살한 인물들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와 마르가레타를 질투했던 새어머니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마르가레테 폰 발덱이 카를 5세의 후계자였던 펠리페와 사랑에 빠졌으며 그와 결혼하려했기에 정략결혼을 원하던 카를 5세와 딸을 싫어하던 새어머니가 독살했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기에 백설공주의 독이 묻은 사과 이야기가 나왔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제가 읽은 글에서는 "믿거나 말거나"식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0-;;)
하지만 여기에는 몇가지 의문이 듭니다. 가장 중요한 의문은 펠리페가 마르가레타와 사랑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과연 그녀와 결혼하려는 의지가 있었냐는 것입니다. 펠리페 2세의 성격을 규정지을수 있는 것은 정치적이라는 점과 종교적이라는 점이죠. 이 두가지에 마르가레타 폰 발덱은 전혀 맞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펠리페2세는 1554년 오촌이었던 잉글랜드의 여왕 메리(블러디 메리)와 결혼합니다. 마르가레테가 죽은 직후였는데 아마도 이때문에 산더는 마르가레테가 독살당했다고 생각했던듯합니다. 하지만 블러디 메리와의 혼담은 그녀가 왕위에 오른 직후부터 시작된 협상이었습니다. 정략결혼을 중요시여기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출신의 펠리페가 잉글랜드 국왕이 될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고작 상속녀도 아닌 "백작의 딸"과 결혼할것인가는 의문입니다. 또 설령 펠리페가 사랑에 빠져서 프랑스와의 갈등에서 매우 중요한 동맹이 될 잉글랜드 여왕을 차버리려했다고 해도 그녀의 가문의 종교는 펠리페가 그녀와 결혼하는데 문제가 될것이었습니다. 발덱 백작 필립 4세는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인물이었으며 결국 발덱가문은 신교도가 됩니다. 가톨릭 신앙에 열성적이었다고 알려진 펠리페가 "이단"이라고 여겨졌던 신교를 지지하는 가문과 통혼한다는 것은 솔직히 상상이 잘 되지 않습니다.
펠리페 2세
노련한 정치가였지만 왜 종교적으로 그렇게나 열성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늘 의문이었는데 뉘신가 "종교는 믿음이니까요"라고 말하신뒤로는 좀 공감이 되더군요.-0-;;;
산더는 이런 문제때문인지 2013년 새로낸 책에서 마르가레타와 펠리페 2세가 사랑에 빠졌었다는 증거를 열심히 제시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왜 펠리페가 마르가레타와 결혼하려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펠리페는 늘 정부가 있어왔고 단지 마르가레테를 정부로 두려했을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또 재미난것은 마르가레테를 "질투"했었던 새어머니로 추정되는 인물은 마르가레타가 죽었을때 이미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르가레타의 아버지는 마르가레타가 죽은 뒤에나 세번째로 결혼했었죠.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난쟁이들은 당시 열악한 탄광노동자들(어린이나 또는 열악한 상황때문에 병에 걸린 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변형된것이라는 산더의 통찰은 옳을듯합니다. 하지만 백설공주가 마르가레타 폰 발덱이라는 주장은 너무 비약적인 주장이 아닐까합니다.
Eckhard Sander의 새책
여기서는 백설공주와 마르가레타 폰 발덱의 이야기관계를 더 강화하려했다고 합니다.
...물론 전 못읽어봤고 읽을수도 없습니다..(저에게 독일어는 ..ㅠ.ㅠ 그래도 대충 표지 제목이나 부제 정도는 이해되긴합니다.)
자료출처
1.위키피디어
2.http://schneewittchendorf.com/schnees3.htm
3.http://www.ibtimes.com/snow-white-real-look-back-life-story-countess-margarete-von-waldeck-701110
그림출처
위키 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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